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던 사람을, 사랑했던 장소를 기억하세요
예전에 자주 가던 공원이 있었습니다. 사실 말이 공원이지, 빈터라 불러도 무방한 곳이었습니다. 좁은 길을 거슬러 따라 올라가면 탁 터진 경관이 나왔죠. 그곳을 아는 이가 몇 없을 우리만의 공간으로 삼기에 적절했습니다.
답답할 때 우리는 그곳에 자주 갔습니다. 깜박이는 불빛들을 바라보면서 앉아서 공터의 불빛인 듯 우리도 움직이지 않았죠. 한참 동안 가만히 있다 보면 복잡했던 심경도 씻겨 내려가고 평온해졌고, 그러고 나면 다시 걸어서 내려오곤 했습니다.
그 공터에 같이 갔던 그 사람과 결혼하기로 마음먹던 날이 기억납니다. 이 사람과는 앞으로도 남들이 모를 장소와 기억들을 공유하겠구나 생각했었죠. 우리는 이미 비밀을 여러 개 가지고 있었지만, 다가올 많은 날들을 그렇게 더 살아도 좋겠구나 생각했었죠.
결혼사진은 스스로 찍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도시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그곳에서요. 우리가 늘 바라보던 풍경을 뒤로하고요. 한때의 우리와 그 배경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서요. 사람이 붐비지 않을 때를 골라 평일 아침, 작은 꽃다발을 함께 쥔 채 삼각대를 앞에 두고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아 사진은 다소 엉망입니다. 전신 거울도 없는 야외에서 서로의 옷매무새를 단정히 해줄 사람도 서로밖에 없었으니까요. 지푸라기가 원피스에 얼마나 붙던지. 그런 이야기를 뒤로 한 채 저는 하얀 원피스를, 그이는 보타이를 맨 그 사진은 냉장고 위에서 항상 저를 보며 웃고 있지요. 인화했거든요.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죠.
얼마 전 소식을 들었습니다. 도시 개발 계획이 있어서 그 공원을 갈아엎는다나요. 지금의 흔적을 없애고 깨끗하게 새롭게 만든다나요. 멋지게 멋지게요.
아쉬웠지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가서 감탄하게 될 테고, 우리는 그곳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추억을 아는 일은 현실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죠. 알았다면 진즉에 여기 땅이라도 사둬야 했을 거라고 농담이나 할 뿐. 그럴 만한 여유는 없지만 그럭저럭 시시한 농담마저 없다면 우리는 헛헛한 인생을 무슨 재미로 살까요.
아마도 우리의 아이들과 그곳을 찾아가서, “여기가 이렇게 변했네.”라며 아이들이 듣거나 말거나 혼잣말로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릴 테죠. 지금의 우리 부모님들처럼요. 우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생소해할 때에도 아이들만이 그 장소를 아무렇지 않게 누빌 겁니다. 이곳은 원래 그래 왔다는 듯이요.
수십 밤 자고 일어나면 도로가 개통되어 있고, 높고 번쩍이는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어요. 우리가 나이 들어가는 건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요. 터를 닦는다던 건물이 불쑥 나타나는 데에 고작 이 년이 걸렸다지만 그간 우리가 두 살 더 나이를 먹었는 걸요. 시간은 음흉하고 가장 빠른 선수 같아요.
매번 이 도시가 한결같다면 항상 자신을 청춘으로 생각하며 지루해할 사람도 있을 줄 압니다. 하지만 급하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제가 자주 매료되는 것 중 하나입니다. 3대째 내려오는 국숫집이라든가, 사랑의 징표로 사용되는 금반지 같은 것들이 그러하지요.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들을 통해 언젠가의 순간으로 되돌아갈 기회를 얻으니까요.
돌아가고 싶은 시절을 장소를 통해 떠올려볼 수 있다는 건 인간에게 남아 있는 행운 같은 거 아닐까요. 돈도, 건강도 모두 중요하지만 무엇으로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요.
어차피 그 공원이 우리의 것도 아니었고, 우리가 잠시 하루의 지친 시간을 의탁할 뿐이었지만 남기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가져도 되겠죠. 한때는 우리의 모든 것들이었던 곳들이 찬찬히 사라지더라도요.
그러하니, 옛날 친구를 만날 때면 잘 있냐는 안부와 함께 한 번쯤 익숙한 자리를 찾아가려는 마음을 품게 되는 모양입니다. 수십 번쯤 밥을 먹었던 밥집이나 약속 정소를 정하던 분수대 같은 곳이요. 얼마 전 동창을 만나려고 학교 앞에 갔을 때 아직도 그 분식집이 장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가끔씩 필요한 날 청춘이 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있는지도 몰라요. 그 공간에서 우리는 옛날로 돌아가죠. 새로운 창조물들이 궁금하고 아무리 재미있어도, 편안함을 주진 않잖아요. 그때 그 시절 그곳에 자주 다닐 때엔 편안했다는 것조차 모르기가 일쑤였지만요.
어쩌면 그곳이 친구보다 더 반가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분식집에서 함께 자주 밥 먹던 친구들이 떠오르고, 그 친구들과 함께 했던 기억들이 우글우글 몰려왔거든요. 기억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으니, 주름이 하나 둘 파이기 시작하는 친구들의 얼굴을 보면서도 저만은 아닌 척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 분식집이 없었다면 우리의 기억은 아쉽게 남아 더 미화되겠죠.
우리가 처음 둘만 만나 식사를 같이 했던 파스타 가게는 이제 매운 주꾸미를 파는 가게로 업종을 변경했습니다. 한때는 칼국숫집이었고요. 학교가 끝나면 크림빵을 사 먹곤 했던 제과점은 핸드폰 판매점으로, 또 다른 베이커리로, 드디어 커피 집으로 몇 차례나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그곳을 대표하던 거북이 문양도 사라졌고, 건물은 낡고 동네는 쇠락했습니다. 누군가는 떠났고, 하지만 누군가는 다시 거기에 보금자리를 만듭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갑니다.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처럼요. 가게 앞을 지나치며 아직도 말을 해요.
“저기서 당신이랑 내가 처음 만났는데.”
“업종은 바뀌어도 가게 자리는 남아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고 둘이서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 그마저도 약속할 순 없습니다.
갖지 못할 기억은 기억 속에서 더 생생하게 변신하곤 해요. 어느 날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건물이 헐리고 그 자리가 사라지더라도 우리가 그곳에 그 시절을 보냈다는 건 분명합니다.
제 곁에 있는 사람이 그걸 증명하지요. 같이 나이 들어가는 한 사람이요. 하루하루 흰머리가 나며 변하고 있지만, 제 곁에 있다는 것만큼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요. 그런 점들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도 때론 위안이 됩니다.
당신 곁에도 그런 사람 있으신가요. 이 글을 읽은 후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셨나요. 그랬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 가보고 싶은 그날로 평안히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소중했던 어떤 것을 잠시 붙잡아 가만가만 살펴 오래도록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22. 07. 11(일)
* "글쓰기와 사랑"을 주제로 브런치 매거진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쓰기가 이렇게 힘든데도 왜 글을 쓸까, 가끔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제게 존재하는 잊지 않고 싶은 것들을 위해 쓰는 게 아닐까요.
모든 게 사라지더라도 남는 것들이 있듯이 말입니다.
인스타그램에 생활 속에서 느낀 점을 책 속 한 문장과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놀러 오세요.
-박태이- @tae.i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