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다.
집 리모델링을 하는 동안 지인에게 고양이 임보를 맡겨두었는데 집을 나갔다.
우리 집에 오기까지도 사연이 많은 아이였는데 결국 지켜내지 못했다.
고양이를 잃고 10년 즈음되니 죄책감도 희미해졌고,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지인도 생겼고
책임질 수 없다면 키우지 않는 게 맞다고 스스로 다독이길 여러 차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침대와 하나가 되어 뒤굴거리고 멍하게 누워있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마음을 정해버렸다.
고양이 보호소를 뒤지고 임보처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먼저 찾기 시작했다.
어린 고양이보다는 성묘가 된 아이들에게 마음이 더 갔던 나는 오히려 선택의 폭이 넓었다.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는데, 예전에 키우던 고양이는 하악질도 심했고 입질도 심해서 부모님도 나도 키우는 내내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임보처를 찾는 고양이 대부분 입질이 심한 아이들이었다. 사실 몇 년 키웠던 아이도 스트릿 출신이었고 임보처를 찾는 아이들 대부분 그런 문제로 파양 되거나 길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이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고민하다가 가까운 지인이 고양이를 입양했다는 인천에 위치한 '고양이 유치원'을 찾았다.
한 번 가서 여러 아이들을 만났고, 두 번째 가서는 유독 마음이 가는 아이를 집에 데리고 왔다.
생후 6개월이 된 브리트니쉬 숏헤어 여아
부모님은 데려오자마자 아연질색했고 당장 데려가라고 성화였고, 난 일주일만 같이 지내보자고 설득했다.
그렇게 일주일 우리 집에 있는 동안 고양이 이름이 없었다. 아연질색하는 부모님 눈치에 이름도 짓지 못하고 그냥 '아가'라 불렀다.
그렇게 집에 온 지 2주가 되었을 무렵 아가는 24시간 울어대기 시작했고 부모님의 성화는 더 커졌다.
이상하다 생각된 나는 고양이 입양처에 문의해 보니 발정이 난 것 같다고 보통 빠르면 5개월에도 발정이 난다고 중성화 수술을 권했다.
그날 바로 동물병원에 아가를 맡겼는데 의사는 아이가 너무 작아서 수술이 좀 어려울 수 있겠다고 2킬로가 넘으면 그때 하자고 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던 나는 수술을 강행했다. 수술을 마친 의사는 아가의 엄마도 많이 작았는지 물어왔다. 3킬로 정도 됐다고 하니 아이가 몸집이 좀 작을 뿐 수술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다행이라 했다.
그렇게 수술을 마치고 나서야 아가의 이름을 '초코'라 부르기 시작했다.
낚싯대만 들이대면 똥꼬 발랄하게 껑충껑충 뛰어다니고 공중 턴에서 바닥 슬라이딩까지
그 작은 몸을 사리지 않고 날아다니는 것만 봐도 하루 피로가 가셨다.
직장에서 찜찜한 있어 퇴근길이 뒤숭숭했던 어느 날도
컨디션이 엉망이라 침대에 시체처럼 누워있던 어떤 날도
내 방에 작은 생명이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안정이 됐다.
물론 부모님이 식사하시는 식탁에 뛰어올라가 야단을 맞기도 하고,
새벽 5시면 알람이 되어 온 집안을 야옹거리며 단잠을 깨우지만
존재만으로도 우리 집 갑이다.
고양이 수명이 길면 20년 짧게는 14년이라는데
한 생명을 책임지겠다고 다짐했으니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며 잘 지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