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이 찾아왔다면 그를 반겨라. 그리고 함께 쉬어라. 자책하지 말자.
오지게 게을렀던 토요일. 번 아웃이 찾아왔다. 할 일, 많은 주말, 하필 이 때 올게 뭐람. (하긴, 주말에 일하기 싫으니까 게으른 나.님-을 이해는 한다. 버닝아웃은 핑계고, 솔직히 말하면 그냥 부담감이 큰 거다. 빨래 정리보다 일에 대한 부담이 큰 건 사실이잖아.) 빨래도 개기 싫은데 이 좋은 주말 밤에 업무라니.
그래. 통 크게!!! 나에게 게으름을 허락하기로 했다.
버닝 아웃은 생각보다 예측 불허한 타이밍에 찾아온다. 자주 찾아오는 번아웃을 대하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최근 몇 달간, 그리고 지난주까지 한 2주 간은 잘 달려왔다. 부스터 속도로 일상을 잘 지낸 최근이었다. 그러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금요일 퇴근과 동시에 퓨즈가 올 스톱되었다. 버닝 아웃이었다. 그럴 땐 유별나게 ‘어쩌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 아놈쉬키- 또 왔네.’라고 심드렁하게 그를 맞이한다. 그날 밤, 할 일들을 잔뜩 짊어지고 퇴근했음에도 금요일에 이어 토요일까지 정말, '아. 무. 것. 도'하지 않았다. 할 일들은 쌓여있었지만 번아웃이 찾아온 겸, 마음 편히 나를 쉬게 해준다.
그래- 그냥 말자-
버닝아웃을 느낀 순간, 그 주말에는 마냥 늘어지기만 했다. 평소에도 잘하던 눕기를 계속했고, 푹신한 이불과 보드라운 베개에 나를 더 눕히도록 시간을 허락하고, 또 허락했다. 보고 싶던 TV도 늘어지게 봤고, 그 와중에 잠이 오면 그대로 잠들었다. 간간히 시계를 노려보긴 했지만, 잠깐 물을 먹으러 가는 시간 외에는 몸이 이끄는 대로 나를 눕혔다.
하필 중요한 일을 앞둔 타이밍에 번아웃이 올 줄은 몰랐다. 할 일이 많기도 했고, 심리적으로 그 일들이 싫지도 않았으며, 나름의 활기찬 외출 스케줄도 다 짜두었던 주말이었기 때문에 예상 못했던 타이밍이었다. 예상대로라면 아침 일찍 일어나 예약해둔 스케줄들을 착착착 소화해내고, 점심쯤 영화 한 편, 맛있는 밥까지 먹고 들어와 업무도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그 쉬키- 덕분에 나의 황금 주말이 올 스탑-되어버렸다.
그 날 했던 생산적인 일이라곤, 도착한 택배를 뜯어보는 일. 주말여행을 간 아이들과 신랑에게 '잘 갔다와-'라고 배웅해준 일. 딱 이 2가지 밖에 없다. 저녁이 되도록, 아이들 아침 먹였던 설거지를 식기세척기에 넣고 돌리는 것 조차 안 했으며, 아침에 일어나 개어 둔 빨래를 서랍장으로 넣는 일도 무기한 미뤄두었다.
그럼에도 ‘괜찮다.’고 나를 내비두었다. 그래 봐야 빨리 정리 하는 데 필요한 시간, 단 3분- 식세기 돌리는 데 필요한 시간, 단 3분. 고작 6분일 뿐인데, 고작 그 6분을 부지런하게 살겠다고, 오늘 나에게 찾아온 번아웃을 자책하고 싶지 않았다. 괜찮다. 번아웃. 그 녀석이 찾아와도 괜찮다.
번아웃 걔는 원래 그렇게 불쑥불쑥- 어이없는 타이밍에, 지- 맘대로 찾아와서 나의 시간을 좀먹기는 하지만.. 그대로 내버려두어도 괜찮다. 나를 쉬게 해주자. 그동안 힘들었다잖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힘들었다잖아. 그래서 나를 위로하려고 찾아온 녀석이다.
이 놈! 온김에 나랑 친구하자. 그냥 나랑 같이 놀고, 먹고, 쉬자. 같이 늘어지고, 같이 눕자.
예측 못한 타이밍에 번아웃을 당할 수밖에 없는건 바쁘고 힘든 현대인이라 그렇다. 늘 번님에에게 당해야하는 처지이지만 피할 수 없다면 번님이랑 친구해버리자. 우리에게는 만사 귀찮아하는 삶을 즐길 권리가 있다. 나를 찾아온 번님과 함께 게으름을 추구할 권리를 즐기면 그만이다.
지치고 피곤하고 힘들어하는 데 자격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그냥 내가 느끼기에 힘들고 괴로우면 번아웃이에요.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해야만 번아웃이 오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를 살펴주세요. '내가 많이 지쳤구나' '내 몸이 뭉쳤구나' '힘이 드는구나' '감정이 덜 느껴지는구나' 하고 자각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 안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