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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이 Oct 10. 2022

<Ep.10> I love you의 번역어

당신의 '사랑해'는 무엇입니까

10.  "I love you"의 번역어를 가지고 있습니까?  



현실 속 박태이, 즉 현 태이는 지난여름부터 어떤 애들과 글쓰기를 함께 하고 있다.

그 애들이라 함은 고등학생 7명이다.    

  

걔네들은 이 세상에서 제일 바쁜 것 같은 애들이다.

놀고 공부하느라 시간이 아깝다.

그런 애들이 자신이 쓴 글을 들고 수업에 온다.      


그래서 그 애들과 있을 때는 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보태지 말자고 다짐하게 된다. 다만 그 애들이 지나치게 귀엽기 때문에 그러기란 쉽지가 않다.      


지난주 주제는 친구(이성친구 포함)이었다.

그들의 친구들이 글에 등장했다. 옆에 있는 친구, 옆을 떠난 친구, 가까워질랑말랑하는 친구, 좋아했지만 헤어진 친구들이다.      


어떤 글은 다정하고, 어떤 글은 씁쓸했고 어떤 글은 웃겼다. 한 가지 공통점만 있었다. 모두들 친구들이 소중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이다.      


그 애들에게는 친구란 ‘제2의 나’ 같은 존재들이었다.      


부모도 아닌, 자기 자신도 아닌 최초의 소중한 타자를 만나 어쩔 줄 몰라하는 그 애들을 앞에 두고 현태이는 다소 마음이 불편해지는 걸 느낀다.      


현 태이는 그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변명 같아도 그럴 수 있는 상황에 처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우위에 놓을 만큼 다른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없는 현 태이는 그 애들의 감정을 어렴풋이 이해한다.      


때문에 오늘의 수업에서 현 태이는 더욱더 말을 아낄 예정이다. 현 태이가 일부러라도 결코 하지 않는 말도 있다. “원래 그런 거야.” 같은 말들이다.      


현 태이는 글쓰기를 좋아한다며 여기에 온 이 애들이 소중한 기억을 오래 간직하길 바란다.

원래 그렇다는 말로 기억을 흩뿌리지 않길 바란다.      


현 태이가 글 쓰는 애들에게 바랄 수 있는 건 거기까지일 수밖에 없다. 공부를 잘하라거나 꿈을 위해 욕심을 부리라는 말을 할 수는 없다.      


동시에 현 태이는 이 글쓰기 수업에서 무얼 남길지도 생각해야 한다.

이 애들은 언제까지 쓸까? 어느 날은 글쓰기가 갑자기 싫어지거나 이 수업도 까맣게 잊힐지도 모른다.    

  

최소한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남아 있길 바라는 게 현 태이의 바람이다.

 그렇다면 이 수업에서 하나만 남길 것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이윽고 현 태이는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

“나쓰메 소세키라는 일본 작가 알아?”

그러자 연이라는 아이가 신나게 대답했다.

“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쓴 사람 아닌가요? 저 그거 읽다가 말았어요!”     


“오, 맞아. 그분이 예전에 영어 선생님을 할 때,

한 학생이 ‘I love you’라는 말을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직역했대.

그러자 나쓰메 소세키가...”


“달. 이. 아.름.답.네.요.”


“맞아.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적어두게. 그걸로도 충분할 걸세.라고 했다는 얘기지.”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애들 중엔 반드시 우려하는 아이가 있다. “상대방이 못 알아들으면 어떡해?”

현 태이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도 맞아. 아주 오래전 일화니까. 후대의 한 작가는 같은 말을 ‘죽어도 좋아.’라고 번역했거든.”

애들은 자기들은 낭만적인 게 좋다는 쪽이다.      


“너희들의 글에서 ‘친구’라는 말은 곁에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자 그리운 사람이기도 한 것 같아. 자, 그렇다면 질문이야.

‘I love you’를 너희들의 언어로 번역하면 뭐야?”     


애들은 제각기 와글와글 떠들다가 툭툭 말했다.


“본지 오래지만 잘 지냈으면 좋겠어.”

“그냥, 사랑해. 그거요.”

“네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안부는 싱거운 음식에 소금 몇 알을 뿌리는 말들이다. 다만 그 말들이 직접 전해지기란 어려울 거다. 글로라도 전해진다면 다행일 것이다.      


현 태이는 그 아이들이 한 말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가만히 바라본다. 그 말들은 현태가 자신이 언젠가 흘렸던 말이자 기억 같기도 하다. 마음이 울컥해지는 건 이 자리에서 오직 현태가 뿐인 거 같다. 걔네들은 너무 아무렇지가 않다.      


현 태이가 이제 자주 연락하지 않는 오랜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면 마지막 말은 “푹 자.”일 것이다.

“나중에 또 전화할게.”이기도 하다.


“.... 샘, 울어요?”


“아우, 울긴, 왜 울어. 소중한 사람에게 소중히 대할 용기를 생각하며 오늘 수업은 마친다.”     

현 태이는 더 울먹거리기 전에 황급히 수업을 마친다. 그저 쾌활한 이 아이들은 또 와글와글 떠들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제 글쓰기 수업은 1회가 남았다.

“샘, 우리 이거 언제 또 해요? 너무 재밌어요.”

“나중에 기회 되면.”     


애들이 떠난 빈자리에 남은 종이를 주섬주섬 챙기는 현태이. 현 태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글쓰기가 재밌다는 유물 같은 애들이 아직 있구나...”      


현 태이는 연필로 일지에 기록을 시작한다.

날짜와 이름, 그 애들이 했던 인상 깊은 말들이 적힌 간단한 메모다.


이 말들은 아이들이 쓰는 어른이 되면 보내줄 생각이다.

현 태이는 이 불완전한 글들이 주인에게 돌아가는 낭만을 기분 좋게 즐기며 포털 사이트에 접속한다.      

인터넷 창에는 AI 글쓰기 튜터에 관한 기사가 떠 있다.      


현 태이는 AI보다 배우고 쓰는 속도가 훨씬 더딘 그 애들과... 자신을 생각한다. 기대와 의심을 실습하고 싶어진 현 태이는 몇 번의 클릭 후 단톡방에 메시지를 쓴다.


“다음 주 주제:  AI 보조 작가 실습.”


AI보다 더 나은 낭만의 스토리는 무엇일까. 현 태이는 다음 주에도 그 애들과 AI에게 많이 배워보려 한다.

-220918.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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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는 글태이와 현실 속 현태이의 시리즈를 새로 매거진으로 만들었습니다.

매거진 제목은 'A writer is born'

어제 '스타 이즈 본'을 보다가 작성한 제목입니다. :)

* 넷플릭스 드라마를 기원하며 에피소드를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큭큭

브런치 작가님들, 재밌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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