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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이 Oct 24. 2021

무서운 성실

때가 되어 당연히 맺는 결실 

 

  길을 가다가 우뚝 멈췄다. 석류였다. 


  “석류네! 여기 석류 있는 거 아셨어요?" 


  다들 어린아이 보듯 빙그레 웃고만 있었다. 석류는 커다란 등처럼 붉고 탐스러운 모습으로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언제부터 여기에 이게 있었네!”


 그 열매를 알아본 나 자신이 벅찼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사람만 눈에 보이고, 살 집을 찾는 사람은 어디서도 집만 보인다고 하더니, 마치 집에 화분 하나 제대로 간수 못하는 내가 열매를 알아보는 그럴듯한 사람이 된 듯했다. 


 다가가 이리저리 살펴보고 사진도 찰칵 찍어두었다. 요란을 떤 셈이다. 정작 옆에 있는 일행들은 아직도 시큰둥했다. 

  “왜요. 예쁘지 않아요?” 

  “아유, 다 소용없어. 사진 찍어봤자 부질없어.”     

  이유를 들어보니 그랬다. 진작 보기는 봤는데 그저 그랬단다. 과거에는 아름다운 것, 예쁜 것들을 보고 감탄하기도 하고 찍어 인화하기도 했는데 그때뿐이지 지나고 보니 다 의미가 없다는 거였다.  매해 반복되는 맺음들이 특별할 건 또 무어냐는 거다.      



  언젠가는 나도 그랬다. 그 열매와 내가 무슨 상관이냐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길거리의 열매 한 번 알아본다고, 무엇 하나 바뀌는 일이 없었다. 열매도 마찬가지 아닌가. 애써 열매로 값지게 나타나 봤자 사람이나 동물이 맛나게 먹어주면 그만이고, 누가 먹지 않으면 땅에 떨어져 다시 거름으로 돌아간다.    

  


  말하자면 욕망한다는 일 자체가 욕심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무모하게 덤벼들어 이 악물고 살면 달라지는 일은 분명 있겠으나 먹고 자고 하다 보면 인간의 마지막은 결국 똑같지 않은가, 이러나저러나 사람 사는 일 평범하지 않은가. 그런 마음도 순리라 부를 수 있으려나 자조한다.      



  그럼 이제 와 나는 왜 이러는가. 얼마 전, 아파트를 산책하다 길고양이를 만났다. 누군가가 밥을 먹이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쳤다. 씨익 한 번 웃고는 이내 키 큰 나무들에 시선을 돌렸다. 나뭇가지 사이에 무언가가 있는 걸 본 것 같았다. 초록이라 나뭇잎과 구별이 잘 되지 않았지만 분명 감이었다.      



  한 번 감을 발견하고 나자 자꾸 나무들을 보게 되었다. 감나무인가 아닌가. 감 대신 밤송이들도 발견했다. 그것들이 거기에 있었던 게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처음에는 눈에 띌 수 없을 만큼 작았던 무엇들이 열매라 불릴 수 있을 만큼 자랐다. 누가 알아보지 않아도 홀로 열심히 제 할 일이라는 마냥.      



  사랑이건 일이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매일같이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날엔 자기가 당연하고, 어떤 날엔 자기가 애처로울 거다. 그런 자기애를 품고도 해마다 반복되는 그 피고 맺고 지는 애씀을 애타는 마음으로 살아내는 건 끈기 없는 이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무슨 결과가 일어날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지도 알 수 없으면서 그래도 하고 있다면 그건 제일 무서운 성실 아닌가 싶다.   


   

  나뭇가지에 달린 열매를 기특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었다. 지금처럼 같은 색의 잎사귀 사이에서 익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색이 화려하게 변하면 그제야 뒤늦게 알아본다. 


단조롭고, 고요하고, 평온해 보이는 그 아래에 부단히 애썼음이 존재한다는 걸 조금이나마 알아간다. 결코 우리가 알 수 없는 노력의 힘들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걸 짐작한다.       


 

  문득 열매 같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무섭도록 잔잔하면서도 제 할 일을 하다가 어느 날 불현듯 열매를 터뜨리는 사람들. 어느 누군가에겐 뜬금없는 출몰이겠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덤덤하게 때가 되어 맺은 당연한 결실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열매를 단순히 열매로 치부하지 않고, 그 무서운 성실을 알아볼 수 있다면 세상의 비밀에 한 발짝 가까워진 게 아니겠는가. 나는 그걸 알아보고자 하는 노력이 '부질없음'을 '부질 있음'으로 변화시키는 특별한 주문이라고 믿는다. 


두근대면서도 욕망하여 나 또한 기왕이면 무섭도록 성실한 열매가 되고 싶다. 부단히 애쓰면 기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부질없는 꿈을 꾸어 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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