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악인의 일대기
2화가 시작되면, 드라마는 20분가량을 '전요한(황정민)의 일대기'를 그려내는데 할애한다.
여기서 느껴지는 것은 윤종빈의 짬바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에서도 보여줬듯이, 윤종빈은 뒤틀어진 사회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는 추한 인물을 그려내는 솜씨가 뛰어나다. 그는 당대 사회상과 부정부패, 그 안에서 기생하는 인물의 일대기를 압축적이고도 효과적으로 포착한다. 그 경쾌한 질주가 뿜어내는 쾌감이 상당하다.
빌런이 아닌 포식자, 전요한
전요한은 악인이다.
악인도 종류가 다양한데, 전요한은 그중에서도 '포식자형' 악인이다.
그는 자기 생존을 위해 꾸역꾸역 남을 집어삼키며 세를 확장한다. 이 과정은 마치 곰팡이가 번지듯, 개미가 벽을 갉아먹듯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의 행동이 옳다는 뜻이 아니다. 그의 행동에서 풍기는 느낌이 과장되거나 위악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는 뜻이다. 자기 기준에서 당연한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악행보다 자연재해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빌런도, 미치광이도, 대단한 혁명가도 아니다. 그저 본능을 숨기지 않고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 무자비한 야수일 따름이다. 이 더럽고 습한 늪지대에서, 전요한은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한다.
비즈니스맨, 강인구
그 대척점에 강인구(하정우)가 있다.
그는 철저한 '비즈니스맨'이다. 때때로 주변인에게 따듯하지만 '돈을 벌자'는 본분을 잊지 않는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사업가적 기질의 영향인 것 같다.
국정원 요원 최창호(박해수) 앞에서도 그는 쫄지 않고 자신의 몫을 끈질기게 요구한다.
"강인구 씨가 유일한 방법이에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인구의 태도를 생각해보자. 최창호는 간절한 부탁이라는 취지로 이 말을 했지만, 인구는 자신 외에 대안이 없다는 상대의 약점을 간파하고 정식으로 '거래'를 제안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계약 따내는 비즈니스맨의 모습이다. 그리고 일단 돈을 받으면, 그는 최선을 다한다. 위험하면 도망치라는 말에 인구는 답한다. "도망치면 잔금 없잖아요." 자신의 이득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측면에서, 인구는 전요한과 닮았다.
<수리남> 2화는 점점 선명해지는 캐릭터와 색깔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그 장면, 꼭 넣어야 했을까
개인적으로 실망했던 장면이 있었다. 첸진(장첸)이 전기톱으로 누군가의 신체를 절단 내며(묘사하기도 끔찍하네) 강인구와 대화하던 장면 말이다.
이 장면은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잔인한 만큼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첸진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피가 낭자한 장면을 보여주는 건 가장 자극적이고도 손쉬운 방법이다. 대신 손쉬운 만큼 피로도가 쌓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불필요하게 자극을 남발하면, 그 장면의 긴장감은 상승할지 몰라도 시리즈 전반의 긴장감은 떨어진다. 지나친 자극에 관객이 무뎌지는 것이다. 불필요한 장면을 연출하느라 불감증을 유발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양한 배우진, 그리고 조우진
1화와 마찬가지로 배우들의 다양한 연기를 보는 맛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조우진을 언급하고 싶다.
이분은 그냥, 연기를 너무 잘한다. 조선족 출신의 행동대장 '변기태'를 연기했다. <외계+인>에 이어 <수리남>에서도, 작품이 기우뚱할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 조용히 중심을 다잡는다. 과한 설정과 어색한 연기에 멀미를 하다가도 조우진을 보면 어쩐지 진정이 된다.
그는 신기하게 <도깨비>, <외계+인>, <수리남>처럼 세계관이 강한 작품에 잘 어울린다. 특유의 느긋함과 자연스러움 때문인 것 같다. 윤여정처럼 모던하고 깔끔하게, 과하지 않고 부산스럽지 않게 연기하는 배우다. 그러나 단단한 존재감이 있어서 작품에 설득력을 불어넣는다. 그가 등장하면 믿음직스럽다. 조우진은 뛰어난 연기를 바탕으로 자신이 속한 세계가 진짜임을 믿게 만드는 배우다.
멀지 않은 시일 내에 그가 단독 주연한 작품을 보고 싶다. 오피스 물 같은 거? 멜로도 잘하려나? 지금은 잠깐씩 나와서 감질난다고. 누가 저분 데려다가 작품 좀 찍어봐 ㅠ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