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리빌라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커피를 사랑하는 것만큼 커피도 나를 사랑할까. 커피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캣타워를 구입하듯, 먼저 커피를 품어줄 예쁜 커피잔을 준비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리고 그 커피잔이 놓일 테이블과 커피에 어울리는 근사한 공간이 함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스물한 살부터 핸드드립전문 커피하우스에서 일을 했던 탓에 나는 또래보다 비교적 일찍 커피의 맛에 각성했다. 당시는 전국 각지에 커피 체인점이 등장하기도 전이고, 테이크아웃이라는 말조차 낯설 때이니 매일 '블랙커피'를 마시는 나는 또래들 사이에서 기묘한 존재였다. 드문드문 생겨나기 시작한 커피체인점에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을 때 경탄을 금하지 못하던 지인들의 시선을 아직 기억한다. 자판기나 믹스가 아닌 원두커피가 이토록 전국민의 애호식품이 될 줄은 그 시절의 누구도, 커피업에 종사하던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예상했던 것은 언젠가 나만의 작은 커피하우스를 갖는 것이었다. 예상이라기보다는 꿈꾸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20대 시절 내가 일했던 커피하우스는 온통 월넛빛깔의 목재로 덮여 있고, 드문드문 귤색 등이 어둠을 은근히 밀어내고 있는 정통 유럽 커피하우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퉁이 소파 어딘가에서 랭보나 헤밍웨이 같은 문인들이 담배연기를 뿜어내고 있을 것 같은 그런 공간. 영화에서나 보아오던 공간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고 거리로 나오면 딴 세상으로 내쫓긴 것만 같았다. 일을 그만두고 영영 그곳을 떠날 때, 언젠가 내 집을 갖게 된다면 꼭 저런 느낌의 공간을 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파주하우스와 연남동하우스를 거치며 두 번의 주방을 인테리어했지만, 주방의 기능에 더 중점을 두느라 대학생 시절의 그 꿈을 실현하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기필코! 라는 다짐을 하고, 오리빌라의 주방을 디자인했다. 1화에 소개한 판재를 이용한 인테리어는 오직 나만의 커피하우스를 위한 것이었다. 월넛 빛깔의 목재벽이 없다면 그 어떤 인테리어 요소를 덧붙여도 정통 유럽 커피하우스의 느낌을 자아낼 수는 없을 테니까.
내 몸집의 두 배가 넘는 판재를 벽에 접착시키느라 갖은 고생을 감수해야 했다.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나만의 커피하우스를 완성했다. 고생했던 기억은 모두 봄바람에 쓸려간 벚꽃잎들처럼 사라졌다. 두 사람이 마주 앉으면 꽉 차는 아주 작은 공간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나만의' 커피하우스라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혼자 남은 밤이면 엘피판을 켜두고, 흔들리는 작은 촛불을 바라보며 커피를 내려 마셨다. 쓸쓸한 음악도, 긴 한숨도 쓴 커피 속에 가라앉은 채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
보일러가 함께 놓인 싱크대 뒷편의 구형 유리창은 바람에 요란하게 흔들리곤 했다. 발코니를 확장한 주방의 벽은 충분히 두껍지 않아서 찬 바람이 잘 세어들었다. 그런데 왜일까. 오리빌라를 떠나온 지금 나는 무엇보다 그때 창이 흔들리던 소리와 흰 벽으로 세어들던 찬 바람이 문득 그립다. 나는 직접 만든 라구나블루색 수납벤치 위에 담요를 덮고 웅크리고 앉아 푸른 장미가 그려진 커피잔에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한 걸음 정도 앞에는 전기 스토브가 아늑한 불빛을 발하고, 멀리 거실에 켜놓은 키스 자렛의 피아노 연주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던 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보던 밤. 이제는 세상에서 사라진 나만의 커피하우스이지만, 잊을 수 없는 사랑처럼 여전히 내 마음 안에 살아 있다.
2020. 4. 6.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