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라>는 제77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미국의 떠오르는 거장 '션 베이커'의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대가 되는 영화다.
나 역시 지난주 '씨네 21'에 비평을 기고했다. 관련 글은 이번주 발간되는 씨네 21 제1482호에 "사회학자와 영화평론가 <아노라>를 보는 시선"이라는 제목으로 특별 기획 코너에 실렸다. 많이 봐주세용.
이와 별개로 이번 글에서는 션 베이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아노라>는 이해하기 위해 알면 좋은 이야기들.
션 베이커는 지금 미국에서 가장 핫한 인디영화감독이라 말할 수 있다. 짐 자무쉬, 샤프디 형제 등 인정받은 작가는 많았지만 지금 시점에서 가장 핫한 것은 누가 뭐래도 션 베이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디 영화의 지향을 분명히 한다. <아노라>는 그의 영화 중에서 가장 자본의 냄새가 많이 나는 작품이지만, <스타렛>(2014), <탠저린>(2018) 등에서 이어져 온 인디 감성은 여전히 진하다.
그 덕인가. 션 베이커는 지금 미국의 현실, 그중에서도 성 산업과 자본의 결합을 가장 예리하게 파고드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스스로 밝혔듯이 성 노동자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단순히 성 노동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션 베이커는 성 산업의 마냥 환상적인 이미지에서 출발해서, 그 이면에 놓인 성 노동자의 현실에 도착한다. 그의 카메라는 꿈과 악몽을 고루 오간다. 하지만 그는 인물을 동정하지 않는다. 그저 성 산업이 들려주지 않는 이야기를 보여줄 따름이다.
하지만 션 베이커의 작품은 우울하지 않고, 여기에는 늘 이상한 활기가 넘실댄다. 이것이 션 베이커의 작품이 사랑받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의 빈민층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삶을 힘껏 살아날 때의 소란과 소동이랄까.
국내에서는 디즈니랜드 인근 모텔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 관한 알록달록한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2016)가 사랑받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탠저린>(2018)을 가장 좋아한다. 이 작품으로 션 베이커를 처음 접했는데, 그때의 충격이란. 트랜스젠더 여자들의 미친 활기와 어느 밤 세탁소에서 맞닥뜨린 평온.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탠저린>은 그냥 재밌다. 션 베이커를 알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
평단의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레드 로켓>(2022) 역시 션 베이커의 수작 중 하나다. 다만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인 데다, 션 베이커의 작품 중에 가장 노골적이고 뾰족하다. 그가 자주 활용하던 웃음과 농담도 확 줄었다. 미국이 그다지도 좋아하는 이미지의 실상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라고 션 베이커는 말한다.
칸 영화제의 주목을 받았지만, 앞으로도 션 베이커는 인디 정신을 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작가가 동시대에 있는 것은 행운이다. 현실에 밀착해 있으면서, 거기에 자신의 프레임을 뒤집어씌우지 않는. 포장하지 않지만 존중을 버리지 않는. 그에 관해 썼던 글을 아래 첨부해 둔다.
유령들의 낙원, <플로리다 프로젝트> https://brunch.co.kr/@comeandplay/88
<리코리쉬 피자> <레드 로켓>이 그리는 지금, 미국 https://brunch.co.kr/@comeandplay/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