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아이를 키운다는 공통점
옮긴 직장에는 잘 모르는 사람밖에 없었다. 옆자리에 앉은 박 언니가 “같이 가실래요?”라고 물어서 어색하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구내 식당은 칸막이가 처져 있었다.
속도를 맞춰 밥을 다 먹고 일어났다. 박 언니가 다시 물었다. “커피 마실 건데, 같이 가실래요?” 엉겁결에 따라 걸었다.
거절을 못하는 이 성미. 내가 끼는 게 불편할 수도 있는데. 커피는 마셔야 하고. 아이참.
같이 걸으며 주워들은 박 언니는 비혼이고, ‘솜’이라는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곁에 있던 다른 직원은 솜이 사진을 본 후 탄성을 터뜨렸다.
“으아! 너무 귀여워요!”
쑥스럽게 웃는 박 언니 곁에서 나도 덩달아 더듬으며 말했다.
“귀, 귀엽네요. 하하하...”
솔직히 말해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주 이런 순간에 부딪힌다. 강아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 정말 힙하지 못한 일이라 가급적 언급하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어릴 때 지인의 강아지를 며칠 맡아 기른 적이 있었다. 강아지는 좁은 우리집을 견뎌하지 못해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녔다. 꽤 덩치가 있어서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댈 때는 무섭기도 했었다.
조금 강아지와 더 친해진 것은 중학교 무렵 은영이라는 친구를 통해서였다. 얼굴이 유독 하얬던 은영이는 여름방학이 되기 전까지 몇 달 동안 내 짝꿍이었는데 손목에 자로 그은 듯한 상처가 세 줄 정도 나 있었다. 그게 나을 만하면 이어 손등에, 목에 상처가 나서 학교에 왔다.
쓸데 없이 소설을 많이 읽었던 나는 ‘자-’로 시작하는 무서운 단어들을 상상하며 움찔거렸다. 한참 시간이 지나 친해진 후에야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볼 수 있었다.
“손목 아프겠다.”
은영이는 환히 웃으며 대답했다.
“별로 안 아파.”
나는 ‘자-’로 시작하는 건 안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은영이는 내가 말이 없자 덧붙였다.
“진짜야. 우리 강아지가 문 거라 긁힌 정도야.”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아지라고? 강아지가 물었는데 저렇게 행복해하다니. 내 얼굴에 의이한 표정이 가득하자 은영이는 “우리집에 갈래?”하며 선뜻 초대해 주었다.
은영이 집에는 강아지 세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다. 강아지들은 호기심을 나타내며 꼬리를 흔들고 다가왔다. 어쩔 줄 모르는 내게 은영이가 중개를 해주었다.
“머리를 쓰다듬으면 좋아해. 손을 대면 혀를 내밀 거야. 친해지고 싶다는 뜻이야.”
은영이의 해석 덕분에 강아지와 조금은 친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가르침은 다소 피상적이기도 했다. 겪어보지 못한 채 말로만 연애를 배우는 심정이었다.
이후로도 자주 친구들의 집에서 강아지를 만나왔다. 복슬복슬 푸들이나 엄청 빠른 닥스훈트도 있었다. 함께 놀다가도 하늘이 어둑어둑해져 헤어지면 그뿐이었다.
한순간 귀엽다고 손을 내밀어 마음을 주는 흉내는 낼지언정 강아지를 키우기엔 늘 나는 자신이 없었다. 처음에는 나를 챙기기에 급급했지만, 점차 챙길 대상들은 늘어만 갔다. 아이, 부모님 기타 등등. 챙기고 책임져야 할 대상들이 늘어가는 일은 늘 두렵기만 했다.
그러므로 나는 박 언니와의 이 대화가 너무나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박 언니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 아침, 솜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는데 어찌나 길이 막히던지요.”
“차량이 없어요?”
“아, 위험하기도 하고 데려다주는 게 제 마음이 편해서요.”
박 언니의 작은 미소가 익숙했다. 시간을 분 단위로 체크하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사람이 또 있지 않던가? 바로 나 말이다.
조금 전 느꼈던 낯섦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나는 박 언니의 곁에 찰싹 붙어 강아지 유치원은 비용은 얼마냐고, 가서 하는 활동은 뭐냐고, 낮잠도 자고 오냐고 종알종알 대고 말았다.
이를테면 언니가 강아지 유치원에 솜이를 데려다주는 사이 나는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낸다. 언니가 개 우의를 검색하는 동안 나는 여아 비옷을 검색한다. 언니가 새벽 6시 솜이를 위해 비옷을 입고 산책하는 사이 나는 일어나 아이를 깨우고 아침밥을 차린다.
결국 우리가 누군가를 돌보는 하루일과는 비슷하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 )을 한다."처럼 간단히 정리할 수 있게 된다.
괄호 안에 들어갈 어떤 행동을 하는 사이에 우리는 저만치 미래에 가 있다. 자기 자신을, 강아지를,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서다. 그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미리 생각하면서 자신보다 그들을 더 자주 떠올린다.
나는 솜이에 대한 박 언니의 마음을 아이들에 대한 내 마음을 빗대어 짐작한다. 같이 있어서 좋고, 사라질까 불안하고, 안달복달하며 더 잘 되게 해주고 싶은, 좋음과 애처로움과 걱정이 수반된 마음 말이다.
아침마다 등원 전쟁을 치르고 오는 박 언니가 차츰 무척 가깝게 느껴져 가던 어느 날, 박 언니는 아침부터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오늘 처음으로 솜이를 혼냈어요.”
"어머, 왜요?" 내가 비명을 지르듯 묻자 한숨을 푹 쉬며 언니가 대답했다.
"밥을 하도 안 먹어서요."
나는 그 심정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는 속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그렇게 산책을 많이 다니는 데도 왜 밥을 안 먹는지 모르겠어. 정말."
"저도 애가 밥을 제때 안 먹어서 화를 내요. 뛰어노는 데도 배가 안 고픈가 봐요."
"아, 그 집도 그렇구나."
"안 먹는다고 혼내는 게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뒷말은 동시에 외쳤다.
"쉽답니다."
한바탕 웃고는 각자의 칸막이 안에서 밥을 먹었다.
칸막이 안에 앉을 때마다 너와 내가 다른 사람이라는 게 실감이 났었다. ‘함께’라는 결정적 순간은 결코 오지 않을 것만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우리가 무엇으로 공유되어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애정을 잔뜩 쏟아 사랑하는 ‘무엇’이 있다는 점이다.
내가 더 수고롭고 더 고생하더라도 우리는 이 사랑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랑은 전혀 다른 우리를 이어주었던 것처럼 또다시 어디론가 연결될 것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