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퇴근한 남편의 손에 하루는 아삭이 고추, 하루는 가시오이, 하루는 상추, 그리고 하루는 그 문제의 감자 한 상자가 들려져 왔다. 갑자기 어디서 이런 걸 들고 오냐고 물었더니 회사에 직원 한 명이 시골에 땅을 사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농작물 자라는 속도가 먹어서 소비하는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이었고 그런 이야기 끝에 직원들의 손에 나눔이 되어 우리 집까지 오게 된 것이다.
다른 야채들은 양이 적어 적당히 맛나게 먹었지만 감자 한 상자는 그저 작은 즐거움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평일에는 남편과 나 둘 뿐이고 주말 또한 딸과 아들이 매번 집에 오는 것도 아닌데 저 많은 감자는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때부터 나는 감자를 활용한 감자버터구이, 감자 미역국, 감자 계란국, 감자볶음, 감자조림, 으깬 감자샐러드, 감자채 전, 카레, 짜장등 그동안 감자로 했던 요리법이란 요리법을 총 동원하여 식탁을 채우기 시작했고 집을 넘어서 회사에도 감자를 쪄서 가져가야만 했다. 커피에 감자, 궁금하면 한번 도전을 해보시기를..
하지만 좋아하던 음식도 하루 이틀이지 저 많은 감자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슬그머니 감자를 넣은 라면에 도전을 해봤다.
그 라면을 본 아이들의 짧은 탄식
'아~~ 엄마의 요리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더 많은 실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구나
예전에 역전 야매요리라는 웹툰도 있었지만, 그전부터 나는 내 맘대로 요리실험을 하는데 선수였다. 오죽했으면 식구들이 실험은 실험실에서만 하는 거지 주방에서 실험이 아니라 요리를 하는 곳이라는 항의를 받았을까.
생각 끝에 나는 유튜브로 감자, 감자요리라는 키워드로 검색 삼매경에 들어갔다. 와 이렇게 다양한 조리법이 있다니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중 내가 하던 요리방식이 아닌 색다른 게 없을까 한참을 찾아보다가 이연복 님의 감자채무침에 도전을 해봤다.
음... 나는 맛있는데 식구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역시 이연복 님의 손맛과 같을 수는 없겠지.
다시 검색시작, 비싼 재료가 들어가야 하는 것은 패스, 복잡한 과정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요리 패스, 이것도 패스, 저것도 패스, 패스, 패스, 결국 내가 하던 방식으로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그래도 감자와 전쟁을 하던 시간은 흐르는 법, 드디어 한 달이 조금 지나서 그득 채워졌던 감자 상자의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만세 만세 만만세
드디어 감자 한 상자를 다 먹었다.
드디어 가족들에게 감자 먹을래? 하지 않아도 된다.
드디어 또 감자야?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
드디어 요리실험은 그만이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
드디어 감자 요리에서 해방되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아 정말 한 달 동안 감자와 나눴던 혼잣말을 모았다면 그 역시 한 상자는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 감자를 요리하면서 남편에게 왜 이렇게 많이 가져왔냐고 뒤늦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남편은 태연하게 너 좋아하잖아, 시골 살아서 거기서 나는 작물들은 다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장인어른이 챙겨주면 다 가져왔잖아.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주관적인 논리란 말인가.
아마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아직도 그랬을 거다. 친정에 가면 양이 많아도 싸주는 대로 가져왔던 것은 사실이었다. 무엇보다도 농사를 짓는 게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것인지 알기에, 아침부터 밤까지 아버지가 흘린 땀을 알기에, 자식들에게 주고 싶은 엄마 마음을 알기에 주면 주는 대로 받아왔다. 그리고 그때는 나눠줄 이웃이 있었으니까. 지금은 그 이웃들 또한 텃밭을 분양받아 거꾸로 나한테 먹을 거냐고 묻고 있는 중이다.
이젠 그럴 일은 없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농사 규모가 줄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말대로 시골에서 자란 소녀는 지금도 엄마가 싸주는 대로 들고 오는 중이다. 친정 엄마 역시 너 좋아하는 걸로 많이 담았다.라고 하시기 때문이다. 마음 아파할 엄마에게 싫다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친정 엄마는 아직도 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사 먹으면 되고 친정엄마가 무얼 좋아하는지 딸인 내가 알면 그만이다.
그리고 남편에게 말하고 싶다. 농사에 들이는 품이 귀한 걸 알기에 정말 열심히 감자를 먹었다고 말이다. 이젠 감자 그만 먹고 싶고 다른 농작물도 사절이라고 말이다. 안먹고 버리면 미안한 그런 죄책감에 시달리기 싫고, 한마디 더, 나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건 맞는데 모든 야채를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감자가 아니라 옥수수라고 말이다. 나도 취향이라는게 있으니 존중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