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l 28. 2024
만약 지금 당장 회사를 관둘 수 있다면, 무얼 하고 싶은가?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여행? 호캉스? 맛집? 다 필요 없어. 나는 오로지 '잠'이 자고 싶었다.
내 방에 조용히 돌아와 늘어지게, 푹푹 자고 싶었다.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침도 흘리고, 얼굴에 베개 자국도 내면서. 노곤노곤 녹아버린 몸이 침대를 뚫고 바닥까지 흘러버리게. 그렇게 아주 오질 나게 자고 싶었다.
한동안 주말에도, 심지어는 휴가 때도 깊은 잠을 못 잤다. 운동을 가열차게 한 날에는 잘 잤지만, 그건 잠이라기보다 기절에 가까웠다. 솔솔 오는 졸음을 맞이하며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버리는, 그런 다디단 잠을 자본 지 언제인가.
그러고 보면 잠에 대한 나의 갈망은 나름대로 뿌리가 깊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겉으로 티가 나지 않으나 몸이 슬며시 반응하는 타입이다. 잠이 잘 오지 않는 것이 대표적 반응이다. 그러다 보니 재수 때도, 로스쿨 때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잠을 설쳤다. 잠을 못 자면 예민해져서 스트레스에 더 취약해졌다. 나쁜 사이클이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생을 통틀어 내게 잠은 늘 신성한 것이었다.
어쩌면 내 퇴사의 이유도 대단히 고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잠 좀 편하게 자고 싶다는 본능의 발로일지 모르겠다. 한심해서 인정하기 싫지만. 왜 인간이 그렇지 않은가. 질척 질척한 본능적 욕구로 결정을 내려 놓고, 이성을 총동원해 그 결정에 금칠을 하고 그럴듯한 포장을 하곤 한다.
그렇다면 퇴사 이후, 과연 나는 원대로 푹 잤을까?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나는 출근시간만 되면 알람을 놓쳐 지각한 사람처럼 경기하면서 호다닥 일어났다. 그리고 '아 맞다'를 되뇌며 다시 몸을 뉘었지만 이미 정신은 말똥말똥 한 상태. 새벽 무렵 늦게 잠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출퇴근 시간에 길들여진 나의 몸은, 정확히 같은 시간에 나를 황급히 침대에서 밀어냈다. 퇴사 후 바란 것은 단 하나, 푹 자는 것뿐이었는데 이 단순한 행위조차 쉽지 않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이 상태는 무려 한 달 동안 지속됐다. 나는 그때 내 몸뚱아리는 이제 회사원, 아니 현대인의 그것으로 완전히 변태하여 다시는 어린 시절처럼 깊은 잠에 들지 못하리라 생각하며 슬퍼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다시 한 달이 지난 지금, 몸도 휴식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적을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몸은 정직하다고.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나는 특출 나지 못했다.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부족한 직장인이었다 해도 그 시간은 내 몸에 고스란히, 정직하게 배어들어 마침표를 찍은 이후에도 한동안 나를 움직였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는 가운데 아침 일찍 눈이 떠질 때마다 마음은 요상하게 꿀렁거렸다. 뿌듯하다 해야 할지, 서글프다 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잠시 멍하니 앉았다가, 다시 눈을 감고 이불을 당기는 그런 나날이 한동안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