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란드(Öland) 최남단-Långe Jan에서 바라본 발트해(2021.5.29.)
"이야~ 꼭 제주도에 온 거 같네!"
"그래게, 완전 유채밭 천지인데!"
"자, 드디어 역사의 고장, 칼마르(Kalmar) 주에 입성했어!"
칼마르 주 북부 Edsbruk 지방 유채밭에서(2021.5.29.)
"칼마르? 많이 들어본 거 같은데?"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좀 했구먼...."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세계사에서 북유럽 역사 관련 바이킹족이나 노벨상 말고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이 '칼마르 동맹'이 아닐까?
1400년대 칼마르 동맹 형세
덴마크 여왕으로 노르웨이의 왕위도 겸했던 마르가레트(Margaret)가 스웨덴의 귀족들까지 동원해서 스웨덴의 왕인 알베르트를 폐위하고, 1397.7.13. 지금의 칼마르 주의 주도인 해안도시 칼마르에서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 3국의 국가연합을 결성한 역사적 동맹이지. 즉, 덴마크 왕을 수장으로 하면서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종속적 지위에 두고 120년간 존속한 국가 연합인데, 한마디로 덴마크가 스웨덴과 노르웨이 모두를 지배했던 시절이야.
그러던 중 1520년 덴마크가 스웨덴 귀족 80여 명을 한꺼번에 대학살 한 '스톡홀름 피바다' 사건을 계기로 스웨덴에서 독립 요구가 높아졌어. 그 대학살에서 탈출한 구스타프 바사가 이끄는 반란군이 스웨덴 해방 전쟁에서 크리스티안 2세의 덴마크군을 격파하고 1523년 독립을 쟁취하면서 이 동맹이 해체될 때까지 북유럽 전역을 지배한 대단한 위세를 자랑했지."
"세계사 주관식 당골 문제였어!"
"그 '칼마르'가 이 '칼마르'야? ㅎ"
"동맹 조약이 체결된 칼마르는 남쪽에 위치해 있으니 가는 길에 우선 스웨덴이 낳은 최고의 그룹 ABBA의 멤버 Björn Ulvaeus의 고향(태어난 건 예테보리지만 유년시절을 여기서 보냈다고 함)인 북부 Västervik나 좀 보자. 동부 해안가 일대의 5천여 군도들은 찍는 대로 정말 그림이야."
칼마르주의 위치와 세부 지도(출처 : 위키 피디아)
Västervik시 풍경(출처 : 시 안내 책자)
"히야~ 정말 멋지군... 한 시간을 넘게 달려도 눈을 뗄 수가..."
"근데, 저 바다 건너편에 길쭉한 건 육지야, 섬이야?"
"아~ 저건 스웨덴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외란드(Öland) 야."
북부 Neptuni åkrar 자연보호구역
"외란드는 면적이 1,345 km2로 거의 제주도(1,850 km2)에 맞먹는 큰 섬인데, 너비는 16 km지만 길이는 137 km에 달하는 길쭉한 모양으로 가장 높은 곳이 55m에 불과한 석회암 기반의 아주 평탄한 섬이야. 칼마르 해협을 두고 길이 6km의 외랜드 대교가 연결되어 있지."
"다음 여정에 고틀란드(Gotland)라는 스웨덴에서 가장 큰 섬을 갈 건데 굳이 저길 갈 필요가 있을까?"
"넌 아침에 밥 먹었는데 점심 뭐 하러 먹냐.... 외란드는 그냥 넘어가기는 아까운 섬이야.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고 칼마르 해협과 발틱해 사이에 있어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로 역사적 유적도 많을 뿐만아니라 그 풍경이 너무나도 독특하고 아름다워 유네스코 세계 유산(UNESCO World Heritage)에 등재되어 있기도 해.
