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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Jun 12. 2023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도전기(6)

100승 아마추어와 1승 프로와 마주쳤을 때 - 출판사의 피드백

* 브런치북 출판 관련 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해 궁금하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 지난해 12월 수상 이후 출판사와 소통하면서 실무적으로 느낀 점을 적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처음 출판사로부터 3월까지는 초안을 보내달라는 부탁을 받고 브런치북에 올렸던 글들을 긁어모으고 사진을 첨부한 초안을 문서파일로 만들어보니 58장 정도 되었다(A4 기준, 글자크기 10, 줄간격 160). 참고로 처음에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지원할 때 안내받은 기준이 60분 정도 읽을 분량(브런치북을 만들고 나면 제목 있는데 나옴)이라고 해서 그에 맞추려고 굳이 노력한 것은 아닌데 60분 분량이 나왔었다. 


사실 이것이 문서파일로 되면 어느 정도 될까 궁금하긴 했었는데 예상한 수준 정도로 나왔고, 예전에 수상한 작품들 보면 내 글보다 분량이 적은 것도 많이 보아 브런치북에 게재된 사진들을 그대로 다 넣으면 어느 정도 책은 만들 수 있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스웨덴, 그것도 북부에 대한 풍경은 한국에서 많이 소개되지도 않았을 테고, 내가 다닌 곳이 정말 인적이 드물고 차들도 안 들어가는 곳들이 많아 재밌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월 말부터 '마누라 속이기 in Sweden 외전'이라고 앞으로 나올 책에 대한 홍보 겸 그간 올리지 못했던 글들도 조금씩 올리는 여유도 부렸다.   


그리고 출판사 측에서도 A4로 100쪽 분량은 돼야 한다고 해서, 평소에 일기나 블로그 등을 통해 다른 글들을 많이 써왔기에 거기서 10년 치가 넘는 축적된 글들에서 40대가 공감할 수 있는 글들을 뽑아 수록하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다른 브런치 북은 물론 네이버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 등과 몇 권되는 일기장, 그리고 자투리 글들까지 다 찾아보았고 결론적으로 '40대 남자의 일기'라는 시리즈로 중간중간 넣기로 했다. 

 

내 생각에는 지평선에 태양이 걸린 백야 사진이나 40대 시절 쓴 글들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분량은 105쪽이 되었다. '아, 역시 난 어릴 때부터 선생님 말씀은 잘 들었지.'라고 자뻑하면서 마감일을 10일 넘게 남긴 3.18. 보냈다. 출판사 측에서 '참 잘했어요'라고 도장이 날아올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요런 걸 예상했었지 -_-;



그리고 1주일 정도 지나 출판사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다. 편집팀 내부 검토 결과, 초기 의도했던 컨셉 방향에서부터 차이가 있는 것 같다는 메일을 받고 엇!이라는 충격을 받았다. 몇 가지 날카로운 지적이 있었는데...



첫째 출판사 측이 지향하는 '마누라 속이기'는 여행사진집이 아닌 중년 남성들을 위한 힐링에세이라는 것이다. '마누라 속이기'라는 제목은 사람들이 책을 집어 들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일단 책을 집어드는 단계를 넘어 독자들이 이 책에 대해 기대하고 있는 것들-40대 중년 남성의 남편, 아빠로서의 무게와 부담, 고뇌와 공감 등-을 전개하며 공감을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런데 웹사이트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사진들은 그 공감을 방해할 수 있는 요소가 될 것이다. 오히려, 저자가 직접 그린 제목과 관련 있는 만화가 특색 있고 관심을 증폭시킬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일기 형식의 글은 중년 남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가 상대적으로 적다. 자신의 일도 골치 아프고 고단한데 다른 사람의 여행이야기나 고민들을 받아들이기에는 현대인들은 심적 여유가 없다. 


셋째, 제목에서 흥미를 끌었는데 막상 첫 페이지의 내용이 흥미롭지 않다면 다시 내려놓게 될 것이다. 보통 책을 구입할 경우엔 사람들은 먼저 제목을 보고 표지를 보고 작가를 보고 첫 챕터의 첫 장을 본다. 온라인 서점에서도 책의 앞쪽 30페이지까지 미리 보기를 제공하는데, 이 첫 출발점에서 흥미를 끌거나 관심을 유발하지 못하면 선택되지 않게 된다.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수많은 책이 진열되어 있는 서점에서 쉽게 지나치는 독자가 책을 보고 일단 멈추었다면 그 멈추어 선 상태에서 최종 선택되기 위해서는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결국 마누라 속이기라는 제목에 흥미를 가진 독자에게 어떻게 하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게 하는가 그래서 결국 최종 선택될 수 있는 여지를 끊임없이 이어 갈 것인가 하는 부분이 가장 큰 관건이다. 서점의 브런치 코너에는 본상과 특별상 수상작 모두 50명의 작가들이 써낸 책들과 함께하는데, 단지 책을 냈다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과정에서 어떻게 독자들에게 어필하고 선택될 것인가 하는 어려운 과정이 남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출판사의 첫 피드백을 읽고 나서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많이 달랐고, 프로인 그들이 생각하는 '출판'은 내가 지금껏 써왔던 '글쓰기'와는 또 다른 것이었구나 하는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누구나 글쓰기는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선택받으려면 선택될 수 있도록 어떤 구상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뼈아픈 지적이었다. 특히 독자들은 책의 첫 장이나 30페이지까지의 미리 보기에서 결정한다는 것은, 나도 그렇게 해왔으면서 막상 독자의 반대편에 서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사진도 말 그대로 인터넷 시대에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사실과 그래서 나만 좋을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고 새로 추가했다는 일기도 너무 우중충한 내용인 것만 같아 안 그래도 암울한 사람들이 별로 보고 싶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돌려 생각해 보니 전문가인 그들의 생각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마치 아마추어 전적 100승이라도 프로 전적 1승인 선수를 상대했을 때의 느낌이 이런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걱정이 생겼다. 


아. 근데 초안에 사진이나 ''40대 남자의 일기' 시리즈를 없애면 어떻게 하지? 그게 분량의 거의 반은 넘은 것 같은데.... 앞이 캄캄해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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