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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Jul 08. 2023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도전기(7)

나도 '슈퍼스타 감사용'처럼, 그렇게 내 글을 보냈다.

* 브런치북 출판 관련 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해 궁금하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 지난해 12월 수상 이후 출판사와 소통하면서 실무적으로 느낀 점을 적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출판사의 첫 피드백을 받고 한동안 이런 생각도 했었다.


예전에 이 프로젝트를 통해 출간된 책들을 보면 분량이 적은 것도 있었던 것 같고 응모할 때 만해도 기준이 낭독 기준 60분 정도 분량이라 해서 그것도 딱 맞추었는데, 막상 출판모드에 돌입하며 원래의 분량에 두 배(A4 기준 100매 이상) 정도는 돼야 한다고 하니, 다시 또 창작이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불만.


그런데, 나중에 보니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출판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이 작품이 좀 가망성이 있는가를 기준으로 뽑는 것이지 완성작을 뽑는 것이 아니고, 뽑히고 나면 이것을 독자들에게 어떻게 어필할 수 있는가는 다시 출판사의 조련을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최소한의 책을 만들기 위해 분량도 늘어야 하고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는 '책'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나를 선택한 출판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다른 출판사도 마찬가지였다.


https://youtu.be/qRtu4ebr1o8  

한 중견 출판사에서 제작한 카카오 브런치 작가가 진짜 작가가 되는 과정을 설명한 동영상


우리가 최근 많이 보는 동영상 중에 각 지역의 대표 주먹들이 프로 이종격투기 선수들과 맞붙은 프로그램이 있다. 소위 날고 긴다 하는 선수들이 막상 프로들과 맞붙으면 몇 분을 못 견디고 쓰러지듯, 아무리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선발되었다고 해도 전문가들이 보았을 때는 마냥 초보 글쟁이일 뿐일 것이다. 사실 반년이 지난 지금 과거 뽑혔던 내 브런치북을 보면 그땐 참 잘 썼다고 자뻑도 해보고 보여준 사람들에게 글을 잘 쓴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지금 보면 재밌긴 한데 책으로 내긴 많이 부족한 점이 보인다.



어쨌든 첫 피드백을 받고 나는 목차부터 전면적으로 수정했다. 그래 생각해 보니 너무 40대라는 기준에 맞춰 독자를 한정지은 것도 같았고, 너무 우울하고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살아가기도 피곤한 마당에 누가 그렇게 남의 넋두리에 공감하겠는가. 그래서 점심에 잠깐 소파에 눈을 감고도 생각해 보고, 밤에 자기 전에도 생각해 보고 주말에 아침에 일어나 혼자서도 생각하면서 목차를 좀 더 재밌게 읽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수정하기 시작했고, 그런 수정한 내용에 대해 출판사에 보낸 결과 '잘된 듯합니다'라는 회신을 받았다.  


초기 그렸던 만화


출판사는 내 브런치의 제목 '마누라 속이기'가 독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고 평가했다면서, 40대 남편이자 아빠의 마누라 속이기는 과연 어디에서 나올까 라는 주제로 내부 회의에서 모은 아이디어 몇 가지를 참고하라고 보내주었다. 나도 '아 그래?' 하면서 보았다. 그중 특히 공감 갔던 것은 아래와 같다.


1. 충고보다는 공감을

40대에 어지간한 가장이라면 살면서 많은 지혜와 지식을 쌓아둔 베테랑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하면 일단 거부감부터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투에서 태도까지 난 이래, 당신은 어때? 괜찮아?라고 접근하는 것이 보다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2. 가장이나 아빠가 될 예비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도 있겠습니다.

다만, 나의 생각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대를 일으킬 수 있는 형식이면 좋겠습니다.


