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빌라 인테리어 8 - 그래도 제대로 살고 싶어서

안녕, 오리빌라

by 장명진



이사 다닐 때마다 셀프인테리어에 열을 올리는 내게 사람들은 월세 집에 왜 그렇게 돈과 정성을 들이는지 묻곤 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래도 제대로 살고 싶어서.”


대한민국 노동자 계급의 흙수저로 태어나 가정 해체를 겪고, 과외는 커녕 단 한 번 학원에 가보지도 못한 채 자력으로 일어나, 무일푼 혈혈단신으로 상경하여 세상과 마주해야 했던 내게 ‘살아내는 일’은 최우선 과제였다. 모든 하루가 절체절명이었고,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그야말로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 적어도 넘어지면 손 잡아줄 가족이 있는 친구들과 나는 완전히 달랐다. 나의 20대는 그야말로 존재하기 위한 사투였다.


그런 20대를 보내고, 30대가 되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생존이 아니라 생활을 하고 싶다. 비록 풍족하진 않지만 단 하루를 살아도 내가 바라던 삶의 모습대로 나의 삶을 살고 싶다고. 누군가는 라이프스타일을 돈으로 살 수 있겠지만, 내게는 그런 돈이 없었다. 내가 가진 한정된 자원으로 창조해내야 했다. 나의 셀프인테리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던가. 인테리어를 통해 내가 사는 공간을 바꾸고 난 뒤, 내 삶은 달라졌고, 나 역시 달라졌다. 20대 시절의 나는 자기 일에는 신경질적이고, 상대의 일에는 무신경한 인간이었다. 잡동사니가 너부러진 5평 방에는 ‘내 인생은 어쩌면 이렇게 영원히 5평의 인생으로 마감될지도 모르겠다’는 절망의 공기가 가득했다.


길에서 주워온 책장들, 도서관 폐품이나 헌책방에서 헐값에 구한 책이 전부였던 내 20대 시절 자취방. 창문이 있지만 10센티미터 앞이 담벼락이어서 해가 거의 들지 않았다


서른한 살이 되었을 때, 거금 100만 원을 투자해서 70년대에 지어진 낡은 아파트를 나만의 공간으로 싹 바꿨다. 바닥재를 사러 동대문 시장을 돌고, 페인트 가게를 찾아다니고, 어설프게 목재를 가공하는 일이 너무나 즐거웠다. 힘든 일이 있을 때도 그렇게 환골탈태한 집을 둘러보면 ‘야, 그래도 너 되게 열심히 살았다’는 위로를 받게 되었다. 셀프인테리어는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위로이자 포옹이었다. (*작은 아파트 인테리어)


오리빌라는 그 의미가 가장 깊었던 공간이었다. 열심히 쌓아 올렸던 것이 와르르 무너진 다음, 다시 시작하고자 안간힘을 쥐어짜던 시절의 나를 품어준 공간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오리빌라에서는 불과 1년을 살았다. 아주 짧았다. 그만큼 내가 회복되는 시간이 짧았던 것이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더 오래 거기에 있었더라면, 하고 후회했던 세월이 많았다. 잃어버린 것이 너무나 컸던 탓이다.


그러나 결국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면 비워진 만큼 채워지기 마련이라고 여긴다. 그 채워진 상태에서 더 성장할 것이냐, 지킬 것이냐는 생의 도박이다. 내 셀프인테리어 사진첩을 돌아보면 분명히 세월과 함께 내 삶이 성장해왔음을 실감한다. 더불어 내 마음도 성장하고 한결 여유로워졌다. 지독히 이기적인 마음과 신경질적인 예민함을 부족하나마 조금 덜어냈다.


난 늘 머무르는 것보다 도전하는 것을 선택해왔다. 그저 버티기 위해서 살았던 20대 10년의 삶이 언제나 내 등을 힘껏 떠미는 것 같다. 그래도 제대로 살고 싶어서.



2022. 10. 18. 멀고느린구름.




오리빌라 비포 & 애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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