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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물방울 Nov 21. 2019

마음을 그림에 쏟는다.

조울증에서 현실로 구출해준 그림

마음을 그림에 쏟는다. 눈물이 흘러나오는 걸 잊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슬픔을 노오란 색깔에 녹여 하아얀 도화지에 바른다. 몰입한다. 견딜 수 없는 현실로부터의 도피이다.


주변의 예기치 못한 죽음은 나를 공황상태에 빠뜨렸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아무 생각이 안 났다.  난 안전선을 넘어버렸다. 그래서 가게 된 응급실.


긴급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내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제어가 안 되는 나였다. 보안요원과 간호원들에 의해 침대에 실려진 채 응급실로 옮겨졌다. 외과적 상처가 아닌데, 출혈이 있지도 않은데, 이렇게 응급으로 바퀴 달린 침대에 실린 채 가는 게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방에 도착하자마자 난 두 개의 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며칠 동안 못 잤던 피곤이 몰려왔다. 그리고 몇 시간의 기억이 없다.


잠깐 깼을 땐 하얀 가운의 의사 선생님이 계셨고, 될 수 있는 대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병실에 입원해야 할 상황이지만, 남는 병실이 없어서 약만 처방받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큰엄마가 돌아가셨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난 견딜 수 없는 슬픔에 갇혔다.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이다. 스트레스다. 불안과 공포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또 크고 불명확한 불안이 다시 찾아왔다. '경조증'.

그렇게 불안정한 채로 며칠을 몇 주를 보냈다.


그때 날 지탱해 주었던 건 바로 '그림'이었다.



위 사진은 고창 유채 꽃밭이다. 친할아버지의 돌아가시고 난 다음 해, 친척들과 산소를 찾았다. 나름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유채꽃 피는 어느 봄날이었다. 생각해보니, 이때 큰엄마도 함께였는데… 그냥 그때의 큰엄마가 떠올라서, 이 사진을 선택했나 보나. 노란 유채꽃. 생각 없이 그냥 그렸다. 그림에 내 마음을 쏟았다. 그렇게 하얀 도화지는 노랗게 변해갔다. 어떤 곳은 푸르게 번져갔다. 그렇게 그림에 내 마음을 칠하니 시간이 지나갔다. 위험한 조증의 경계로부터 벗어났다.


마음을 쏟은 그림


노오랗게 마음을 쏟은 그림


 간혹 그림을 그린 후 사람들에게 공유할 때가 있다. 스케치를 하고, 색을 칠하고, 완성을 하는 동안 받은 치유의 기분을 공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그저 부럽다'는게 꽤 많다. 한가롭게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있어서 부럽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좋아 보이나 보다.


하지만 난 변명하고 싶다.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에 대해.


살. 려. 고


정말 죽을 것 같은 조증의 이상한 세계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향했던 곳이 그림이었다. 내 안이 슬픔과 불안, 공포에 가득 차 있을 때, 난 무언가 기댈 곳이 필요하다. 글쓰기는 '조증'이란 선을 넘어버리면 불가능하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렇게 난 그림과 정통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때 그린 그림은 날 현실로 구출해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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