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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Sep 20. 2022

넘쳐나는 예능 빌런과 '몰이 본능'

빌런을 얼마나 잘 뽑아내느냐가 예능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대다.

예능 빌런의 역사는 유구하다. 문득 예전 <슈퍼스타K>에서 이기적으로 행동했다고 전국적으로 욕먹던 처자 한 명이 생각난다. 빌런의 시조새 정도 되려나. 그때 욕하던 사람들 지금 머리 박으세요. 요즘 빌런들 앞에서 명함도 못 내미는 거 가지고 왜들 그 난리였는지 ㅉㅉ 조용히 머리 박는 중.


요즘은 뭐니 뭐니 해도 연애 예능이 대세인 것 같다.

아 뭐야 그냥 <짝> 재탕이잖아.. 나의 고고한 안목과 테이스트에는 맞지 않는다!! 고 우기고 싶지만 물고 빨면서 야무지게 즐기는 중. 패배를 인정합니다. <나는 SOLO> 재미썽. <환승연애>두. 본방에 재방에 유튜브에 떠도는 해석까지 모조리 챙겨보는 나.


예능 빌런은 현실과 맞닿아 있을수록 뜨거운 호응을 얻는다. 요즘 시청자는 똑똑하다. 적당한 프레임으로 뚝딱 만들어낸 클리셰 같은 캐릭터에는 반응하지 않고 도리어 지루해한다. 빌런짓 하는 포인트가 최대한 현실성이 있고 디테일해야, 마치 현실에서 마주친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면서 과거의 기억이 PTSD처럼 되살아나서 시청자가 격렬히 반응하게 된다. 연애 예능, 서바이벌 예능에서 욕먹던 사람들 생각해보자. 대부분 티끌 같은 포인트로 대차게 까였다. 티끌 같다는 건, 예리하다는 것. 그 얇디얇은 포인트로 시청자의 가슴 한편을 톡 하고 건드려야 분노가 와르르 일어난다. 어설프레 둔탁한 빌런짓으로는 감히 움직일 수 없는 게 관중의 마음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주에 <스트릿 맨 파이터>가 보인 연출은 최악이었다.

<스맨파>는 참가자들에게 K-댄스 미션을 시키면서, 중간점검에서 진 팀이 이긴 팀의 백업 댄스를 하게 했다(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 그러면서 백업 댄스가 싫다는 반응과, 울며 겨자 먹기로 그걸 수행하는 출연자들을 보여주며 억지 신파를 짜냈다. 이게 거부감이 드는 이유는 출연자가 아니라 연출 때문이다. 비릿한 패배감, 그걸 다시 극복하는 짜릿한 쾌감을 보여주겠다는 수법은 얕고 빤하다. 여기 동원된 연출은 예능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있다.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프로 댄서들이 '백댄서'로 불리던 시절의 서글픔은 댄서들의 집단 트라우마가 아닌가. 그걸 의도적으로 소환하고 자극하며 손쉽게 시청자를 동요시키려는 태도가 괘씸하다.

출연자를 존중하지 않는 연출은 프로그램의  클래스를 낮다. 빌런을 찾는 예능 프로들은 이런 무리수를 조심해야 한다.



한 편, 빌런이 예능의 필수 요소가 되어버린 것은 우리 안의 '몰이 본능' 때문인 것 같다.

우리 안의 본능이 말한다. 누구 하나를 몰자. 악한 사람이든, 약한 사람이든, 다른 사람이든. 이유는 상관없어. 명분만 적당하면 돼. 다 함께 씹고 뜯는 시간은 짜릿해.


예전 예능들은 아둔하게도 희생양 하나를 완전히 아작을 내고서야 끝이 났다. 그런 프로들은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영악해진 요즘 예능들은 AS도 훌륭하다. 꼭 마지막 화가 되면 빌런을 데려다 그럴듯한 서사를 보여주거나(얘가 사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요), 변명의 기회를 주거나(제가 빌런짓을 왜 했냐면요), 혹은 서로 화해하는 쿨한 모습을 보여주며 욕하던 사람들을 머쓱하게 만든다. 이제 그만 몰이를 끝내자는 시그널. 흥이 깨진 시청자들은 잠잠해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프로그램은 '일반인을 데려다 조회수 장사를 했다'는 욕을 먹지 않을 정도로만 AS를 제공한다. 프로그램은 잠시 동안 화제몰이를 했으니 이미 목적을 달성했다. 뒤탈이 없도록 적당히 마무리를 짓고서 얼른 자리를 뜬다. 시청자들도 너무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전에 진정할 수 있어 좋다. 빌런들은 기분이 나쁘지만 '리스크를 감당하고 출연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것 같다. 본인에게 주어지는 소소한 인기로 마음을 달래. 그러니 이건 희생자 없이 모두가 즐거운 게임.


하지만 아무래도 조금 기괴하다는 생각은 든다.

판이 깔리고, 그 위에서 놀던 누구 하나는 빌런이 되고, 다 같이 질겅질겅 씹어대다 지겨워질 때쯤 끝나는 놀이. 그리고 쿨타임이 지나면, 놀이는 다시 시작된다. 이 지독한 마약에 우리 모두는 서서히 중독되어 가고 있다. 혹은 나 혼자 그런 것일지도. 흠,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매캐한 냄새를 맡으면서도 차마 놀이판을 떠나지 못하는 환자가 혼자만은 아닐 거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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