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리빌라
오리빌라를 떠나 온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내 마음의 일부는 아직 그곳에서 지내고 있는 듯하다. 지난번 연재했던 '파리지앵 인테리어'는 바로 오리빌라에서 써내려갔는데, 묘하게도 비로소 오리빌라에 대해 쓰는 지금은 그곳에 있지 않다.
오리빌라는 내게 슬프고도 따스한 공간이었다. 오리빌라로 이주할 무렵, 나는 인생의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사업의 실패로 거액의 투자금을 잃었고, 급한 대로 사용한 카드빚이 쌓이고 쌓여 신용불량자가 되고 말았다. 아침 점심 마다 당장 수 백만 원을 내놓으라는 문자와 전화를 받았지만,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인생이 완전히 실패로 끝나버린 것만 같아서 몇 달 내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연남동은 관광지가 되며 월세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올랐다. 언론에 회자되는 얘기로만 여겼던 젠트리피케이션이 내게도 현실이 된 것이었다. 이래저래 더 이상 살아갈 힘이 나지 않았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월세가 저렴한 새 집을 찾아 월세집 매물 투어를 했다. 60여곳을 봤던가. 손에 큰 돈이라도 쥐고 있는 사람처럼 여러 집들을 보러 다닌 게 그나마 약간의 기분전환이 되었다. 어쩌면 꼭 새 집을 구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훔쳐보고 싶어 그때의 나는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녔던 것 같다.
오리빌라는 연남동 집 월세의 절반 정도 가격이었다. 보증금도 절반이어서 남는 보증금으로 몇 달간 입에 풀칠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이사를 결정했다. 당장 몇 달이라도 통장 잔고가 0원이 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좋았다.
오리빌라는 서울이 아닌 인천 지역에 있는 허름한 빌라였다. 입구의 가로등 빛조차 잘 들어오지 않고, 문 앞까지 이르는 계단은 오래 청소를 하지 않아 새까맣게 더러워져 있었다. 1990년에 지어진 빌라이지만 관리가 잘 되지 않은 탓에 나이가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하지만 아무튼 연남동 집의 반값이었고, 서울까지도 직통 버스가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집의 독특한 구조도 좋았다. 무엇보다 외벽에 칠해진 연한 노랑빛이 어딘가 모를 위로를 주는 곳이었다. 나는 더 쓸쓸해지지 않으려고 일부러 '오리빌라'라는 조금 귀여운 애칭을 새 집에 부여했다.
오리빌라에서 1년 반을 머물렀다. 이사하고 한 달 즈음 후에 '파리지앵 인테리어' 연재 의뢰를 받았다. 원고료로 간신히 월세를 감당할 수 있었다. 몇 달 뒤에는 30여 곳 넘게 면접을 다닌 끝에 뜻밖의 좋은 직장도 얻었다. 오리빌라는 다 스러져가던 내 삶의 불씨를 그 무심한 연노랑 빛으로 되살려준 공간이었다. 무척 사랑했으나, 미워하기도 했던 나의 새로운 캔버스, 오리빌라의 이야기를 이제야 조금 담담히 쓸 수 있을 것 같다. 안녕, 나의 오리빌라.
2020. 2. 28. 멀고느린구름.
* 인테리어 티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