3. 넋두리가 아닌 팩트를 중심으로

케이스를 바탕으로 하는 스토리텔링으로 접근해야 공감대를 이끌 수 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많은 조언이 있었지만, 가장 와닫는 것은 위 세 가지였고 그들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공감'이었다. 그래, 나도 일기를 쓰고 브런치북에 글을 올리고 했던 것은 현실에서 나의 소리를 들어주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그랬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내가 이런 경험을 했는데 정말 좋더라. 그러니까 너도 이거 해봐라. 왜 안 하니?'식의 글에서 훈계가 아닌 '공감'할 수 있는 글로 바꾸는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요즘 들어 오십에 접어든 내가 어떤 길을 찾아야 할까 하고 '오십', '중년' 등을 키워드로 다양한 강연들을 봤지만 크게 정답을 찾지 못하다가, 주말에 유튜브에서 한 영화를 보고 오히려 '이거 해라 저거 해라'하는 강연보다 공감이 가는 영화가 더 힐링이 되고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글을 다 수정하고 프롤로그(서문)도 그 영화에서 가장 깊은 느낌을 주었던 부분을 넣었다.


https://youtu.be/nPoKIDuPMK0    

영화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My so has got depression, 2011)'
2차 수정한 목차
프롤로그 초안


2009년 포르투갈에서 첫 해외 공관 생활을 시작하면서 썼던 글들을 모두 뒤져가며 책의 취지에 맞는 글들을 고르고 윤색하며 추가하고 수정하다 보니, 내용은 A4기준 100쪽이 넘어가고 조금씩 모양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출판사에서 내 브런치북 계정에서 보았던 만화들이 보기가 좋았는지 계속 만화를 넣어달라고 해서 기존에 그렸던 것을 다 찢고 다시 다 그렸다.


만화는 기획과 스토리 구성, 그림에 이어지기에 글을 쓰는 것보다 시간이 훨씬 더 걸려 주로 주말에 생각을 집중할 수 있는 야간 시간에 그려나갔다. 가끔 동료들이나 교민분들이 술자리를 피한다고 섭섭해하고 나도 아쉬웠으나, 만화를 그리는 시간만큼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늘 그랬듯이 행복했다. 그린 내용을 보면서 스스로 킬킬대기도 하다 보니 아내가 밤중에 미친 거 아니냐는 둥 혹시 야동 보는 거 아니냐는 둥의 의심을 사기도 했다.


글 중간 중간에 삽입하려고 만든 만화들. 만드는 시간은 오려걸려도 그 과정은 즐거웠다.

  

A4 106쪽 분량의 글과 12쪽의 스토리 만화와 12컷의 만화, 27컷의 사진을 포함해 출판사에 보냈다. 지난해 브런치북 출판프로젝트에 수상할 때에 비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세배는 늘어난 것 같아 뿌듯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5.18. 받은 출판사의 피드백에서도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온 것 같다는 답장을 주었다. 교열 과정을 거친 수정안을 보내주며, 내가 확인하고 마지막 다듬기 작업을 마치면 출판사의 편집과 교정과정을 거치고 표지 시안 작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지난해말부터 이어진 5개월여간의, 브런치북에서 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8부 능선을 넘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출판사 측에서 교열 시 염두에 둔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1. 40이나 50 등 나이로 끌고 가는 것은 숫자에 이끌려 제한적이니, '중년'이라는 보다 스펙트럼이 넓은 범위를 포함해 더 나은 방향으로 독자에게 접근해야 한다.


2. 너무 개인적인 소재나 경험담 등 내 주변의 일로 이야기가 접근하는 것은 공감대를 떨어뜨릴 수 있다.


3. 중년의 위기는 30대 후반에서 60대 초까지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인 스토리를 공감의 영역으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구성과 단어의 선택에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


4. 읽는 재미를 위해 틈틈이 영화, 노래, 아재개그를 섞은 것이 돋보이지만 보다 많은 요소가 필요하다. 아내와 관련된 일반적인 명언, 지혜, 유머나 거짓말에 관한 영화, 속담 등을 나의 이야기와 섞어야, 경험은 개인적 이야기에서 보편적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다.


5. 작가가 근무했던 포르투갈, 중국, 스웨덴, 브라질에서 '마누라 속이기'에서 파생될 수 있는 키워드들을 찾아 함께 엮어준다면 작가가 가진 배경에 효과적으로 잘 들어맞고 보다 잘 녹일 수 있는 내용이 나올 수 있다. 이를 통해 이 책의 2편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연결고리로 확장도 가능하다.


6. 제목인 '마누라 속이기 in Sweden'에서 'in Sweden'은 빼고 다른 부제를 붙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배경이 주로 스웨덴 기행이지만 이 책은 여행에세이가 아니라 힐링에세이다. 스웨덴이라는 부제 때문에 스웨덴 관련 여행기라는 편견이 강하게 작용해선 안된다.


