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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물방울 Apr 01. 2020

미안해요.

조울증 환자가 보내는 사과의 편지



미안해요, 진짜 미안해요.



내 마음을 이렇게 화산이 폭발하듯 쓰고 나니, 그 글들이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나니, 갑자기 거친 파도가 들이치 듯 미안함이 밀려오기 시작했어요.



미안해요.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 갇혀서, 충격적인 행동과 발언을 해서 미안했어요. 사실 내가 아프다는 걸 알고 나서야, 그러고 나서야 이해받을 수 있는 거잖아요. 소위 미쳤던 거니까, 당황스러웠을 거예요. 얼마 전에 경미한 조증 증세 때문에 응급실을 찾았죠. 정신건강의학과에 속해 계신 의사 선생님께도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더라고요. 그때 다시금 깨달았어요. 얼마나 주변 사람들이 당혹스러웠을지.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을지. 얼마나 황당했을지.



미안해요.



제가 사고 치고 다녔는데, 천만 원어치 쇼핑을 하고, 주식을 마음대로 사고팔고, 사람들로부터 소외를 받았는데, 그런데도 받아줘서 고마웠어요. 엄마, 그리고 아빠. 저를 정신과 폐쇄병동에 손잡고 데리고 가서 입원시켰다는 게, 잘 키운 자식이 ‘정신병’에 걸렸다는 게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일지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그래서 많이 미안해요.   



감정이란 게 계단처럼, 한 단계를 딛고 나야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나 봐요. 이렇게 글로 내 마음을 표출하고 나니까, 그제야 주변 사람들이 보이더라고요. 나 때문에 괜한 상처 입었을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떠오르네요. 그동안은 이해받지 못해서 너무 억울하고, 힘들었는데, 이제야 그들을 이해하고 사과를 건네고 싶네요. 



사실, 조울증은 기억상실증이 아니라, 그 당시 상황이 기억나요. 혼자 말을 할 때도 있고, 굉장히 이상한 행동을 할 때도 있었지만, 거친 말들을 내뱉을 때도 있었지만, 그냥 마음은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는 거 알아줬으면 해요. 나쁜 마음이 아니라 악한 마음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이었다는 거 그냥 믿어줬으면 좋겠어요.



미안해요.



다시는 그런 황당한 행동 같은 거 않겠다는 말, 사실 장담할 수가 없어요. 난 또다시 어떤 형태일지 모르게 아플 수 있어요. ‘조증’이란 게 일정 수준의 선을 넘어가버리면, 스스로 인지할 수 없어요. 그래서 과도하게 이상해지면, 주변에 친한 사람들부터 힘들어지기 시작하는 병인가 봐요. 




내가 많이 미안해요.



병이라고 치부하고 넘기기에, 너무도 당혹스러웠을 당신에게 미안함을 건네요. 진심으로 미안해요. 혹시라도, 다시 아프게 되면, 날 병원으로 데려가 줘요. 그때는 ‘약’이 필요한 때이고, 적절한 약조 절을 통하면, 다시 정상생활이 가능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때 내가 했던 말, 행동들 많이 신경 쓰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요.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그냥 아팠으니까, 그러려니 넘어가 줘요.



사랑하는 그대에게, 많이 미안해요.

그래도 변하지 않고 나에게 잘해줘서, 고마워요.



지금 난 내 아픈 과거의 모습 때문에 상처 받았을 모든 이에게 사과를 건넵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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