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율 Feb 14. 2019

마사이족이 가짜 헤어디자이너 행세를?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서 처음 만난 마사이족





“하이, 아임 하라주쿠, 유 프롬 도쿄 곤니찌와? 프롬 서울 평양? 

하하하. 나 헤어디자이너야. 내가 레게 머리 해 줄게.”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진짜 헤어디자이너 맞아?”


“응, 나 미용사 자격증도 있어. 레게머리 1시간이면 돼. 동양인 생머리는 처음이라 긴장되네.”


“근데 너 볼에 동그라미는 뭐야? 칼은 왜 차고 있어? 설마?”


“응, 나 마사이족이야!”








 탄자니아 수도 다르에스살람에 도착한 첫날 전통시장으로 구경에 나섰다. 사람들이 너무 북적여 누가 코를 베어 가도 모를 분위기였다. 시선을 끌어당기는 잡동사니와 형형색색의 과일들이 가득했다. 달콤해 보이는 열대 과일을 종류별로 사 먹고, 편안하게 입을 만한 일명 냉장고 바지도 구입했다. 


 한창 시장을 둘러보고 있는데 누군가 일본어와 한국어가 섞인 말로 말을 걸어왔다.  건달 분위기의 남자는 자신을 헤어 디자이너라고 소개했다. 그러더니 반 강제적으로 플라스틱 의자에 동생을 앉혔다.


“앉아 봐. 여기가 미용실이야. 2만 실링만 내면 완벽한 레게 머리를 해 줄게.”

“생머리도 가능해? 못하면 네가 2만 실링 내야 돼.”



탄자니아 여행 중 유난히 형형 색깔의 값싸고 맛있는 과일과 채소를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동생은 아프리카까지 왔는데 어떤 일탈도 시도하지 않아 마침 무료함을 느끼고 있었다. 평소 머리카락을 애지중지 관리하던 동생답지 않게 레게 머리를 흔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헤어 디자이너 청년의 의상이 조금 수상했다. 빨간색 담요 같은 걸 몸에 둘렀는데, 치마인지 바지인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양 볼에는 동그라미가 새겨져 있었고 허리춤에는 칼을 차고 있기까지 했다. 가만히 서서 상인들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니, 자칭 헤어 디자이너처럼 빨간 두건을 두르고 선글라스를 낀 채 망고를 파는 사람이 있었다. 동그랗게 뚫린 귓불을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폐타이어로 만든 신발을 파는 사람들도 있었다. 탄자니아와 케냐에서만 볼 수 있다는 마사이족이었다. 드디어 원시 부족을 만난 것이었다. 우린 마치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만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마사이! 마사이! 마사이! 우와, 마사이! 마사이!”


 우리가 환호하자 청년은 의기양양하게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 사자를 죽이는 시늉을 했다. 마사이족은 사자 사냥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마사이족을 만났다는 기쁨도 잠시, 마사이족이 왜 사냥을 하지 않고 미용 일을 하고 있는지 의아했다. 마사이족 미용사는 한참이나 동생의 긴 생머리를 만지작거리더니 세 갈래로 땋기 시작했지만,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자꾸 미끄러져 꼼꼼하게 땋아지지 않았다.


“레게 머리인데 가닥이 왜 이렇게 굵어? 자꾸 풀리는 느낌인데?”

“머리가 너무 꼿꼿하고 부드러워. 다른 예약 손님이 있어서 네 머리는 못해 주겠다.”


 마사이족과의 만남은 황당무계하게 끝났다. 미용사라던 청년은 사실 과일을 파는 상인이었다. 우리에게 대충 머리를 해 주고 돈을 받을 속셈이었다. 하지만 동생의 머리카락이 신기했는지 연신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말았다.                   



길거리 모퉁이에서 마사이족 헤어디자이너(?)에게 레게머리 스타일을 제안 받은 동생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대표 원시 부족인 마사이족을 시장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봤던 원시 부족은 사냥에 나서는 용맹한 전사의 모습이었다. 특히 마사이족은 사자를 맨손으로 때려잡는다는 소문도 있어 기대가 더 컸다.  


 지푸라기로 주요 부위만 가린 채 창으로 사냥을 하는 사람들, 동물을 위협하기 위해 형형색으로 얼굴에 위장한 사람들, 날카로운 도구를 휘두르며 맨발로 숲을 헤집고 다니는 사람들, 이 모습들이 바로 보통 우리가 상상하는 원시부족의 모습이었다.      


탄자니아와 케냐를 여행하는 내내 마사이족을 만날 수 있었지만, 상상 속 모습과는 크게 달랐다. 붉고 파란 천을 몸에 두르고 있었지만 선글라스를 끼거나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의 슬리퍼를 신고 있기도 했다. 전자시계를 차고 노트북을 하고 있는 마사이족도 있었다. 탄자니아 잔지바르 해변에서 다이빙과 돌고래 투어에 참여할 여행객을 모으는 삐끼도 마사이족이었다.




멋들어진 패션의 마사이족! 해변에서 여행객을 대상으로 투어상품을 팔고 있다.







 아프리카 원시 부족이라고 해서 누구나 문명과 거리를 두고 사는 건 아니겠지만 그걸 직접 눈으로 목격하는 일은 어쩐지 생소했다. 하지만 현대적인 교육을 받고 생계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걸 삐딱하게 바라볼 수는 없었다. 나미비아에서 잠깐 마주친 힘바족도 마찬가지였다. 온몸에 진흙을 발라 ‘붉은 민족’이라 불리는 힘바족을 시내에서 봤는데, 옷을 걸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힘바족이 스타일리시한 힙합 패션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길을 건너고 있었다.


 여전히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고유한 생활양식을 고수하는 부족민도 많지만, 이들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함부로 예측할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가 화두에 오르면 할례 같은 비인간적인 문화 때문에 원시 부족은 무조건 해체되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멸종 위기의 동물을 보호하듯 끝까지 전통적인 생활과 문화를 버리지 않도록 보호해 줘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잠깐 아프리카에 머물다 가는 여행자로서 그들의 속사정까지 평가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상업 활동을 하는 마사이족과 전통을 고수하는 마사이족 모두를 응원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전통을 고수하는 마사이족들은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고 있다. 





*자매의 아프리카 여행기 <아!FREE!카!>가 출간되었습니다.

 아래 링크 통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69406581







이전 16화 은하수 반짝이는 밤, 세렝게티서 꿈꾸는 그린란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