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율 Mar 07. 2019

나이로비 시내에서 시위대와 함께 최루탄 맞은 날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변화중 





“최루탄이에요! 당황하지 말고 건물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요!

“콜록 콜록 눈이 안 떠져요. 동생은요? 동생은요?”

“죽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말고 지시대로 움직이기나 해요!”       






    

       

 탄자니아 아루샤에서 국경을 넘어 케냐 나이로비에 도착한 날, 갑자기 모든 게 낯설었다. 아무런 정보 없이 나이로비 시내에 떨궈진 우리가 처음 마주친 건 정장 입은 아프리카인들이었다. 다리가 길고 어깨가 넓은 체형의 아프리카인들은 정장이 잘 어울렸는데, 대부분 서류 봉투와 아이패드를 들고 바쁘게 움직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었지만, 여행 중에 만난 아프리카인은 대부분 목이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폐타이어를 잘라 만든 고무 신발을 신고 있었기에 새삼스럽게 놀라고 말았다.     


“사람들 좀 봐. 깔끔하게 넥타이를 하고 정장을 입었어.”

“여기 아프리카 맞아? 너무 생소해. 아이패드 들고 다니는 것 좀 봐.” 




대형쇼핑몰이 있지만 빈부격차 때문인지 한적하다. 대부분 외국인이다.


케냐 나이로비의 3대 커피숍에서 매일 커피를 마시고 커피 원두 구경을 했다. 







 나이로비에서 처음 방문한 곳은 휴대폰 대리점이었다. 무심코 정문을 지나쳤는데 제복을 입은 보안요원 두 명에게 거칠게 끌려 나왔다. 온몸과 배낭을 샅샅이 검사했다. 치안이 안 좋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건물이나 상점에 들어갈 때마다 매번 이렇게까지 꼼꼼한 검사를 하는지는 몰랐다.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유심을 산 후 대형 마트로 향했다. 마트 입구에서도 몸수색을 몇 번이나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마트가 텅텅 비어 있었다.


“잘 찾아 봐. 통조림도 없어? 엥? 샴푸도 없잖아. 신선 식품은 아예 없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전쟁이 나는 바람에 마트에 있는 모든 물건을 사재기한 도시가 배경인 영화 말이다. 불안했다. 나이로비에 도착했을 때부터 싸했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수렁에 빠진 것 같은 기분에 심장이 곤두박질쳤다. 폭풍 전야 같았다.


“이 도시 왜 이래? 무슨 전쟁 났어? 마트가 텅텅 비어 있으면 먹을거리는 어디서 사?”

“밖에 경찰들 행진하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하지 않아?”



케냐 나이로비에 머물던 날 연합뉴스 사진 자료 






 그때였다. 우린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 상가건물 안쪽으로 밀쳐졌다. 보안요원들이 건물 셔터를 내렸다. 어두운 건물 안에 갇히자 순식간에 공포가 밀려왔다. 처음엔 누군가 우릴 가두려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에는 대여섯 명의 보안요원과 나이로비의 시민들도 함께 있었다.     


 문틈 사이로 하얀 가스가 들어왔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유리창 없는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다봤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마스크를 한 사람들이 엄청난 속도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뒤를 탱크 같은 차가 따라 붙어 하얀 가스를 내뿜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광경은 도대체 뭐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숨이 막히고 눈이 너무 따가웠다. 하얀 가스가 최루탄Tear gas인지도 모르고 마신 것이었다. 내 평생 최루탄이란 걸 본 적도, 마신 적도 없었기 때문에 짐작조차 못했다.


“콜록 콜록, 눈이 안 떠져,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동생, 어디에 있어? 동생, 동생?”


 나는 눈물이 줄줄 흘러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기침을 하면서 손을 더듬어 동생을 찾았다.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보이지 않아서 허공에서 손을 휘젓다가 겨우 만났다.


 보안요원들은 우리 자매를 건물 안쪽으로 데려가 안정시켰지만 이미 요동치는 가슴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시위대와 경찰이 이 건물을 뚫고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우린 나이로비에서 죽게 되는 걸까?’ 별별 생각이 다 들어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보안요원은 건물 밖에 나가는 거야말로 죽을 수도 있다고 소리쳤다. 

우리는 제발 집에 가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보안요원은 우리에게 우버 어플이 있냐고 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택시 기사도 믿을 수 없으니 우버를 부르라고 했다. 우버 기사의 얼굴과 번호판, 이름, 전화번호까지 완벽하게 확인해 준 보안요원들은 우리에게 당분간 시내로 나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우리를 태운 우버 기사는 신호를 전부 무시하고, 과속 운전을 해 시내를 빠져나왔다.      


“정부 탓이야. 정부가 도대체 왜 최루탄을 쏘는지 모르겠어. 오딩가가 대통령이 돼야 해! 조금 있으면 오딩가가 나이로비 시내에 도착해!”


 오딩가인지 오뎅인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우린 전속력으로 숙소에 뛰어 들어갔을 뿐이었다. 에어비앤비 주인 마일루는 우리를 보자마자 지금 케냐 정치 상황이 좋지 않으니 시내에 절대 나가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너무 지쳐 무슨 상황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침대 위에 쓰러졌다.


 한숨 돌리고 휴대폰으로 CNN과 로이터 통신에 접속했다. 메인 뉴스를 장식한 헤드라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뒤로 나자빠졌다.     



케냐 나이로비, 시위대 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은 시민 3명 사망   


 우리가 이 위험천만한 현장에 있었다고? 미치고 팔짝 뛸 것처럼 심장이 쿵쾅댔다. 총격이 오가는 시위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하필 우리가 나이로비에 도착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도착과 동시에 나이로비를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빈부 격차가 심하고 교육받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아프리카에는 정치 운동이 없을 거란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우후루 케냐타Uhuru Kenyatta와 이에 반대하는 라일라 오딩가Raila Odinga라는 인물에 대해서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우리의 케냐 여행 첫날은 뜻하지 않게 케냐의 정치 상황에 대해 공부하는 날이 돼 버렸다.



케냐는 변화하고 있었다. 하필 우리는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자매의 아프리카 여행에세이 <아!FREE!카!>가 출간 됐습니다.

하단의 YES24 링크타고 들어가면 자세한 내용 보실 수 있어요!^^


http://www.yes24.com/Product/Goods/69406581?Acode=101



이전 19화 터미널 최종 보스에게 사기당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