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득 Mar 24. 2024

눈과 비가 섞여 내리는 밤

240324

 집에 들어오는 길. 어느새 어둠은 바닥까지 깔렸다. 어둠을 가로지르는 전조등의 불빛이 어딘가 걸리적 거리는 날이다. 어둠이 싫은 이들이 밝혀놓은 길 때문에 하늘은 더욱 어두워 보인다. 그 속으로 하얀 색인지 때가탄 회색인지 알 수 없는 눈송이가 물처럼 비집고 들어왔다. 습관처럼 들른 편의점에서는 습관처럼 맥주 4캔을 집어왔다. 비닐봉투 대신 가방에 3캔을 욱여넣고 한 캔은 왼손에 들었다. 물렁한 알루미늄의 표면을 훑으며 걸었다. 집은 발이 알아서 찾아갈 것이다. 맥주에는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판매 금지라고 적혀있었다. 내가 열아홉에서 얼마나 멀어졌는가. 삶이 단조로우면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하는데 열아홉 이후 나의 삶은 과하게 단조로웠나. 사실 크게 상관은 없다. 이런 것에 무던해질수록 다양한 감정을 알아간다는 것이니까. 더이상 나이를 따지는 것도 재미없다는 뜻이니까.


 가끔은 나도 여기가 어딘지를 모르겠다. 눈송이가 자신이 떨어질 자리를 알지 못하듯 나는 하염없이 추락한다. 차마 눈이 다 되지 못한 채 떨어지는 진눈깨비처럼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 나를 막아주는 저항이 존재는 한다지만 결국은 떨어질 것이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어지고 나서야 내 위치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 아니면 질퍽거리는 한탄과 함께 금새 녹아 사라질까. 지나온 길을 돌아볼 시간도 없이 새로운 눈들에 깔려 잊혀질까. 이 역시도 상관은 없다. 그 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다.


 나도 눈물을 수 없이 견뎌냈다. 그런데 오늘 너의 얼굴은 그런 나의 얼굴과 닮았다. 스스로가 무색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너를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아무 것도 안전하지 않고 모든 것이 가짜같은 그런 마음. 조금은 이해한다. 그래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참아야겠지. 눈도 비도 아닌 것처럼 이 느낌도 금새 사라지겠지. 다시 이런 밤을 마주하면 다시 생각하겠지.  




*모든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