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태이 Jun 23. 2022

<Ep.4>가장 보통의 후회

나를 읽어줘서 고마워 

4. 당신의 꿈을 이해해주었던 사람을 기억합니까? 





글을 내야 할 일이 생겨서 예전에 써둔 글을 뒤적거렸다.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고민이 될 때는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다. 


자신이 쓴 글을 읽으며 다른 생각과 결합이 되어 새로운 주제로 탄생하는 경우는 아주 최고다. 하지만 어쩌다 보면 샛길로 빠지는 것 또한 부지기수다. 


이 글을 왜 썼더라? 긁적긁적. 그래, 이런 일이 있었지. 근데 맙소사, 이 부분은 왜 이렇게 부실해? 글 자체를 품평하면서 말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다시 읽어보니 옛날에 쓴 이 글이 왜 이렇게 못 썼나 싶어 자책을 시작했다. 심지어 그 글은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글이었는데.      


긍정적인 사람이 쓴 글, 특히 그중에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 글들은 늘 핑계거리가 있다. 그 중 제일 자주 쓰는 방법은 ‘이 정도면 되었다’는 자기만족이라는 카드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만족할 사람은 별로 없다. 퇴고를 하지 않았단 점을 고려하더라도 뒤늦게 다시 본 글이 별로인 건 기분이 썩 좋을 일은 아니다.   

   

글을 중얼중얼 소리 내 읽어보면서 문장에서 군더더기를 덜어냈다. 마지막 고민되는 결말까지 새로 쓰고 나니 훨씬 나은 것 같았다. 한시름 덜었다는 기분으로 책상에서 일어나 퇴근을 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 내 키를 훨씬 웃도는 나무들에 둘러싸여 잠시 공원을 걸었다. 한참을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슬렁슬렁 불며 나뭇잎들을 흔드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람에 슬쩍슬쩍 춤을 추는 잎사귀들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오는 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그 사람과 통화를 할 때면 공원을 걸으며 이 장면을 한참이나 바라보곤 했다. 그때도 5월과 6월 사이였을 것이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넘실대는 초록 배경들 덕분에 더욱 싱그럽게 들렸던 것 같다. 그이가 내 글들을 좋아했었기에 더더욱.      


그가 나를 좋아한 건지 또는 내가 쓴 글을 좋아했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두 가지가 어느 정도 범벅되어 있지 않을까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나마도 내 글에 그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어떤 ‘무엇’이 들어있는 것 같다는 정도였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 못 쓴 글을 왜 좋아했을까. 엉망이고 앞뒤도 맞지 않는데.      


한숨이 나왔다. 그간 나는 얼마나 바보 같은 모습을 그에게 보여 온 걸까.           


잠깐만 생각해 봐도 글을 잘 썼다고 감탄하는 일과 글을 좋아하는 일은 조금 달랐다. 말과는 다르게 대체로 글을 쓸 때는 다듬을 시간이 있으므로 머릿속의 생각들도 단정하게 정돈해서 표현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글로 표현된 생각들은 훨씬 매력적이고, 따라서 글을 쓰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기란 어렵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행위 자체가 멋지니까 말이다.      



그러나 글을 통해서 쓴 사람이 훨씬 잘 보인다 하더라도 그게 반드시 솔직한 모습은 아닐 수도 있다. 본인이 원하는 이상형으로 글은 아주 미세하게 둔갑할 수도 있다. 만약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까지 읽는 사람에게 파악된다면 아마도 쓴 사람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게 될 것이다.      


그이와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나는 즐거웠다. 일단 그토록 성심성의껏 글을 읽어주는 사람을 그간에는 만나지 못했었다. 또한 글쓰기에 대해 잘 알고 조언 받을 수 있는 사람도 딱히 없었다.      


엄연히 말해서 그때의 나는 감정적으로나 글로나 들쭉날쭉했다. 가끔은 글을 쓸 실력이 너무 없다는 생각에 슬펐고, 가끔은 또 잘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꿈을 가진 사람들이 자주 그러하듯이 자신을 과신하거나 맹렬하게 까부수거나 했다. 그이는 그런 나를 잘 다독일 줄 알았다.      


동시에 글쓰기가 없다면 우리는 연결될 지점도 없었다. 글쓰기라는 건 그가 우리 사이에 진심으로 원했던 키워드였을까. 알 수 없다. 지금 그는 곁에 없으므로.      


그때도 그랬다. 묻고 싶은 말들은 많았지만 다 묻지는 못했다. 그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고 했지만 다른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그에게 ‘쓰는 사람’이었다. 내 마음과 생각을 썼다. 그는 내게 ‘읽는 사람’이었다. 내 생각을 읽고 반응을 하는 건 그쪽이었다. 


말하자면 그와 나의 관계는 계속 비슷한 방식으로 맺어져왔다. 나는 누군가에게 계속 읽혀지길 바랐으므로 그를 경청할 준비는 되지 않았었는지도 모르겠다.     

 

옛날 일들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뒤늦게야 몰랐던 잘못들이 눈에 뜨일 때. 바로잡기엔 너무나 시간이 흘러가버렸다는 걸 느낄 때. 지금에 와서 무얼 다시 해보겠다는 건 아니지만. 


결과야 같더라도 조금 더 단정한 방법으로 귀를 기울이며 그 사람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미완성의 인간들이라 어떤 선택 앞에서도 후회가 남는다지만 그래도. 그래도.      


지금에서라도 내가 부족했던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

 글로 읽을 땐 생각이 많은 것 같다가도, 

 얘기 나눌 땐 생각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던 

 그 말에 우리는 함께 웃었는데요.    


 그 두 가지 모습이 모두 저였듯이

  지금도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당신도 그러실 걸로 압니다. 

  변했다, 변했다 하면서 실은 

  하나 변한 거 없이 그대로일 거라고요.      


  못난 글을 읽어주어서 고마웠습니다. 

  세상 무엇들은 계속해서 변하지만

  고맙다는 마음만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수없이 자책한 날들은 쓸쓸하기도 했지만 

  간직한 고마움 덕분에 다시 써볼 용기를 냅니다. 


  매일매일 부족하더라도 

  다시 한 번 해보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습니다.


  그건 살아갈 용기와도 비슷한 말이기도 합니다. 

   -                


글을 읽어주어서 고맙다는 말이 실은 ‘나’라는 사람을 읽기 위해 노력해준 마음이 고맙다는 뜻이라는 걸 그도 알 것이다. 낯간지러운 말을 대면해서 할 일은 없겠지만 마음으로만은 전해보고 싶다.      


시간을 들여 고마움을 품으며 알게 되는 깨달음들은 그때보다 조금은 성장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눈치 채지 못했던 미숙함을 알아채가며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을까. 잠깐이지만 위로해본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건 아직 있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데에는 대체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걸까. 사람이 너무 바뀌면 지난날의 자신을 한참이나 못 알아볼까봐 일부러 이러는 걸까.      




* 글쓰기와 사랑을 주제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쓰기란 자신을 다듬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글쓰기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살아가는 날들에 나에 대한 사랑과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씁니다. 
인스타그램에 생활 속에서 느낀 점을 책 속 한 문장과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박태이-







이전 03화 <Ep.3> 원더랜드로 가는 야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