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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n 29. 2022

<탑건: 매버릭>을 보며 계속 무언가를 떠올렸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환상의 대명사였던 그 시절

<탑건: 매버릭> 스틸컷

평론가에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일종의 길티플레저가 아닐까. 적어도 내게는 그런 것 같다. 기가 막힌 스토리라인, 웅장한 음악, 스타의 출연(무려 톰 크루즈),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드는 액션. 이미 예상 가능한 그 자극들에 나는 무릎 꿇지 않겠어. 어림도 없지.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내 입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선수들의 솜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탑건: 매버릭>은 개재밌어! 아니 그냥 다 필요 없고 개재밌다고. 그리고 이런 표현을 내 입으로 하게 되어서 싫어. 싫은데 좋아. 하...


그런데 <탑건: 매버릭>을 보는 동안 나는 신기한 느낌을 받았다. 계속해서 어떤 향수를 느낀 것이다. 물론 이 영화의 전작은 1986년에 개봉했고,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톰 크루즈가 몇십 년 만에 다시 찾아왔으니 영화에서 진한 향수가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나는 이 영화가 '어떤 시절'을 환기시킨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마침내 그 느낌의 실체를 깨달았다. <탑건: 매버릭>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하나의 환상으로 다가오던 순박했던 시절을 상기시킨다.

코로나도, OTT도 없던 시기. 그래서 볼거리를 찾아 영화관으로 가야만 했던 그때(그게 언제인지 정확하게 꼬집기는 어렵다). 영화관이 지금처럼 여러 플랫폼 중에 선택 가능한 하나가 아니라, 환상의 이미지를 제공하는 유일한 장소로서 독보적인 권위를 자랑하던 시기. 할리우드 '대작'이 우리를 탄복시키고, 스크린에는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스타가 등장하며, 동경의 눈으로 영화를 보던 그 시절 자꾸만 떠오르는 것이다.  


그것은 이 영화가 정성 들여 구현하는 압도적인 액션과, 적당히 상투적인 스토리, 익숙한 음악, 그리고 온몸으로 스타성을 내뿜는 톰 크루즈의 육체로 완성된다. 그것들의 절묘하고도 완벽한 합일에, 나는 어느새 동경의 눈으로 할리우드 시네마를 바라보던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 "끝내준다!"를 외치며 입을 헤 벌리고 영화를 보던 그때.


당연하게도 <탑건: 매버릭>이 결점 없는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부드럽게 무화하는 것은 역시나 톰 크루즈의 존재감이다.

한 명의 배우이자 스타로서 단단히 자리를 지키는 그의 모습은 가히 놀랍다. 그는 이전보다 훨씬 완숙한 매력을 내뿜으면서도 청년 시절의 청량함을 간직하고 있다. 항공점퍼를 걸쳐 입을 때, 오토바이를 타고 달릴 때, 싱긋 웃으며 전투기에서 내릴 때 그의 모습은 그저 '멋지다'는 말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런 톰 크루즈가, 그런 몸과 얼굴로, 이제 은퇴할 시기가 아니냐는 물음에 "Not today(오늘은 아니야)"라고 답할 때, 그건 단순한 영화 대사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그 말의 여운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페니(제니퍼 코넬리)는 계속해서 매버릭에게 "그 얼굴 보이지 마"라고 말하지만 그 말이 진심이 아님을 너도, 나도, 톰 크루즈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모두의 기대에 부응해서 몇 번이고 자신의 멋진 미소를 보여준다. 거기에 할리우드 시네마의 빛나던 한 시절이 들어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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