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속이기 in Sweden 외전(8) -그렇지만, 나는 괜찮습니다
그렇게 12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 소식을 듣고 지인들에게 연말 인사를 보내면서 같이 내 브런치북도 첨부해서 보냈다. 의례 나오는 답처럼 축하해... 책 나오면 꼭 사볼게... 등등의 답장이 왔다.
가장 친한 대학 동기가 동기모임 밴드에 사실을 올리겠다고 했다. 좀 쑥스럽긴 했지만 그래라고 하면서, 예전에 내가 그렸던 허접한 만화나 글에도 환호해 주던 친구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무슨 반응이 나올까 또는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이들의 연락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했다.
예상과 달리, 그 글에는 '좋아요' 5개만 달렸을 뿐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혼자만의 착각이고 기대였을까. 오히려 생각지 못했던 동기 한 둘에게 카톡이 왔을 뿐. 브런치북에는 아무런 글이나 구독에 대한 것은 없었다. 얼마 전에 자신이 고위공무원으로 승진을 했는데 축하 전화를 두 통 정도밖에 못 받았었다는 어느 지인의 넋두리가 생각났다. 남을 미워하는 것보다 축하해 주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도.
한 6년 여의 세월 동안 뭐가 변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변한 게 있다면 그동안 우리들은 점차 다가오는 나이먹은 이들이라는 편견과 경쟁 속에서 그렇게 40대의 끝을 지나 50에 다다랐다는 것. 그것 뿐인데. 하지만 그 하나는 큰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힘들고 외로운 터널을 지났을 텐데 그들이라고 그러지 않았을까. 그런 그들에게 누군가를 축하해 주는 여유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내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동기들의 게시판에 승진 축하 글도 올라오지 않은지 얼마나 됐으니. 그렇게 한 꺼풀 한 꺼풀 떨어지는 것이 이제 내가 맞이해야 할 현실이었다. 나에게 50대로 진입하는 현실은 그런 것이었다.
새로운 일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 공지의 영향인지 조회 수도 조금씩 늘고, 구독자 수가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물론 남들처럼 몇 배씩 팍팍 늘은 것은 아니지만, 화분에 씨앗을 뿌렸는데 새싹이 조금씩 올라오는 느낌? 그렇게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하트가 달리고 댓글이 달리며 구독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브런치북 인사이트 리포트'를 통해 누적 조회수도 6,600명이 넘어가고 의외로 내 브런치를 보는 사람들이 50대 여자분이 제일 많고, 그다음은 40대 여자분들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예전에 학교를 다닐 때, 학년이 올라가면서 반이 바뀌고 친구들이 많이 - 아니 거진 다 - 바뀐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친구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예전 친구들 못지않은, 아니 더 절친한 친구가 되는 경험을 모두 갖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인생의 4학년을 졸업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멀어져 갔지만, 이제 5학년이 되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나에게 그 교실은 '브런치북'인 거 같다.
학생이 교실에서 공부를 통해 무언가를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하듯이, 나는 브런치북을 통해 내가 글 쓰는 것을 오랫동안 계속해왔고 지금도 글 쓰는 것을 좋아하며 앞으로도 계속 글 쓰는 것을 사랑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내일 아침 늦게 일어날 수 있는 주말, 새벽시간에 이렇게 늦게까지 글을 쓸 수 있는 주말이 너무 기다려지기만 하다.
나의 브런치 북 1호인 '마누라 속이기 in Sweden'에 대해 6개월여에 걸친 수정 작업의 마무리를 했던 것이 스웨덴을 떠나기 몇 달 전에 찾았던 고틀란드(Gotland) 섬에서의 어느 날 밤이었다. 스웨덴에서 가장 큰 섬인 고틀란드는 애니메이션의 명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대표작 '마녀 배달부 키키'의 배경이기도 하고, 중화권의 유명 배우 탕웨이가 한국인 감독 김태용과 비밀 결혼식을 올린 곳으로도 유명한 아름다운 섬이다.
이 섬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중세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진 것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섬의 가장 아름다운 것은 화려하고 번잡한 중세 문화 유적보다 하루를 묵고 다음날 아침 맞이하는 고요함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이 적은 스웨덴에서도 본토에서 떨어진 외딴섬이라 그 고즈넉함은 말할 수 없으려니와 그것이 극대화되는 아침이 가장 조용하고 외로울 시간이지만, 그러기에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그 모든 공간과 시간이 내 것이 되는 곳이다.
아내도 도착한 첫날을 보내고 두 번째 날 맞았던 에어비엔비 숙소의 테라스에서 함께 마셨던 커피 한잔이 스웨덴에서 보낸 3년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세상에 가장 화려한 인생을 사는 영화배우와 영화감독이 그들의 비밀 결혼식 장소로 여기를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때 느낀 것이 있었다. 이제 나도 점점 이렇게 조용하고 고즈넉한 것이 좋은 나이로 가는구나.
그때는 그 외로움이 앞으로 펼쳐질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올지 우울함으로 다가올지 몰랐는데, 그런 막연함 속에서 마무리했던 브런치북이 2022년을 행복하게 마무리해 주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고즈넉할 나의 50대에 막연히 좋은 친구가 되고 놀이터가 되어줄 것 같다.
10년 후 5학년에서 6학년으로 학년이 바뀌는 나는 브런치북에 뭐라고 쓰고 있을까. 아마 '마녀 배달부 키키'가 썼던 그 문장을 쓰고 있지 않을까. 지금처럼 마녀 배달부 키키 OST를 틀어놓고 행복하게 글을 쓸 수 만 있다면.
'가끔 우울하기도 하지만, 나는 괜찮습니다(おちこんだりもしたけれど、私はげんき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