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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율 Feb 28. 2019

터미널 최종 보스에게 사기당하다

탄자니아 아루샤 터미널에서 만난 사기꾼



“네가 뭔데 내 고객을 가로 채?”

“한국인들이 제 발로 나한테 찾아왔어. 제 발로 걸어온 물건이 왜 네 거야? 한국인 한 명당 얼마에 가져갈래?”


우리 자매는 순식간에 거래 물건으로 전락했다.     






 세렝게티 국립공원 투어가 끝난 후, 탄자니아 아루샤에서 케냐 나이로비까지 버스를 타고 국경을 이동하기로 했다. 표를 구하러 아루샤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날 수십 명의 삐끼들이 달려들었다.


“코리안? 킬리만자로? 다르에스살람? 나이로비?”

“우린 우선 킬리만자로에 갈 거야. 표 얼마야?”

“5,000실링!”

“뻥치지 마. 2,000실링인 거 다 알아.”

“그래. 2,000실링에 해 줄게, 대신 앞 좌석에 타고 배낭까지 실으면 3,000실링이야.”

“됐어. 너흰 탈락이야. 사기 치지 마. 너희 버스는 안 타.”

“알겠어, 알겠어. 2,000실링에 해 줄게. 말을 끝까지 들어야지.”


우리는 버스 터미널의 삐끼들이 표 값을 얼마나 많이 뻥튀기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았다. 이래 봬도 아프리카 여행 50일차였다. 크고 작은 사기를 몸소 경험했더니 나름 노하우가 생겼다. 뻔뻔해지다 못해 이유 없이 자신감이 넘쳤다. 문제는 나이로비로 가는 버스였다. 나이로비로 가는 국경 버스로 가장 유명한 회사는 ‘리버사이드Riverside’다. 세렝게티 투어 가이드가 버스 회사와 정류장의 위치까지 알려 줬지만, 혹시 다른 버스가 더 있나 알아보기 위해 아루샤 터미널에 온 것이었다.             

 

복잡한 분위기의 아루샤 터미널,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걸어 다니기도 어려울 만큼 복잡한 터미널에서 버스 회사 삐끼와 현지인들의 이목이 모두 우리에게 쏠렸다. 그때 대머리에 배가 나온 남자가 다가왔다. 이름은 스미스, 그가 다가오자 모든 삐끼들이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터미널의 보스였는지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스미스 뒤에 줄을 섰다.


“나이로비에 간다고? 내가 이 버스 터미널을 총괄하는 사람이야. 나이로비로 가는 버스 예약해 줄게.”

“그래? 버스 사진이랑 버스 시간표 보여 줘. 가격은 얼마야?”

“따라와. 사무실이 있어.”


 스미스가 말한 사무실은 터미널 바깥에 나무판자로 바람막이를 해 놓은 1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허름한 파라솔 하나를 놓고 오피스라고 한 것이었다. 일단 버스표 흥정을 위해 파라솔 아래에 앉았다. 스미스는 고급 버스 사진이 있는 포스터를 보여 줬다. 맨 앞 좌석을 예약해 주겠다며 여권 번호와 전화번호를 적으라고 했다. 나이로비 국경을 통과할 때 50달러의 비자비가 필요하니 미리 준비하고, 나이로비 시내에서 내리고 싶은 곳에 멈춰 달라고 하면 된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7시에 출발하니 1시간 전인 6시까지 꼭 터미널로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버스 예매표에 이름을 쓰고 영수증을 받을 때까지도 주위는 여전히 조용했다. 시끄럽게 떠들던 삐끼들도 그저 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웃는 사람도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어째 분위기가 싸했다. 우리는 그만큼 스미스가 이 버스 터미널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정확히 아침 6시에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아프리카에는 전기가 들어오는 곳이 거의 없어 대부분 일출 시간에 맞춰 일을 시작했다. 버스 정류장도 이미 만원이었다. 동물을 먼 곳으로 실어 보내려는 사람들과 간단한 아침 식사를 파는 사람들로 몹시 분주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7시 정각에 출발한다던 버스는 7시가 넘도록 코빼기도 안 보였다.









“7시 넘었는데 버스는 왜 안 와? 어떤 버스인지 보여 줘. 사기 친 거 아니지? 지금 당장 버스 안 오면 환불 처리해 줘. 우리가 낸 5만 실링 뱉어 내.”

“오오, 침착해. 버스가 조금 늦는다고 연락 왔어. 아마 8시에 출발할 거 같아.”


