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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Mar 12. 2023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도전기(3)

마누라 속이기 in Sweden 외전(8) -그렇지만, 나는 괜찮습니다

그렇게 12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 소식을 듣고 지인들에게 연말 인사를 보내면서 같이 내 브런치북도 첨부해서 보냈다. 의례 나오는 답처럼 축하해... 책 나오면 꼭 사볼게... 등등의 답장이 왔다. 


가장 친한 대학 동기가 동기모임 밴드에 사실을 올리겠다고 했다. 좀 쑥스럽긴 했지만 그래라고 하면서, 예전에 내가 그렸던 허접한 만화나 글에도 환호해 주던 친구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무슨 반응이 나올까 또는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이들의 연락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했다.     

예전에 나의 만화와 글에 환호해 주던 친구들(2016년 11월)

예상과 달리, 그 글에는 '좋아요' 5개만 달렸을 뿐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혼자만의 착각이고 기대였을까. 오히려 생각지 못했던 동기 한 둘에게 카톡이 왔을 뿐. 브런치북에는 아무런 글이나 구독에 대한 것은 없었다. 얼마 전에 자신이 고위공무원으로 승진을 했는데 축하 전화를 두 통 정도밖에 못 받았었다는 어느 지인의 넋두리가 생각났다. 남을 미워하는 것보다 축하해 주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도. 


한 6년 여의 세월 동안 뭐가 변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변한 게 있다면 그동안 우리들은 점차 다가오는 나이먹은 이들이라는 편견과 경쟁 속에서 그렇게 40대의 끝을 지나 50에 다다랐다는 것. 그것 뿐인데. 하지만 그 하나는 큰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힘들고 외로운 터널을 지났을 텐데 그들이라고 그러지 않았을까. 그런 그들에게 누군가를 축하해 주는 여유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내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동기들의 게시판에 승진 축하 글도 올라오지 않은지 얼마나 됐으니. 그렇게 한 꺼풀 한 꺼풀 떨어지는 것이 이제 내가 맞이해야 할 현실이었다. 나에게 50대로 진입하는 현실은 그런 것이었다.



새로운 일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 공지의 영향인지 조회 수도 조금씩 늘고, 구독자 수가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물론 남들처럼 몇 배씩 팍팍 늘은 것은 아니지만, 화분에 씨앗을 뿌렸는데 새싹이 조금씩 올라오는 느낌? 그렇게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하트가 달리고 댓글이 달리며 구독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브런치북 인사이트 리포트'를 통해 누적 조회수도 6,600명이 넘어가고 의외로 내 브런치를 보는 사람들이 50대 여자분이 제일 많고, 그다음은 40대 여자분들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 글을 수천 명이 봤다는 자체가 신기하다.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받고, 공감하며, 댓글로 소통하는 것도 참 즐거운 일이다.


예전에 학교를 다닐 때, 학년이 올라가면서 반이 바뀌고 친구들이 많이 - 아니 거진 다 - 바뀐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친구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예전 친구들 못지않은, 아니 더 절친한 친구가 되는 경험을 모두 갖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인생의 4학년을 졸업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멀어져 갔지만, 이제 5학년이 되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나에게 그 교실은 '브런치북'인 거 같다.  


학생이 교실에서 공부를 통해 무언가를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하듯이, 나는 브런치북을 통해 내가 글 쓰는 것을 오랫동안 계속해왔고 지금도 글 쓰는 것을 좋아하며 앞으로도 계속 글 쓰는 것을 사랑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내일 아침 늦게 일어날 수 있는 주말, 새벽시간에 이렇게 늦게까지 글을 쓸 수 있는 주말이 너무 기다려지기만 하다. 




나의 브런치 북 1호인 '마누라 속이기 in Sweden'에 대해 6개월여에 걸친 수정 작업의 마무리를 했던 것이 스웨덴을 떠나기 몇 달 전에 찾았던 고틀란드(Gotland) 섬에서의 어느 날 밤이었다. 스웨덴에서 가장 큰 섬인 고틀란드는 애니메이션의 명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대표작 '마녀 배달부 키키'의 배경이기도 하고, 중화권의 유명 배우 탕웨이가 한국인 감독 김태용과 비밀 결혼식을 올린 곳으로도 유명한 아름다운 섬이다. 

고틀란드의 중심도시인 Visby 전경


이 섬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중세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진 것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섬의 가장 아름다운 것은 화려하고 번잡한 중세 문화 유적보다 하루를 묵고 다음날 아침 맞이하는 고요함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이 적은 스웨덴에서도 본토에서 떨어진 외딴섬이라 그 고즈넉함은 말할 수 없으려니와 그것이 극대화되는 아침이 가장 조용하고 외로울 시간이지만, 그러기에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그 모든 공간과 시간이 내 것이 되는 곳이다. 


아내도 도착한 첫날을 보내고 두 번째 날 맞았던 에어비엔비 숙소의 테라스에서 함께 마셨던 커피 한잔이 스웨덴에서 보낸 3년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세상에 가장 화려한 인생을 사는 영화배우와 영화감독이 그들의 비밀 결혼식 장소로 여기를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때 느낀 것이 있었다. 이제 나도 점점 이렇게 조용하고 고즈넉한 것이 좋은 나이로 가는구나.  

고틀란드 북부 해안의 어부촌 전경


그때는 그 외로움이 앞으로 펼쳐질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올지 우울함으로 다가올지 몰랐는데, 그런 막연함 속에서 마무리했던 브런치북이  2022년을 행복하게 마무리해 주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고즈넉할 나의 50대에 막연히 좋은 친구가 되고 놀이터가 되어줄 것 같다. 


10년 후 5학년에서 6학년으로 학년이 바뀌는 나는 브런치북에 뭐라고 쓰고 있을까. 아마 '마녀 배달부 키키'가 썼던 그 문장을 쓰고 있지 않을까. 지금처럼 마녀 배달부 키키 OST를 틀어놓고 행복하게 글을 쓸 수 만 있다면.


'가끔 우울하기도 하지만, 나는 괜찮습니다(おちこんだりもしたけれど、私はげんきです。).'


https://youtu.be/S27lTdYA1QI

바다가 보이는 마을(A Town With An Ocean View) - 마녀 배달부 키키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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