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해두고 시작하자면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2012)은 수작이다. 이 작품의 남다른 점은 부서질 듯 여리고 울적한 감성을 자분자분 손으로 짚어가는 그 섬세함과 꼼꼼함에 있다. 한국 관객 누구나 '첫사랑'을 두고 어느정도 공통된 감성을 공유한다. 그래서 그것을 다루는 감독은 자칫 둔감해질 수 있다. '첫사랑'이라는 관념 아래에는 이미 너무 많은 문화적 공감대가 풍성하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섬세하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전달되고도 남는 감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용주는 들뜨지 않고 차분하고도 뚝심있게 자신이 준비한 이야기를 끝까지 전달한다. 이것은 타고난 성정이자 재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지점은 이용주의 전작이며 한국 공포영화계의 숨겨진 수작인 <불신지옥>(2009)에서부터 예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어쩐지 <건축학개론>을 볼 때마다 목에 걸린 가는 생선가시처럼,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점 하나를 확인하고는 한다. 오늘은 그 점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의문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서연(한가인)은 어떻게 승민(엄태웅)에게 돌아왔을까. 이 불가사의한 만남은 어떻게 실현된 것일까.
어린 시절의 첫사랑이 다시 돌아오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다. 게다가 승민은 곧 결혼을 해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이다. 이것은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과거와 결별하고 인생의 새로운 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새출발을 앞둔 시점에 첫사랑을 다시 마주한다.
게다가 그들은 어린 시절 서로 미숙하고 타이밍도 어긋나서 안타깝게 이뤄지지 않았던 사이다. 그리고 다시 만나 어린 시절에 몰랐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연한 재회와 확인. 이런 황홀한 전개는 멜로 세계관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건축학개론>은 그것을 실현시켜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이뤄질 수 없는 것이 이뤄지려면 희생이 필요하다. 모든 제의에는 제물이 있는 법이다. 이 영화가 둘의 만남을 성사시키고자 희생시킨 것이 있을까. 그런 의문을 한 켠에 두고 영화를 다시 떠올려보자.
<건축학개론> 스틸컷
<건축학개론>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전한다. 배우 이제훈과 수지가 나오는 과거 부분은 기억에서 막 꺼낸 듯 한 생생함과 자연스러운 디테일이 특징이다. 우연히 같은 동네에 살아서 친해지게 되는 과정, 옷에 새겨진 브랜드의 철자가 틀려서 가짜 상품이라는 점이 드러났을 때의 창피함, 차를 기다리며 입을 맞추는 순간 등 어린 남녀가 가까워지는 과정에는 연애의 생생한 결이 살아있다.
그리고 승민이 꾸린 현재의 모습 역시 자연스럽다. 건축학도였던 그는 성장해 건축가가 되었고, 같은 회사의 여자와 연애를 하며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성장한 서연의 모습은 조금 다르다. 그녀는 꿈꾸던 것과 달리 아나운서가 되지 못했고,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으며, 전남편과의 사이도 좋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건축학개론>의 많은 인물 중에서도 유독 현재의 서연에게 불행이 집중된 것처럼 보인다.그리고 생생한 디테일을 자랑하던 영화는 이 부자연스러운 상황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건축학개론> 스틸컷
서연은 적당히 적극적인 동시에 수용적이다. 어느날 홀연히 승민을 찾아올 정도로 적극적이지만 그에게 매달리거나 따져묻지 않으며, 어느 선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설레임을 안겨줄 정도로 도발적이지만 위협적이지 않다. 서연은 과거에 젊은 승민에게 다가와서 첫사랑을 심어주고, 미래의 어느날 다시 홀연히 나타나 마음을 확인시켜 주면서도, 그의 현재를 흔들지 않은 채로 안전거리를 지키다 사라지는, 지나치게 완벽한 첫사랑의 대상이다.
서연이 완벽한 첫사랑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상황과 성격 때문이다. 그녀는 이혼하며 받은 돈으로 집을 짓기로 결심하고 승민을 찾아온다. 그런데 생각해보자면 둘의 재회는 서연의 상황이 조금만 달랐어도 이처럼 애틋하게 성사될 수 없었다. 그녀가 유명한 아나운서가 되어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거나, 남편·아이들과 생활하느라 정신이 없거나, (승민이 그런 것처럼) 현재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면 말이다.
또 이 재회는 그녀가 조금만 적극성이 부족해 승민을 찾아오지 않았다면 이뤄지지 않았고, 조금만 자제력이 부족해 그에게 진지하게 만나볼 것을 제안했다면 이쁘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건축학개론>의 적당하고 아름다운 결말은 서연의 절묘한 상황과 성격에 빚지고 있다. 이것은 한쪽에 과도한 짐을 지운 결과는 아닐까.
서연은 아름답고 당돌하며 꿈도 많지만, 자꾸만 공백과 미끄러짐을 마주한다. 이 가혹한 우연들에는 달리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녀가 승민을 잠시 만나고 떠나도록 추동하는 것 외에는 말이다.
마지막, 승민이 지어준 집에서 앉아 미소 짓는 서연의 모습이 어딘가 처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다만 나만의 감상일까. 굳이 남녀의 문제로 확대하지 않더라도 <건축학개론>은 아름다운 서사를 위해 하나의 캐릭터만을 지나치게 희생시킨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첫사랑의 대상이 아닌 그냥 '서연'에게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언젠가 그녀의 욕망과 미래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 있기를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