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숙소에서 밥말리 노래를!
밥 말리와 그의 노래 <No wowan, no cry>는 알겠는데, 라스타는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아프리카에서는 현지인들이 어딜 가나 라스타를 외쳤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게스트하우스에 많이 머물렀는데, 그때마다 외국인과 술 한잔할 때면 너도 나도 밥 말리 노래를 함께 불렀다. 밥 말리의 노래 중 각자 가장 좋아하는 곡을 유튜브로 틀어 놓고 춤을 추기도 했다. 밥 말리 광팬, 아니 밥 말리 찬양 수준의 흥겨운 술자리는 이 나라, 저 나라 따질 것 없이 똑같았다.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아공, 나미비아, 탄자니아, 케냐까지 그 어디보다 밥 말리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넘쳤다. 기념품으로 차고 다니던 내 팔찌를 볼 때마다 사람들은 ‘라스타Rasta’를 외쳤다. 팔찌는 노란색과 초록색, 빨강색이 어우러진 구슬 팔찌였다.
“오, 라스타! 나도 라스타야! 내 모자를 봐. 노랑, 초록, 빨강.”
하지만 라스타란 단어는 아프리카에 와서 처음 들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저 밥 말리 노래를 함께 불렀을 뿐, 라스타라는 단어를 꺼낸 사람은 없었다.
“내가 라스타라고? 라스타가 정확히 뭐야?”
“라스타 몰라? 너 팔찌랑 가방 다 라스타야. 노랑, 초록, 빨강 세 가지 색이 라스타야. 너 완전히 라스타라고! 레게도 좋아하지?”
“라스타 스펠링이 어떻게 돼?”
“R. A. S. T. A. 밥 말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깃발Flag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아프리카에서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라스타 색상을 자주 볼 수 있다. 무더운 날씨에도 꼭 라스타 모자만 쓴다는 버스 기사 아저씨, 대문 색을 라스타 색상으로 바꿔 버린 숙소 주인, 밥 말리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만 입고 다니던 투어 가이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세 가지 색상으로 도배한 라스타 패셔니스타도 있었다. 밥 말리의 상징이라는 건 알았지만 단순히 노랑과 초록, 빨강의 조합이 예뻐서 차고 다녔던 팔찌 때문에 아프리카인들은 나를 ‘라스타’라며 격하게 반겼다.
아디스아바바 게스트하우스에서 저녁을 먹고 맥주를 한잔하고 있을 때였다. 에티오피아 현지인과 칠레 친구가 다가오더니 또 나에게 라스타냐고 물었다. 이제 라스타 뜻을 알았으니 그렇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라스타 스펠링을 듣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많이 찾아본 뒤였다. 라스타의 의미와 색깔이 에티오피아에서 유래했다는 것까지 알고, 살짝 아는 척도 해 봤다.
"응, 나 라스터야. 이 라스터가 에티오피아 국기 색깔에서 온 거라며? 라스타파리아니즘은 에티오피아 황제한테서 유래된 거고?”
“동양인이 라스타에 대해서 알다니! 놀라운데! 오늘 맥주 내가 쏜다! 밥 말리 레드 와인 노래 들으면서 마시자!”
“정말? 난 그럼 에티오피아 맥주 하베샤Habesha로 주고, 동생은 웰리아Walia로 할게.”
“그 맥주는 또 어떻게 알아? 에티오피아 완전 좋아하는구나.”
아프리카 여행 초반에는 라스타가 무슨 뜻인지 제대로 몰라, 라스타냐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답했다. 삼색의 팔찌를 하고 있으면서도 라스타가 아니라고 하니 아프리카인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라스타의 뜻을 알고 나서부터 자신 있게 말하고 다니자 현지인들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여행을 하면서 아프리카의 문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대화를 할 때면 그들의 태도는 확실히 달라졌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우리나라 드라마 <주몽>을 아는 청년을 만났을 때 얼마나 반가웠던지. 여행하는 나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현지인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건 분명하다. 케냐에서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한국도 미스 박이 퇴진하고 미스터 문으로 바뀌지 않았냐는 역질문에 놀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는것만으로 고맙기도 했다.
라스타로 하나가 된 그날, 우리는 밥 말리의 <I shot the sheriff>를 반복해 들으며 늦은 밤까지 얘기를 나눴다. 밥 말리의 음악이 어떤 장르였는지, 왜 레게 머리가 유행했는지, 밥 말리의 종교라는 라스타파리아니즘은 무엇인지, 밥 말리로 시작된 이야기는 밤이 늦도록 끝나지 않았다.
밥 말리Bob Marley
자메이카 출신의 밥 말리는 1945년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0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학교를 중퇴하고 용접공으로 일하며 절망과 억압을 노래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자메이카는 노예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40만 명의 아프리카인(주로 에티오피아인) 노예가 매매된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밥 말리는 아프리카인들의 삶을 대변하고 혁명 정신을 노래했다.
그의 음악으로 잘 알려진 레게Reggae 음악의 가사는 대부분 가난한 자메이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종교에 대한 믿음을 다루고 있다. 그 믿음이 바로 라스타파리아니즘으로 이어진다. 레게는 자메이카 언어로 ‘최신 유행’이란 뜻이다. 아프리카와 자메이카 토속 음악, 흑인의 소울, 백인의 록 음악 등 대중음악이 뒤섞여 만들어진 독특한 장르다. 노예로 학대받았던 아프리카인들의 정서가 담겨 있다. 흥겨운 노래처럼 들리지만 우울하면서도 분노가 피어오른다.
라스타파리아니즘Rastafarianism
라스타파리아니즘은 1930년대에 자메이카에서 시작된 신흥 종교다. 에티오피아의 황제였던 하일레 셀라시에 1세의 본명 라스 타라피 마콘넨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성경을 아프리카인의 시각으로 해석해 예수가 아프리카인이라고 주장했다. 신체의 어떤 부위도 자르면 안 된다는 교리로 소위 레게 머리로 불리는 드레들록dreadlock 문화를 낳았다. 에티오피아 국기의 색이 라스타파리아니즘의 색깔로 이어졌다. 빨강은 충성, 노랑은 종교의 자유, 초록은 자원을 의미한다. 1968년에 밥 말리가 라스타파리아니즘으로 개종하며 많은 이들이 그를 따랐다.
*자매의 아프리카 여행에세이 <아!FREE!카!>가 출간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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