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브라질로 부임한 후 외교부에 인사차 방문하면서 한국대사관에서 왔다고 하면 다들 비슷한 말들을 하면서 미소를 띠웠다.
"아! 그 한국 대사님! 노래 잘 부르시죠. ㅎㅎ"
분위기는 처음부터 부드럽게 흘러갔다. 아, 그냥 어디서 노래하셨나 보네. 하긴, 근엄하고 접근하기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진 대사님이 노래 부르는 것 자체가 신기하긴 하겠지.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운전사에게 물었다.
"아, 우리 대사님은 그냥 노래를 잘 부르는 게 아니라, 브라질 사람들의 마음을 그냥 훔쳤어요. 정말 잘해요. 유튜브에 보면 많이 있어요. 공중파도 탄 것도 있고. 대사님이 부르는 노래는 우리 브라질 사람들이 다 아는 노래라서 한국 대사가 그걸 부른다는 것이 더 특이한 것이지요."
대사님이 종종 행사에서 부르는 브라질 노래인 'Evidências'는 말 그대로 브라질의 '국민노래'다. 우리나라로 치면 '가왕' 조용필의 최고 대표곡이라고나 할까. 누가 들어도 곡도 그리고 가사도 좋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걸 한국 대사가 부르니 가히 신기할 만하겠지.
대사님은 그것 말고도 수많은 브라질 노래를 정말 유창하게 부르니 브라질 외교가 뿐아니라 브라질 국민들에게 소위 '인싸'가 되었다. 대사님을 수행하고 다니다 보면, 길거리에서 태극기를 보고 안에 대사님을 본 시민들이 소리를 지르는 것도 보았다. 우리 정부가 공공외교라고 하여 한국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고자 수많은 예산을 들이는 것도 결국은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고 친근하게 만들려는 것이 목적이라면, 대사님은 혼자서 수백억의 상당의 공공외교를 혼자 하고 있는 셈이다. 공무원 생활하면서 보기 드문 분이다.
올해는 브라질 한인 이민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고, 최대의 국정 과제 중 하나인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로 한국에서 최단으로 와도 비행기를 두 번 타고 35시간이 걸리는 이곳 브라질리아까지 우리 기업과 공연단이 오면서 대사관 주관 행사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바쁘긴 하지만 보람 있고, 대사님의 노래뿐만 아니라 무대 매너, 참석자들이 푹 빠지게 하는 멘트 등을 듣다 보면 나이 오십에 다시 공부하는 느낌이다.
그러던 5월 초 대사님과 브라질 상원 의회에 들어가는 길에 차 안에서 대사님이 나에게
"박 참사관, 이번에 5월 행사에는 박 참사관이 노래 좀 해봐. 연초에 한인회 초청 행사 때 부른 거 좋던데."
"네?" 나는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생각에 말이 안 나왔다.
"내가 보기엔 그 한국 노래도 브라질 사람들이 좋아할 거 같애. 확신한다. 준비해."
나는 말도 안 된다고 펄펄 뛰었지만, 대사님은 자신은 확신한다고 밀어붙이셨다. 그리고 무관도 노래 잘하던데 한 곡씩 맡으라고 하시면서.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그에 대한 걱정이 가시질 안았다. 나중에 그 말을 전해 들은 무관도 내 방에 와서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했으면 좋겠냐고 했다. 글쎄요... 나도 답을 못했다.
5월은 여러 가지 일도 많았지만, 룰라 대통령이나 G7 정상회의 등에 대한 분석으로 일이 많아 이후로 그다지 신경 쓰지를 못하다가.. 점점 행사 날이 다가오니 걱정이 되었다. 가끔 대사님이 내 방 앞을 지나가시다가 "잘 돼가?"라고 하시면 네... 란 말 밖에 못하고. 또 찾아오는 무관에게 준비해야죠 뭐...라는 말과 함께.
드디어 당일이 되었다. 아침에 무관이 찾아왔다. 그런데...
"제가 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기쁩니다.ㅎㅎ"
앗. 나만 혼자 하게 된 것이었다. 이런... '독박 썼다'라는 말이 딱 맞는 순간이었다.
