작은 빌라 인테리어 0 - 안녕, 오리빌라

안녕, 오리빌라

by 장명진
멀리 보이는 노란색 건물이 바로 '오리빌라'


INTRO


오리빌라를 떠나 온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내 마음의 일부는 아직 그곳에서 지내고 있는 듯하다. 지난번 연재했던 '파리지앵 인테리어'는 바로 오리빌라에서 써내려갔는데, 묘하게도 비로소 오리빌라에 대해 쓰는 지금은 그곳에 있지 않다.


* 파리지앵 인테리어 보기


오리빌라는 내게 슬프고도 따스한 공간이었다. 오리빌라로 이주할 무렵, 나는 인생의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사업의 실패로 거액의 투자금을 잃었고, 급한 대로 사용한 카드빚이 쌓이고 쌓여 신용불량자가 되고 말았다. 아침 점심 마다 당장 수 백만 원을 내놓으라는 문자와 전화를 받았지만,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인생이 완전히 실패로 끝나버린 것만 같아서 몇 달 내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연남동은 관광지가 되며 월세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올랐다. 언론에 회자되는 얘기로만 여겼던 젠트리피케이션이 내게도 현실이 된 것이었다. 이래저래 더 이상 살아갈 힘이 나지 않았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월세가 저렴한 새 집을 찾아 월세집 매물 투어를 했다. 60여곳을 봤던가. 손에 큰 돈이라도 쥐고 있는 사람처럼 여러 집들을 보러 다닌 게 그나마 약간의 기분전환이 되었다. 어쩌면 꼭 새 집을 구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훔쳐보고 싶어 그때의 나는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녔던 것 같다.


그 시절 내가 애써 찾아다니던 것은 어쩌면 새 집이 아니라, 새 희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리빌라는 연남동 집 월세의 절반 정도 가격이었다. 보증금도 절반이어서 남는 보증금으로 몇 달간 입에 풀칠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이사를 결정했다. 당장 몇 달이라도 통장 잔고가 0원이 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좋았다.


오리빌라는 서울이 아닌 인천 지역에 있는 허름한 빌라였다. 입구의 가로등 빛조차 잘 들어오지 않고, 문 앞까지 이르는 계단은 오래 청소를 하지 않아 새까맣게 더러워져 있었다. 1990년에 지어진 빌라이지만 관리가 잘 되지 않은 탓에 나이가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하지만 아무튼 연남동 집의 반값이었고, 서울까지도 직통 버스가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집의 독특한 구조도 좋았다. 무엇보다 외벽에 칠해진 연한 노랑빛이 어딘가 모를 위로를 주는 곳이었다. 나는 더 쓸쓸해지지 않으려고 일부러 '오리빌라'라는 조금 귀여운 애칭을 새 집에 부여했다.


외관은 낡은 빌라였지만 내부는 (친구의 말을 빌리면) 내가 구한 역대 집 중에서 가장 멀쩡한 집이었다


오리빌라에서 1년 반을 머물렀다. 이사하고 한 달 즈음 후에 '파리지앵 인테리어' 연재 의뢰를 받았다. 원고료로 간신히 월세를 감당할 수 있었다. 몇 달 뒤에는 30여 곳 넘게 면접을 다닌 끝에 뜻밖의 좋은 직장도 얻었다. 오리빌라는 다 스러져가던 내 삶의 불씨를 그 무심한 연노랑 빛으로 되살려준 공간이었다. 무척 사랑했으나, 미워하기도 했던 나의 새로운 캔버스, 오리빌라의 이야기를 이제야 조금 담담히 쓸 수 있을 것 같다. 안녕, 나의 오리빌라.


2020. 2. 28. 멀고느린구름.




* 인테리어 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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