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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Mar 04. 2023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도전기(2)

마누라 속이기 in Sweden 외전(7) - 40대 마지막 찾아온 행운

길지 않은 인생을 뒤돌아 봤을 때, 행운은 계획하거나 굳이 찾는다고 얻은 것이 아니라 항상 파랑새처럼 어쩌다 보니 옆에 있었다. 바라고 희망하면 시간은 걸릴지언정, 언젠가는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었다.  


2020.5월 충격의 브런치북 작가 신청에 떨어지고 한동안 일기도 안 썼다. 당시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라 여름휴가철이 다가와도 특별히 계획을 세울 것도 없었다. 유럽에 근무한다는 것은 휴가 기간을 통해 이웃나라도 손쉽게 갈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입국 규제도 심했지만(당시 스웨덴은 다른 나라와 다른 방역 정책으로 주변국에서 조차 입국에 제한이 있을 때였다) 본부에서도 근무하는 주재국을 이탈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와 어디 나갈 수도 없었다.


북유럽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관광지는 노르웨이나, 덴마크, 아이슬란드 등이지 스웨덴은 사실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실제로도 주변국에 비해 웅장한 자연환경이나 세련된 유럽 본토의 문화도 없고 관광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것 같지도 않은 스웨덴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아니어서 평소에도 별로 스웨덴 국내를 돌아다닐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외국으로 나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우연하게 스웨덴 내륙을 관통하는 자동차 여행을 하게 되었다.


4일 정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의외로 많은 감동을 주는 여행이었고 형언할 수 없는 추억을 안겨다 주었다. 마치 다락방에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는 책장 속에 엄청난 보물을 찾은 것처럼, 그것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여행을 한 하루하루가 나에게 각본 없는 소설을 주었다고나 할까.

스웨덴의 중부 산간 지대에서 우연히 마주친 백야


여행의 마지막 날, 어느 시골 작은 도시의 허름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대사님이 문자를 보내왔다. 뭔 일 있나? 하고 확인해 보니 '박태진 참사관, 외교부 혁신 파일럿 프로젝트 - 우수 업무 노하우 공모전 수상, 축하합니다'라는 문자였다. 지난 4~5월 전 직원 대상 혁신 파일럿 프로젝트에서 '재외공관 청사 이전 길라잡이'라는 내용으로 응모를 했었는데, 평가한 직원들로부터 가장 많은 점수를 받아 상을 받게 된 것이었다.


한참 지나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가 상을 받게 된 것은 내가 다시 브런치북 작가에 응모하는 용기를 다시 불어넣어주었다. 집에 돌아와 남은 기간 동안 조금씩 습작을 다시 했고, 8월 다시 응모를 했다. 사실 길이나 내용으로 볼 때 길이도 짧고 평범한 주제여서 큰 기대를 했다기보다는 운동으로 치면 힘을 빼고 했다고 볼 수 있고, 엄청 꾸미기보다는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글을 썼다고 생각하다 보니, 보내고 나서 아휴 내가 그렇지 뭐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2020년 8월 20일. 나는 난생처음 '작가'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내가 쓴 첫 글은 속은 썩이지만 내게 '아빠'라는 타이틀을 가져다준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인 내 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식 하나를 더 나은 기분이랄까? 내가 쓴 글이 올라오고, 더 신기한 건 다른 이들이 내 글을 보고 댓글을 달아준다는 것이었다. 알림음에 따라 하트가 붙고 댓글이 달리면서, 글을 쓰고 나면 몇 개가 달릴까 하고 밤잠을 설쳤던 거 같다.    


브런치북 작가 신청한 글이 1호가 되었고, 댓글도 좀 달렸다(2020.8.23.).


