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의 출간을 계약하는 기분은 어떨까
5. 지옥행을 탈 자신이 있습니까? (마지막 역은 행복일지도 모릅니다.)
광화문 교보문고. 토요일의 교보문고는 오후가 되자 점점 더 북적이기 시작했다.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했다.
계획으로는 문구류나 책 구경을 하고 몇 가지 아이템을 살 예정이었으나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무수한 책들과 사람들 사이에 갈 곳을 모르고 서 있자니 글태이 역시 붙박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방송으로는 연이어 “잠시 후 3시부터 ‘최소한의 이웃’의 저자 ‘허 OO’ 씨의 사인회가 진행됩니다. (블라블라)”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멘트가 자주 흘러나오는 만큼이나 글태이의 이마에서도 땀방울 비슷한 것이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출판사 대표님은.....’
출판사 대표님은, 이라는 주어에서부터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조차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출판사 대표님은 무슨 옷을 입고 오실까?
출판사 대표님은 어떤 분이실까?
출판사 대표님은 무서울까?
출판사 대표님은 잘생기셨을까?......
아무래도 이런 질문을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궁금한 건 나로부터 와야 했다.
질문의 주체를 ‘나’로 바꾸었다.
나는……
나는……. 오늘 출간 계약서를 쓴다?!
명백한 팩트만이 앞에 놓여 있다.
출간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까지는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감히 질문을 할 의지는 생기지 않는다.
질문이 의심이 되어버릴까 봐서다.
배에서는 불현듯 눈치 없이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잠이 덜 깬 글태이는 대표님을 만나 헛소리를 할까 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광화문 교보문고 안에 새로 생긴 스타벅스는 소설 /에세이 코너 바로 옆에 있었다.
저벅저벅 스타벅스로 들어가 주문을 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시원하게 한 모금 들이키고, 조금 더 들이키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대표님 성함이 뜬다.
글태이는 아무렇지 않은 척 전화를 큰 목소리로 받았다.
“네, 대표님. 저는 여기 교보문고 안 스타벅스에 와 있습니다. 여기서 봬도 괜찮을까요?”
잠시 후 다시 전화벨이 울렸고, 어디시냐는 물음에 입구를 보니 전화기를 든 한 신사분이 보였다.
“도착했는데요. 어디에 계실까요? “
두리번거리시는 그분을 향해 나는 전화기를 든 채 뒤에서 천천히 걸어갔다.
“반대쪽을 바라보시겠어요?”
우리는 전화기를 든 채 서로 마주 보고 환히 웃었다.
미팅에 나갔을 때 첫인상을 확인하고 최악은 아니라고 안심할 때의 표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리에 앉자 서로 잠시 말없이 엄숙해졌다.
필요한 서류를 내밀어 교환하면서, (갑) 자리에 내 이름을 쓰고 사인을 했다. 물론 갑 같지 않은 갑이었다.
서류를 각자 가방에 다시 넣은 후 비로소 대표님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작가님”
“네?”
“이제부터 지옥에 들어왔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하하하, 까르르.”
대표님은 지옥에 입성했으나 정신을 못 차린 글태이에게 각종 조언을 시작하셨다.
출판계의 현실과, 홍보와, 출간 일정과 퇴고할 부분.
메모장과 초고가 직접 쓴 글씨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글태이는 점점 어질어질해졌으나 자신 없는 모습은 쥐약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 넘치게 외쳤다.
“네! 믿어주세요!”
“그럼 최종 원고는....”
“네! 그때까지 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대표님과 함께 에세이 코너를 함께 돌아보았다.
신간 코너에 힘들게 도착한 에세이들은 잠시 쉴 겨를도 없이 다음 행방을 결정해야 한다고 들었다.
매대에 머무를지 아니면 매대를 떠날지 말이다.
동시에 저자가 서점에 왔을 때 저자의 책을 사가는 독자를 본다면 그 책이 대박이 난다는 소문이 있다고 했다.
글태이는 주변을 조심스레 살핀다.
누가 봐도 자신이 관계자로 보일 것 같아서다.
내 에세이는 정말 11월에 출간이 되는 거구나.
이 매대에 놓이는 거구나.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을
이제부터는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 돌아오는 길에 글태이는 했던 말들에 대해 입술을 깨물며 바로 후회를 시작하는데......
대체 뭘 걱정 말고 믿어달라는 건지 말이다.
믿음은 대표님에게서 내게로 오는 게 아니었다.
믿을 건 이 순간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걸 글태이는 안다. 또한 걱정하지 말아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것도 글태이는 안다.
그저 흰 여백과 그 위에 덮인 글자들 사이에서 지우고 새로 쓰면서 한 달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지독하게 보낼 마음의 준비를 시작한다. 나머지는 그 이후에 걱정할지 말지 결정하기로 한다.
그리고 마지막 여지를 남긴다.
‘그래도 sns는 해야지?!! 히힛!’
글태이의 마음이 무겁고도 가볍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 자의 부담이자 여유이다.
-끝-
<사진은 영화 '작은 아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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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말의 매력을 생각합니다.
글태이는 당연, “글쓰는 태이”이구요.
@tae.i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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