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세렝게티에서 만난 덴마크 친구들
세렝게티의 밤은 별이 쏟아지다 못해 은하수가 청명하게 보인다. 전등이 없어 사방이 칠흑 같았다. 머리에 두른 헤드랜턴 하나에 의지해 식당에서 밥을 먹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했다. 아니, 화장실에 가는 길이 너무 어두워 차라리 물티슈로 얼굴을 닦는 것이 훨씬 나았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너무 어두워 빵에 개미가 잔뜩 기어 다닌 걸 먹고 나서야 알았다. 텐트 앞에 다 도착해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다.
몹시 불편했지만 불만은 없었다. 텐트에 너부러져 맥주를 마시며 하늘을 바라보면, 세상에! 눈앞에 은하수가 있었다. 머리 위에서부터 지평선까지 촘촘하게 별이 박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별을 보기 위해 고개가 꺾일 듯이 하늘 꼭대기를 올려다보며 찾아야 했는데, 세렝게티는 달랐다. 고개를 젖히지 않아도 밤이 찾아오는 것과 동시에 수많은 별빛이 이미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별의 영상을 띄워 놓은 스크린이 있는 것처럼 믿을 수 없게 선명했다.
한창 별에 심취해 있을 때 덴마크 친구들이 맥주와 과일을 가지고 곁으로 왔다. 간호대학 동기로 지금은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함께 일한다고 했다. 일 년에 두 번 휴가가 있는데, 그때마다 3주의 시간이 주어진다고 했다. 둘이 함께 여행을 한 지 10년이 다 되어 가고 유럽을 비롯해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안 가 본 데가 없다고 했다.
“자매끼리 남미 3개월, 아프리카 3개월? 그게 가능해? 회사에서 보내 줘?”
“아니, 당연히 일 그만뒀지. 우리는 3주 동안 휴가 내는 게 거의 불가능해.”
“우리는 한번 쉴 때 3주 정도 쉴 수 있어. 회사를 그만두고 장기적으로 세계 여행을 가는 사람도 많지만, 우리는 일하면서도 세계 여행이 가능해.”
“한국에서 가 볼만한 곳 추천해 줘. 중국, 일본, 한국 다 가고 싶은데 유럽에서는 정보가 거의 없어.”
“음, 제주도!”
아시아는 홍콩과 필리핀만 가 봤다는 덴마크 친구들에게 제주도를 추천했다. 제주도의 사계절을 사진으로 보여 줬다. 하얀 눈꽃이 핀 겨울의 한라산, 노랗게 펼쳐진 봄의 유채꽃밭, 초록빛이 무성한 여름의 우도, 새빨갛고 샛노란 가을 단풍까지. 그리고 20~30여 가지의 반찬과 함께 나오는 모둠횟상을 보여 줬다. 역시 모둠회에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제주도에 대한 자랑을 한창 이어 가다가 덴마크 여행지에 대해 물었다.
“음, 그린란드!”
“그. 린. 란. 드? 거기 들어갈 수 있는 데야?”
“그린란드는 덴마크 땅이야. 덴마크의 수도인 코펜하겐에서만 갈 수 있어.”
“거기 북극 아니야? 엄청 추울 거 같은데 여행할 수 있어?”
“응, 우린 그린란드 대학병원에 파견 나가서 1년 동안 근무했어. 아직 사람들이 그린란드에 대해서 잘 몰라. 근데 에어비앤비도 있고 게스트하우스도 있어. 마트도 있고 우버도 있으니까 걱정 마! 여행할 수 있는 조건은 다 갖춰져 있어.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선명하고 아름다운 오로라를 볼 수 있어.”
오로라 사진을 본 우리는 마음을 굳혔다. 아프리카 다음 여행지는 그린란드다!
우리는 처음 여행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부터 가 보자고 약속했다. 체력이 떨어지면 가기 힘든 곳, 지금이 아니라면 도전이 어려울 것 같은 곳, 웃기게 들릴지 모르지만 ‘젊었을 때 다녀오길 잘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곳이 우리 여행의 우선순위였다. 그래서 남미여행 때 에콰도르와 칠레 이스터섬에 갔고, 아프리카에서는 에티오피아와 마다가스카르에 꼭 가기로 했다. 아마 다음 여행지는 그린란드가 될 것이다. 그린란드도 지금 아니면 도전이 어려울 것 같다.
3년 전 처음으로 일을 그만두고 대학생이었던 동생과 남미 배낭여행을 떠났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설렘보다 돌아온 후의 직장 걱정이 더 컸다. 3개월 동안 여행을 하면서 말 그대로 많이 보고, 많이 먹고, 많은 이들을 만났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나 가치관의 차이에 적잖은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만 너무 아등바등 산 것은 아닌지 생각이 많아졌다. 나처럼 일을 그만두고 여행 중인 친구들도 있었다. 여행으로 인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고 말하는 그들의 대범하고 긍정적인 생각은 안절부절못하던 나를 압박감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직장은 잃었어도 넓은 시야를 얻었으니 더 좋은 일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삶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상했던 것을 현실에서 이뤄 갈 수 있다면 나에게는 더 가치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주변 지인들도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종종 얘기했다. 아무리 여행이 좋아도 생계 활동을 포기하고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 동생은 아직까지는 더 용기를 낼 마음이 다분하다. 우린 곧 그린란드에도 가야 하니까.
*자매의 아프리카 여행에세이 <아!FREE!카!>가 출간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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