이후 행사가 시작되었는데, 다행히 대사님이 먼저 두 곳을 부르시고 내려오셨다. 환호성이 터졌다. 다음 사회자가 나와 내 노래에 대한 소개를 하자, 브라질 사람들을 비롯해 다른 대사관에서 온 사람들이 뭐지? 하는 듯 웅성거렸다. 마음의 준비도 안된 상황에서 전주가 흘러나왔다. 아....
기다리는 마음....
그다음부터는 그냥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불러댔다. 앞에 사람들이 족히 이백 명 정도는 돼 보이는데 라이트 때문에 보이지도 않았다. 앞이 캄캄하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다. 전설의 복서 마이크 타이슨 선생 왈 "(도전자들이)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나한테 쳐 맞기 전에는."라는 명언처럼, 그전에 어떻게 어떻게 해야지 하는 생각은 다 날아갔다.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 밖에.
오죽하면 눈감고 부르겠나. 앞에 아무것도 안보이니.
노래가 끝나자 다행히 환호성이 터졌다. 의외로 참석한 사람들이 같이 소리를 지르고 춤까지 추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 교민이나 기업인들은 물론, 브라질, 미국, 독일, 중국 등 다른 나라 사람들도 너무 재밌었다고 해주어 망신은 안 당했네.. 하고 내려왔다. 행사 마지막 우리 기업인들과 공연단들과의 단체 사진 촬영에도 불려 갔다. 아휴, 부끄러운데.
오른쪽 끝에서 10번째, 창피해서 고개 숙인 키 작은 이가 접니다.
끝나고 우리 기업인들과 공연단 관계자들과의 뒤풀이에서 대사님께서 한 말씀해 주셨다.
"그래 잘했다. 노래도 중요하지만, 그런 무대 앞에 서면 관중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눈이나 동작이 움직임 하나하나도 다 봐야 해. 그래야, 나중에 다른 행사에서 연설을 하거나, 아니면 교섭을 할 때도 상대방의 심리를 읽을 수 있고 도움이 많이 된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오늘 그만큼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린 거야. 본인은 모르겠지만 한 뼘 더 커진거라고. 오늘 새로운 도전을 한 것이야. 수고했어."
그날 한국에서 오신 공연단과 중남미 지역본부에서 온 기업인들도 행사가 잘 마무리되어 마음이 놓였는지 뒷풀이가 꽤 늦게 끝났다. 집에 들어와 잠자리에 누웠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이제껏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했고, 무대에서 노래하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고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으며, 어쨌건 이 나이에 하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경험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보면, 올해 들어 나는 더 큰 도전도 하고 있다. 올해 8월 예정인 출간 프로젝트. 올해만 벌써 출판사와 크게 세 번의 교류를 했고, 지난달 거의 마지막 수정 원고를 넘겼다. 쉽게만 보이는 가수들의 무대에 정작 내가 서보니 앞이 캄캄했던 것처럼, 출판사의 피드백은 날카로웠고 때로는 감탄하게 만들었다. 아. 이들은 정말 출판을 했을 때 중요 포인트를 정말 팍팍 집는구나라는 생각에, 매번 10장이 넘는 검토 결과와 수정 방향을 받아볼 때는 돈주고도 못 살 것 같은 좋은 과외를 받는 느낌이었다.
출판사로부터 2차 피드백을 받고 보낸 수정 원고. 원래 브런치북 보다 분량이 두 배가 늘었다.
물론 그 와중에 원래 분량보다 거의 두배로 글이 보강되고 추가할 만화까지 그려 넣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원래 브런치북 출판프로젝트에 수상했던 지난해 글이 단순히 온라인상에 정리되었던 것이라면 이제는 손에 쥐어질 수 있는 책으로 만들어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배 속에 아기가 점점 커져가는 느낌이랄까.
보강된 만화. 오래간만에 그리려니 쉽지 않았다.
특히 바빴던 올해 상반기 일정에 퇴근 후 잠들기 1~2시간과 주말 모두를 써가며 내가 쓴 글을 또 읽고 읽으면서 보강도 했지만, 아 정말 유명 작가들은 대단한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과 좌절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 나이에 뭔가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더 들어 마칠 수 있었던 거 같다. 그렇지 않은가. 앞으로는 그 도전 과정도 여기에 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