‘아! 사기당했구나. 나이로비로 가는 버스는 없구나!’ 우린 이때 비로소 늦은 눈치를 챘다.


 스미스는 갑자기 화제를 돌려 나에게 버스 터미널을 구경시켜 준다고 했다. 나이로비로 가면 케냐 돈이 필요하지 않겠냐며 환전소에 가자고 했다. 그는 나를 데리고 구멍가게와 약국, 환전소, 식당 등 구석구석을 돌며 인사를 시켰다. 얼떨결에 버스 터미널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며 인사치레를 했다.


“내 친군데 케냐 실링을 좋게 쳐줘. 여기서 환전해.”

“환율이 좋다고? 나 환율 어플 있어. 거짓말하지 마. 완전 사기 수준인데? 네 친구 두 배나 받아먹으려고 하는데?”


 스미스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었다. 환전 사기에 실패한 후에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실생활을 보여 주겠다며 슬럼가로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아침부터 골목 안에 위치한 술집에서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다. 술집 주인은 짙은 화장을 한 아프리카 여성이었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옅은 전구 빛에 의지해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취해 있었고, 밤새 난동이라도 있었는지 바닥 여기저기에는 유리 조각이 흩뿌려져 있었다.


“놀랍지? 이런 데 와 봤어? 경찰 단속을 피해서 술을 파는 곳이야. 구경시켜 줬으니까 위스키 한 병만 사 줘.”

“나 돈 없는데? 네가 내 돈 다 가져갔잖아. 나이로비로 가는 버스 없으면 당장 환불해.”


 그동안에도 나이로비행 버스는 도착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린 딱히 화가 나지 않았다. 스미스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기만 했다. 이제 제법 사기당하는 것을 즐기기까지 했다.










 그때 어디선가 봉고차가 도착하더니 누군가 우리 배낭을 재빠르게 실어 날랐다. 봉고차에서 내린 중년의 아프리카인은 실크 목도리를 두르고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그는 스미스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소리를 내질렀다. 이에 질세라 스미스도 삿대질을 시작했고 급기야 폭력을 쓰기 시작했다. 둘은 어깨와 팔 등을 서로 밀치며 스와힐리어로 격하게 싸웠다.


 곧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들을 말리느라 얻어터진 사람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스미스는 옷까지 벗어 던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우리 버스표를 찢어 버리는 게 아닌가. 우리를 놓고 싸우는 게 분명했다.


“왜 싸우는 거예요?”

“저 중절모 쓴 사람이 리버사이드 버스 회사의 높은 사람이에요. 외국인을 나이로비까지 데려다주는 버스 회사요. 그런데 항상 중간에서 스미스가 외국인을 가로채서 수수료를 받고 리버사이드 버스 회사로 넘기거든요. 상습범이에요.”



 알고 보니 스미스는 버스 터미널의 양아치 사기꾼으로 외국인만 보면 나이로비에 데려다준다고 뻥을 쳤다. 동양인 여자 두 명이 나타나자 냅다 다가와 기분 좋게 사기를 친 것이었다. 나이로비로 가는 버스값 2만 5,000실링 중 일부를 떼먹고, 나머지 돈으로 리버사이드 버스 회사에 우리를 넘기려고 했다. 그러니 리버사이드 버스 회사 측에서는 사업 손실이 클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 여행 50일차에 들어선 우리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결국 스미스가 우릴 팔아넘기듯 버스 회사 차에 태웠고, 우리는 잘 가겠다고 웃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짐바브웨 국경에서 제복을 차려입은 보안관에게 사기당할 뻔했을 때는 어찌나 가슴이 떨리고 무서웠는지 모른다. 모든 상황이 낯설었고 돈을 뺏길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어느덧 우리는 노련한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스미스, 덕분에 터미널 구경 잘했어. 아, 그리고 버스 회사 아저씨! 흥분 가라앉히고 나이로비로 출발합시다. 벌써 11시예요.”


 이렇게 교통정리를 끝냈다. 나와 동생은 점점 더 담담해지고 있었다. 사기당하는 일도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슈퍼에서 바가지를 씌우면 제값으로 깎았고, 누군가 길을 알려 주겠다며 이상한 길로 유도하면 구글맵을 보여 주면서 능청스럽게 길치냐고 물었다. 사기도 우리 여행의 일부가 됐다.     








*자매의 아프리카 여행에세이 <아!FREE!카!>가 출간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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