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리빌라
11평 공간에서 13평 공간으로 옮겨 온 것이었지만 묘하게 실평수는 오리빌라가 더 작게 느껴졌다. 층고가 15센티미터 가량 더 낮은 탓도 있었지만, 파리지앵 하우스의 커다랗던 라운지룸을 대체하기에 오리빌라의 큰 방은 작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파리지앵 하우스의 라운지룸에 맞춰 제작했던 대형 책장이 오리빌라의 거실용 큰 방에는 절반 남짓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가뜩이나 상대적으로 작은 거실에 책장까지 꾸역꾸역 들어가고 나면 거실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것 같았다. 별도의 서재 공간이 필요했다.
오리빌라에는 독특한 구조의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베란다로 이어지는 통로 역할을 하는 동시에 속으로 깊게 뻗은 2 X 4미터의 방이었다. 처음 방을 보러 왔을 때부터 이곳을 서재와 집필실로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폭이 좁은 구조의 방에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3,000여 권의 책을 수납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여러 자료를 찾았다. 영문과 일문판 인테리어 서적을 뒤적이기도 하고, 며칠 동안 구글 검색을 하기도 하며 서재의 모습을 머릿 속에 그려나갔다.
그 즈음 나는 실직 상태였기에 여러 가지로 생계 수단을 강구하고 있었다.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독립서점을 여는 일이었다. 천 만원 정도 자본금을 대출 받아서 일단 시작하면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는 벌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별책부록 서점에서 진행하던 원데이클래스를 수강하며 서점을 열 수 있을 공간을 찾아다녔다. 동시에 서점 인테리어 구상도 무궁무진하게 펼쳐나갔다. 노란색이 주를 이룰 오리 서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표지에서 영감을 빌리는 노르웨이의 서재, 운영하고 있던 1인 출판사의 아지트로서 페이퍼클라우드북스. 세 가지 안으로 좁혀졌을 무렵, 서점 개업을 포기했다. 사업 실패의 여파로 신용불량 상태가 된 나에게는 어느 지자체나 청년기업 지원 단체도 투자를 해주지 않았고, 계산을 해봐도 한 달에 100만 원 벌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겠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실패로 돌아간 독립서점 개업 프로젝트의 한 가지 안은 오리빌라의 서재로 부활했다. 바로, 노르웨이의 서재다. 처음에 좋아하는 다뉴브블루의 공간으로 구성해보았던 서재를 모두 뜯어내고 처음부터 모든 걸 다시 시작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 내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사실은 무용한 서재 만들기에 공을 들였다. 어쩐지 근사한 서재를 만들고 나면 내 인생도 조금은 근사해질 거라고 기대하며 말이다.
거짓말처럼 노르웨이의 서재가 완성될 즈음, 일거리가 생겼고, 집필실 구성까지 마무리될 단계에는 정규직 직장을 얻었다. 삶은 중층의 인과로 엮어져 있다. 아주 단순하게는 내가 30여 곳이 넘는 데에 이력서를 내고, 연거푸 떨어지면서도 꾸준히 면접을 보러 다녔던 결과이겠지만, 무용해보이기만 하는 서재 만들기 작업도 삶의 방향을 바꾸는 데 미약하나마 힘을 보탰을 것이다. 나를 응원하는 사람의 기도도 큰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어떤 일을 해냈을 때 자꾸만 오만해지려고 하지만, 한 시절의 성공이 결코 나만의 것이, 온전히 내뜻에 의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완성된 노르웨이의 서재에서 나는 매일 아침 글을 쓰고, 커피를 마셨다. 파리지앵 하우스의 새벽빛이 진청색이었다면, 오리빌라의 새벽빛은 연청색이었다. 어둠이 스미면 흔들의자에 앉아, 팬던트등의 주황색 불빛 아래서 책장을 넘기다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했다. 지금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 공간이지만, 이따금 나는 마음 속 노르웨이의 서재에 찾아가 책장을 넘긴다. 영원할 거라 믿었던 것들은 결코 영원하지 않았음을 회상한다.
2020. 3. 22.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