첫 해는 브런치북 내 매거진이 뭐고 브런치북이 뭔지도 모르고 글을 올렸다. 브런치북 만들기에 대한 소개 게시글이 많았지만, 아휴 저런 걸 내가 어떻게 만들어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어른들이 나이가 들면 카세트 플레이어도 제대로 만지지 못하듯 벌써 퇴화해 버린 나를 탓하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결과가 발표되고, 나도 한 번?이라는 욕심이 들었다. 그래서 그해 겨울부터 지난여름에 스웨덴 내륙을 관통했던 여행에 대한 기억과 사진들, 메모, 안내소에서 주어온 책자들을 다 동원해 하나하나 쓰기 시작했다. 문제는 한 편을 쓰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 심지어는 한 달이 걸리기도... 또 2021년은 조금씩 일들이 많아지면서 시간도 부족해 휴가 기간 중에도 날을 잡아 쓰는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또 그 사이에 갔었던 여행도 추가하다 보니 10월 말이 돼서야 허겁지겁 브런치북을 만들 수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부족하기만 했다. 또, 기존에 수상자들은 구독자들만도 몇 백 명인데, 나는 고작 몇십 명에 불과해 이래 가지고 되겠나.. 하는 생각만 앞서게 되었다. 그런 상태에서 제9회 프로젝트에 응모했고 결과는 당연히 예상한 대로 낙방이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무슨... 하는 생각에 다시 한동안 글쓰기를 손에 놓았다. 다시 사추기의 무기력함이 찾아왔고 사무실에서의 어려운 일들도 터지면서, 나는 끝도 없는 슬럼프에 빠졌다. 만으로 49세. 40대의 마지막을 보내는 남자가 생각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 무렵에는 주변에 이런 고독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가 않다 보니 사무실에서도 점심시간에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창밖에 대고 답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도대체 이 무기력함과 끝없는 걱정을 떨치려면 어떻게 하지?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벤치에 잠깐 앉았다 가려다 스마트폰을 켜고 예전에 썼던 글들을 보게 되었다. 이때는 마치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뛰어나오 듯이 사추기의 해답을 찾은 것처럼 써내려 갔었군. 나만 이런 걱정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아닐 텐데. 좀 더 다듬으면, 나 같이 살아가는 40대 남자들도 공감할 수 있을 텐데... 한편으로는 40대의 마지막 날들을 이 글들을 다시 고쳐 쓰고 다듬으면서 뭔가 탈출구를 찾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전에 써 내려갔던 문구들을 고전 보듯이 하나하나 보면서 음미하는 맛도 괜찮았다.


그렇게 허겁지겁했던 지난해와 달리, 여유 있게 다시 고쳐 쓴 브런치북을 만들 수 있었고 마감날에도 촉박하지 않게 여유 있게 응모를 했다. 크게 기대도 없었다. 그냥 밀린 시험을 다 끝낸 기분처럼, 아니 정말 뽑히지 않아도 그냥 내 40대의 마지막을 정리한 책이라 생각하니 두고두고 봐도 좋을 선물 같은 책이 되었다.


2022년 하반기는 정말 바빴다. 스웨덴에서 모든 면에서 다른 환경인 브라질로 임지도 옮겨 새로운 삶과 사무실에 적응해야 했고, 국정감사, 사건사고, 브라질 대선과 그에 따르는 특사단 등등... 일이 끊이지 않았다. 정신없다 보니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했던 기억도 잊혔다.           



그러다가... 11.28. 브런치북 앱에 알림 하나가 떴다. 어?


나는 바로 메일을 확인했다.

행운은 어쩌다 보니 옆에 있었다. 바라고 희망하면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었다.  


"야! 내가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붙었어!"라고 아내에게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참느라 한동안 애 먹었다. 진정한 '마누라 속이기'의 클라이맥스였다. 그리고 얼마 후인 12.7. 해당 출판사 관계자 분께서 메일을 주셨다. 한 번도 보거나 얘기를 나눈 적도 없는데 내가 쓴 취지를 너무 잘 알아주시는 것 같았다.


이후, 발표 날이 되고, 나는 연말 인사와 함께 사실을 알렸다.

축하도 받았지만, 여러 가지 느끼는 점이 많았고, 지금은 다시 그를 되새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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