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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이 Aug 28. 2022

끈이야 끊어지리잇가

포기하지 않는 자세


솔직해지겠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만 고백하고 싶은 비밀이 하나 있다. 이전의 어떤 글에서 주로 하는 운동은 수영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그 글에 따르면 마치 수영을 굉장히, 우아하게, 자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이번이 수영 세 번째 수강이다. 초급반 말이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에서 초급반은 가장 왼쪽 라인이며 수영을 시작한 처음부터 최근까지, 말하자면 아직까지도 여전히, 그 라인에 계속 존재하고 있다.


애초부터 그럴 계획은 아니었다. 초급반을 수강하다 수영을 쉬게 된 건 이석증이라는 귀찮은 증세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이석증이란 달팽이관에 붙은 균형추 역할을 하는 돌이 떨어져 어지러움을 유발하는 증상이다.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회전시켜야 하는 수영인들에게서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는 카더라가 있다.    

  

일 년쯤 후에 다시 수영을 시작해야겠다고 맘먹었을 때는 코로나가 유행 중이었다.

가다 말고, 가다 말고. 수영장도 열었다 닫았다 했지만 그뿐 아니라 나 자신 역시 수영에 대한 마음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이다. 이제 정말 초급반 수강은 마지막이라는 굳센 의지를 불태우며 새벽 6시 수영을 신청해서 가보니 옆 라인인 중급반에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마주치기 싫었던 김 부장님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내게 수영 초급반의 역사는 면면이 이어져 내려왔다. 매번 초급반의 마지막 영법인 접영을 배우다 말고 끝이 난다.      


웨이브를 하며 엉덩이를 둥실 치켜올려야 하는 접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 될지는 이번에도 지켜봐야 할 일이다.


옆 라인과 옆 옆 라인에는 여러 떼의 날치처럼 물방울을 아름답게 튀기며 점프하는 수영인들이 계신다. 그 너머로는 아쿠아로빅으로 무릎 허리 운동을 하는 할머니들이 계신다.      


초급반에서 하는 수영은 주로 기본자세에 관한 것이다. 멋진 자세를 갖기 위해서는 무수히 반복해야 할 동작들이다. 다리를 펴고 힘 있게 찬다.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팔을 뻗고 돌린다. 호흡과 움직임을 깊게 조절한다.      

나는 접영 기본자세인 전신 웨이브를 뻣뻣하게 시전 하면서 연신 그들을 흘끔흘끔 훔쳐보고 감탄한다.


멋진 자세로 팔을 휘젓는 수영인들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나도 꼭!’이라는 결심을 불태우지만 그녀들과 나의 거리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멀다.      





나는 내심 꾸준히 반복해야 한다는 점에서 수영이 글쓰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멋지다고 생각하며 숨을 크게 들이쉬고 물속에 얼굴을 박는다.      


엉덩이 띄우고 발 차고, 아, 아쉽습니다. 동작 연결에 실패했습니다. 대 실패.      


이 과정이 잘 되지 않을 때 웃음과 위로를 준 건 함께 뒤로 처져 있는 수강생들이었다. 나를 포함 총 세 명의 수강생이 남들 뒤에 남아 있다. 셋 다 말로 먹고사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몸 쓰는 게 익숙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 과정을 익히는 데에만도 품이 들었다. 수영장에 가겠다고 결심하는 데 몇 년. 수영장 탈의실까지 들어가는 데에 몇 년. 라인 속에서 기본 동작을 배우는 데에 또 몇 년.    

  

혼자 물에 뜨는 데까지 또 또 또.


아주 아아주 처어언-처어어언히-노오력하고-노오오오력하-면-서- 현재- 이- 라인에- 서- 있는 것이다.     

 

입을 열어 고백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만이 내가 여기 출발선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는 오직 안다.      



수영에 있어서의 나는 이토록 아주 게으르다. 일주일 중 삼 일을 간다면 무방하다. 일주일에 하루만 갈 때도 있고 살짝 느껴지는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 가끔씩 주말에 방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하루 종일 게으른 건 아니다. 수영은 어쩌면 내게 여가의 시간이고, 시간 대비 노력의 투여는 아주 적은 시간일 수밖에 없다.      



수영을 끝나고 젖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나가는 초급반 수강생들은 수영장 안에서와는 매우 매우 다른 사람 같다. 한 번쯤 본 듯한 얼굴들이지만 우리가 아는 척을 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빠른 걸음걸이를 바라보며 그 사이에 섞여 함께 걸어간다. 오늘의 해야 할 일은 아주 많다. 물 밖에서의 시간은 물속의 세상과 달라 시간이 몇 배로 빠르게 흐르는 기분이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낮의 수영인들을 연상한다.


6시부터 수영을 하고, 7시에 강습을 마치면 분주히 단장을 한 뒤 각자의 일터로 흩어지는 이 사람들은 낮에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신나게 웃을까. 피곤해할까.      


실패하면 심하게 부끄러워하는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물속에서 실패해도 덤덤한 표정인 그들의 하루도 그와 비슷할까. 예측하기 어려운 시간들이다.      


번듯한 회사원이거나, 공부하는 학생이거나, 신나게 춤추며 놀았거나, 집에서 아이를 돌보거나. 각자 하루를 충실히 살다가 밤에 자기 전엔 다시 수영을 떠올리지 않을까.      


어느 누군가는 나를 지켜보며 저 여잔 실력 정말 하나도 늘지 않는다고 혀를 쯧쯧 찰지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초급반 라인의 차가운 물에 조심스레 몸을 담그며 나 역시 중얼거릴 것이다.    

  

온 게 어디야. 이 새벽에 잠 안 자고 온 게 어디냐고.



-220828.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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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i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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