7. 보다 자신감이 보이는 어투가 필요하다. 자신을 낮추는 보편적인 한국인의 표현 스타일인 '~한 것 같다'와 같은 표현보다 '~하다'라고 해도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다.



글쓰기에 대한 과외를 받아도 이만큼 받을 수 있을까. 출판사의 검토 의견은 일부분은 아직은 초보인 내게 어려운 내용일 수 있었지만, 다시 읽고 또 읽고 자기 전에 읽어보고 다음 날 읽어보면 뼈를 끓일수록 뽀얀 국물이 나오듯 나의 글을 더욱 세련되고 책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출판사의 교열 내용을 보면서, 나의 글이 얼마나 산만했는지, 그리고 교열을 통해 간결하고 보다 명확하게 바뀌는 모습을 보는 것은 또 하나의 짜릿한 감동을 주었다. 신이 흙에서 인간을 만드는 과정이 이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해가면서. 그리고 재밌었다. 남들에게도 재밌겠다는 확신도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리된 나의 글은 5월 말 다시 출판사로 날아갔다. 먼 길 떠나는 자식을 보내는 마음으로.          


초보 작가의 교열 과정. 즐겁기만 했다.



원고를 보내던 날 밤, 나는 프로야구 원년 시절 '삼미슈퍼스타즈'라는 최약체 팀에서 투수를 했던 '감사용'이라는 분에 관한 글을 읽었다. 그의 특이한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경력을 소재로 한 영화도 나왔었는데, 영화의 시작에서 이와 같은 내레이션이 나온다. 


"프로야구 20년 역사상 은퇴 투수는 총 758명이다. 그중 10승 이상을 거둔 투수는 126명뿐이며 1승 이상 거둔 투수는 431명이다. 나머지 327명은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야구계를 떠났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감사용은 팀에 왼손 투수가 없다는 이유 하나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투수가 된다. 이름과는 달리 스타 선수 한 명 없는 삼미는 개막하자마자 꼴찌팀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고(삼미는 한 시즌에서 18연패의 수렁에 빠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구단에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는데 목사님과 스님을 불러 예배와 예불을 한다던가, 심지어 무당까지 불러 굿을 하거나 더그아웃 앞에 소금을 뿌리는 등 미신을 활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감사용 역시 선발 등판 한번 하지 못하고 '패전 처리 전문 투수'로 낙인찍힌다. 팀에 패색이 짙어지면 시도 때도 없이 나가는 마무리 투수. 상대팀은 감사용이 나오면 감사해하는데...


그러던 중, 사용에게도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최강 팀 OB 베어스(원년 우승팀이다), 그것도 OB의 간판스타 박철순의 20연승을 눈앞에 둔 경기. 삼미의 투수진은 누가 봐도 질 게 뻔한 경기의 등판을 서로 미루고 급기야 기회는 감사용에게 넘어온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선발 등판. 딱 한 번만 이겨보고 싶었던 감사용의 꿈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실제로 감사용은 영화의 모티브가 된 이 시합에서도 졌다고 하며, 이후 롯데와의 경기에서 그토록 염원한 1승을 달성하였다고 한다. 키 170cm. 몸무게 70kg. 작은 손. 게다가 왼손잡이. 애초부터 투수가 될 수 없었던 야구 선수 감사용 이야기. 작품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라는 앙드레 말로의 명언은 이 작품의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문장으로 글은 마무리되었다.



창원의 삼미그룹 공장의 아마추어 실업팀에서 공 좀 던진다고 칭찬받다가 왼손투수라는 이유로 구한말 강화도령이 한양으로 와 철종이 되듯이 삼미슈퍼스타즈의 홈구장이 있는 인천 연고지로 올라온 감사용처럼, 나의 글쓰기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건너 출판사와의 수차례 교열작업 속에 깨지고 부딪치며 다시 다듬어져 갔다. 투수 감사용이 1승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듯, 나도 내 책을 세상 밖에 보인다는 희망을 가지고 원고를 보냈다. 감사용의 공처럼 내 글도 훨훨 날아갔으면 좋겠다.


https://youtu.be/dJ3bSgtKgZU

사람들은 탈인간인 박찬호나 류현진보다 우리와 닮은 감사용에 더 열광한다. 나는 감사용 같은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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