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나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주변에 소식을 전하는 일이었다. 이 일이 왜 그다지도 힘든지 나조차 이해가 안 되었지만, 한 통화를 할 때마다 수차례 심호흡을 하곤 했다. 실은 아직도 쉽지 않다. 나는 그 이야기를 꺼낼 때 내 안에서 울컥 대며 올라오는 뜨거운 무언가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짐했다. 기필코 산뜻하고 즐거운 퇴사자가 되겠다고. 그런데 감정이란 게 맘먹는 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다짐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은 피하고는 했다.
그래도 주변과 인사를 나누는 때는 마음이 좋았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퇴사한 지 4달 정도 지났을 때, 리멤버 어플에 '씨네 21'에서 주었던 영화평론가 명함을 등록했다. 2016년부터 갖고 있었지만, 회사에 다닐 때는 평론을 직업 삼아 하지 않았으므로 오해가 생길까 봐 등록하지 않았던 명함이다. 지금도 직업이라 말하기 어렵지만, 비평에 전념하자는 각오를 담아 새로 등록했다.
그런데 이것이 내가 '씨네 21'로 이직했다는 오해를 일으킨 것 같다. 나는 그곳에서 자주 활동할 뿐 소속은 아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명함에 '씨네 21'이 찍혀있으니, 충분히 있을 법한 오해였다. 명함을 등록한 다음날 한 지인 분이 씨네 21 사무실에 축하의 의미로 꽃다발을 보냈다. 그날 꽃배달 소식을 듣고 놀라서 씨네 21 사무실로 달려갔다. 간 김에 계신 분들과 인사하고, 꽃다발을 소중히 품에 안고 나왔다. 아래 사진은 그때 받았던 꽃다발을 건물 1층에서 찍은 것. 비록 작은 오해가 있었지만, 그간의 인연에 대한 인사와 새 출발을 위한 축하라고 생각하며 감사하게 받았다. 그날 약속이 많아 하루종일 꽃다발을 들고 다녔다. 팔이 뻐근할수록 마음이 따듯했다.
그리고 최근에도 종종 미처 인사하지 못한 분들에게 뒤늦게 안부를 전한다. 그럴 때 나는 언제나 가능성을 열어두고 말한다. 언젠가 돌아갈지도 모르겠다고. 물론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지만, 실은 매우 적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수표를 날리는 것은, 이별의 아쉬움을 줄이고 인연의 끈을 다잡아 보려는 작은 몸부림이다.
퇴사한 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원해서 떠났지만, 다시는 같은 곳에 돌아갈 수 없고 같은 경험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복귀할 수 있는 미약한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하지만 가능성이 열려있다 한들, 이별은 이별이다. 그 말에서 오는 감정의 파고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기를 쓰고 작별이란 말을 쓰지 않는 나는 겁쟁이다.
그리고 꽤 시간이 흐른 지금, 예전보다 조금은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퇴사했고, 한 때 몸담았던 업을 떠났다고. 비록 여전히 마음속에 이상한 것이 꿈틀대지만, 그런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글은 예전의 나를 알던 분들에게 인사를 올리기 위해 썼다. 인생의 한 시절을 함께 보낸 이들은 좋고 싫음을 떠나 소중한 것 같다. 감정의 움직임이 느린 나는 마지막 안부 인사를 꺼내는 데 퍽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세어보니 딱 6개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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