그래서 스웨덴 사람들이 휴가철 힐링 차원에서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고... 스웨덴 왕실의 여름 휴가지인 솔리덴(Solliden) 궁전도 여기있어. 1906년 이태리의 르네상스식 정원의 영향을 받아 건축된 이 궁전은 5월 중순에서 9월까지 일반 대중에게도 개방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
솔리덴(Solliden) 궁전 솔리덴 궁전을 거니는 스웨덴 공주
"우와, 얼마나 좋으면 왕실의 별장이 있을까! 뭐 칼마르 바로 가기 전인데, 한번 가보자!"
외란드는 본토와 떨어져 있지만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해 다수의 유적을 남긴 곳이며, 이미 로마제국 군대에서 복무했던 외란드 출신 군인들이 사용했던 동전들도 이 지역에서 출토될 정도로 역사가 깊다.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어 이미 5세기 경부터 요새가 지어졌으며, 섬 곳곳에 매장 석묘터가 있고 바이킹족의 30m가 넘는 배는 물론 수천 년 전 조성된 마을 등이 발굴되는 등 섬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힐링과 사색의 섬 외랜드의 남부
섬의 북부는 역사적 유적들이 많이 있는데, 17세기 칼 구스타프 10세가 지어 거주했다는 5천 평방미터에 이르는 보리홀름(Borgholm) 성이 대표적이다. 이 성은 1806년 화재로 소실된 채로 남아있지만, 발굴된 전시물과 다양한 문화 행사로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하여간 섬 곳곳에 왕실의 자취가 남아있는데 이 섬은 그들의 사냥터로도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16세기에는 이 지역의 개들이 왕족들의 사냥감인 사슴을 잡아먹지 못하도록, 왕명으로 다리 하나씩을 자르게 해서 모든 개들의 다리가 세 개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보리홀름(Borgholm) 성
반면 남부는 북부와는 확연히 다르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고즈넉한 자연 풍광이 일품이다. 다수의 매장 석묘터와 철기 시대부터 중세까지 고대의 요새 마을로 유명한 에크토릅(Eketorp) 요새 마을 이외 광활한 자연이 펼쳐진 그 황량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참고로 스웨덴의 세계적인 식물학자 칼 본 린네우스(Carl Von Linnaeus)는 1741년 에크토릅 요새를 비롯해 외란드 전체를 탐험하면서 "이 섬의 해안가에 와보고 나서야 이 지역이 다른 스웨덴 지방과 얼마나 다른지 알았다"라며 독특한 환경에 감탄했다고 한다.
석기시대 집단 묘지 터. 섬의 상징인 풍차도 보인다. 에크토릅(Eketorp) 요새 터
섬의 최남단에는 오텐비(Ottenby) 자연보호구역이 유명하다.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이래 중세에는 주요 무역항으로 번성했고, 1785년에는 지역의 상징이자 41.6m로 스웨덴에서 제일 높은 등대인 Långe Jan(영어로 Tall John의 뜻)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쟁 중 잡혀온 러시아군 포로들을 동원해 만들었다는 이 등대는 Norrköping에 있는 해양청에서 원격 조정을 통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오텐비(Ottenby) 자연보호구역(2020.10.29.) Långe Jan 등대(2020.10.29.)
오텐비 자연보호구역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매년 찾아오는 25,000여 마리의 새들의 군무인데, 비수기 철에도 많은 사진작가들이 이들의 군무를 찍으려고 찾아온다. 섬 끝으로 보이는 발트해를 배경으로 수많은 새들의 비상을 보는 것 자체가 장관이다.
"참, 그런데 사람마다 돌아본 느낌의 차이는 있겠어. 젊은 사람들에게는 좀 지루할 수도..."
"그래 맞아. 하지만 우리같이 좀 나이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레트로 감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런 조용한 풍경도 정말 좋은 것 같은데. 시간만 있으면 좀 앉아 여유를 느끼고 싶어. 이런 데서 힐링을 찾고, 쉼표를 맺으면서 스웨덴 사람들은 일상에서 다시 추진력을 낼 수 있을 거 같아. 정말 스웨덴틱한 섬이군."
그들은 외란드에 마음을 두고, 역사의 도시 칼마르로 향했다.
외란드 136번 국도의 목가적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