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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이 Oct 23. 2022

<Ep. 6> 누가 누구를 걱정해

수술한 다음날 아침 

6. 언제 어디서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현태이는 병원에 왔다. 간단한 수술을 받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하나도 긴장이 되지 않았는데 수술 당일이 다가올수록 현태이는 초조하게 검색을 한다. 검색어는 "하지정맥 수술 후기". 얼마나 아픈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술을 받아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에 대해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이런 메시지를 발견했다. "걱정 마세요. 쌍꺼풀 수술만큼만 아파요." 


하지만 쌍꺼풀 수술을 받아본 적이 없는 현태이는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상상만 할 수 있다. 현태이는 수술대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 수술 전 검사에서도 혈압, 당뇨, 심박수 등의 기초 검사에서도 아무 이상 소견이 없었다. 박태이는 물론 그것이 행운이라는 걸 안다.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아프거나 약한 부분을 지닌 채 살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핸디캡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많은 생각이 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이어지는 좌절과 체념, 끝없는 비교들. 건강은 아름답게 물려받았지만,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들은 현태이에게도 존재한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현태이는 환자복을 갈아입는다. 환자복은 무려 빨간 바지다. 양 옆에 단추가 네 개 달려 있다. 증상 수준에 따라 풀어야 하는 단추 개수는 다를 것이다. 만약 허벅지까지 증상이 있다면 바지는 형식적으로 입은 셈이다.  


의사 선생님은 다리를 꾹꾹 누른다. 초음파로 혈액이 순환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자리들을 매직으로 표시한다. 긴 선이거나 점이기도 하다. 의사 선생님은 다시 한번 강조한다.  


"아주 간단한 수술이에요." 


하지만 현태이의 마음이 간단하지 않다. 몸이란 이상한 것 같다. 아무 일이 없을 때는 존재감도 없다가 어딘가가 아플 때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느껴지기 시작한다.  



수술대에 누운 현태이는 다리를 소독받는다. 약물 처치를 받고 마취 주사를 맞는다.  


"잘 참으시네요."  


잠시 뒤 의사 선생님이 다시 묻는다.  


"어때요?" 


"네? 아무 느낌도 없는데요?" 


"마취가 잘 들었네요." 


현태이는 엎드린 채로 1센티미터의 절개가 나는 자신의 다리를 연상한다.  


 


잠시 뒤 현태이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환자분? 환자분!!"  


"네? 네네네네!?" 


"갑자기 말씀이 없으셔서요. 쇼크가 온 줄 알았어요." 


현태이는 그 사이를 못 참고 잠시 졸았었다. 등에 올려진 핫팩이 너무 따뜻해서 뒤에서 누가 안아주는 기분이 들었던 탓이다.  


"저희가 컨디션을 체크할 때 대답을 잘해주셔야 합니다." 


"네, 어제 잠을 잘 못 자서요." 


"왜요? 수술 때문에요?"  


"아뇨. 어제 저희 집 꼬맹이가 이불에 지도를 그렸거든요." 


태이는 꽤 무던하다. 자신에게 어떤 중대한 일이 있더라도 제각각의 인생이 제각각으로 돌아가는 일들 말이다.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인생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받아들이는 건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질문을 받은 현태이는 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아무래도 아이 이야기가 어른들과 공통주제로는 적합한 편이다. 실은 네 시간밖에 못 잔 현태이는 자꾸 말을 시키는 의사샘과 간호사샘이 귀찮다. 핫팩에 안긴 채 더 자고만 싶다. 하지만 이 분들은 노련하고 친절해서 잡담을 시키며 상태를 체크한다. 덕분에 현태이는 꼬박꼬박 대답을 한다.  


아프지 않아요, 앗, 아파요. 따끔해요.  


 

현태이는 수술하는 의사샘과 간호사샘에게 아이 나이를 묻는다. 이 병원에서 수술 중에 의사샘에게 사생활을 질문하는 환자가 있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채로다.  


"아유, 저희는 대학생이에요." 


"대학생도 다 큰 거 같아도 걱정이 될 거 같긴 해요." 


그분들은 너털웃음을 짓는다. 한참 셋은 신나게 수다를 떤다. 현태이는 이젠 자신의 수다력이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이윽고 간호사샘은 한 어머님 환자분의 말씀을 전해준다.  


"어머님 환자분이 계셨는데, 근처에 따님이 살고 계신가 봐요. 그분 말씀이 자식이 근처에 살면 세 가지는 좋고 네 가지는 나쁘다.라고 하셨어요." 


 


현태이는 순간 자신의 엄마를 떠올린다.  


"어머, 우리 엄마도 그러면 어떡하죠?" 


착실히 직장 다니고 결혼까지 한 딸이 뒤늦게 뭔가를 쓰겠다고 한다. 이 딸은 엄마의 끝나지 않는 걱정거리에 해당할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현태이는 자신이 엄마를 지켜주고 있다고 착각해 왔다. 진심으로 착각도 자유였다.  


"제가 여기서 수술만 받는 게 아니라 인생의 깨달음을 얻어가네요. 하나도 안 아팠어요. 정말." 


현태이는 의사 샘과 간호사 샘이 친절해지신 걸 문득 깨닫는다. 현태이는 또한 우리가 재밌는 걸 좋아하고 이해받길 좋아하고 아픈 건 싫어하는 '같은' 사람이라는 것도 깨닫는다.  


현태이는 병실에 혼자 누워 넷플릭스를 켠다. 염두에 둔 영화가 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아픈 날에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이 제목에 담겨 있었다. 당기는 종아리를 느끼며,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하는 허무함과 번뇌와 사랑을 엿보면서 다음 날은 좀 더 잘 살고 싶어진다


어느 순간 잠이 든 박태이는 알람 소리에 깬다. 새벽 05:00. 벽 너머 당직한다는 의사샘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박태이는 뒤척이며 생각한다.  


 '여기도 미라클 모닝 하시나 보네.'


일어난 박태이도 눈을 비비며, 습관처럼 태블릿을 열어 현재의 자신을 기록한다. 잠시 후 할 일을 마친 박태이는 망설이다, 다시 잠이 든다. 


-221022.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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