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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늬 Oct 24. 2021

#2 북한여자 리경

나, 리경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믿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북에서 남으로 넘어오면서 총 네개의 관문이 있었는데 통과 할 때마다 관문을 소개해준 사람이든, 관문에 서 있던 사람이든 혹은 그 관문을 같이 통과했던 앞,뒤 사람이던 모두를 의심하고 멀리 했다. 가까운 친척도 믿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잡혀가지 않았으며 지금껏 살아남아서 남한에서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런데 요즘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는 나를 너무 믿는다. 나와 결혼할 것이라고 믿고, 사랑이 변치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심지어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 물론 나야 믿어주어서 정말 고맙지만 나는 이 사람을 믿지 않는다. 북에서 넘어온 첩자인지, 혹은 내가 그동안 모아놓았던 돈을 빼먹을라고 하는 간나새끼인지 모를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남자친구라는 놈이 나 말고도 모든 사람을 다 철석같이 믿는다는 것이다. 도무지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되는데, 자기는 태어났을 때부터 단 한번도 사람을 의심해본적이 없으며, 사람이라는게 완벽히만 믿어주면 절대 사람을 배신 안한다고 했다. 이런놈은 북에서 살면 진즉에 이런저런 일에 휘말려서 탄광에서 흙먼지나 맡고 있을텐데 남한에서 태어난게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리경이 북에서 넘어와 가장 먼저 느낀점은 남한사람들은 누구나 취향이 있다는 것이다. 옷이라던가, 음악이라던가, 혹은 음식이라던가. 음식에도 취향이 있다니? 리경은 ‘음식이라는 게 그냥 목구녕으로 넘길수만 있으면 고거이 음식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남한에서는 음식 취향을 재밌게도 나라의 이름을 앞에다 떡하니 붙여서 자기의 취향을 은근히 내비쳤다. 그런데 이 취향이라는 게 가만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었다. 남한에서의 취향은 돈이었고 곧 계급이었다. 계급이 하나도 없어보이는 사회에서 은근하게 비싼 취향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나름 고급형 인간이라고 착각했다. 비싼 향수나 좋은 가구, 혹은 명품을 사재끼는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은근하게 뽐내기를 좋아했다. 북에서도 촌스러워 입지 않는 커다란 로고가 박힌 옷들을 당당하게 입고 당겼으며, 몇십년전에 나온 오래된 나이키 운동화를 몇천만원을 주고 거래했다. 리경은 그런 취향으로 계급을 나누는 남한의 풍토가 꼴 사나웠지만,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러한 취향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리경에게 인스타그램은 가장 큰 스승이었다. 남한에서 유행하는 옷이라던가 그것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좋은 카페나 맛집 정보나 예능, 심지어 정치이야기도 인스타그램에 있었다. 리경은 충실하게 트렌드를 따라하고 쫓아가며 남한의 취향을 하나둘씩 배워갔다. 시간이 지나고, 리경도 차츰 남한 사람들이 갔던 카페들을 가고 가끔은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면 사진을 찍어서 올리기도 했다. 남자들은 리경의 그런 사진들을 보고 DM으로 이쁘다며 만나고 싶다고 징징거렸는데, 아무도 믿지 않는 리경은 그런 남자들을 가짜인간, 변태, 사기꾼이라고 생각해서 만나지 않았다. 잘못하면 북으로 송환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막연히 있었다. 물론 리경도 남한에서 살고 있으니 막연히 남한 남자와 데이트 하고 싶었지만, 모태솔로인 리경은 어떻게 남자를 만나야 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유일하게 리경이 인터넷으로 보았을 때 멋지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한 명 있었다. 


남자는 틱톡커였다. 댄스의 완벽한 선, 칼박자, 춤에 적합한 신체, 뛰어난 창의적 안무, 그리고 무엇보다 완벽한 표정. 리경은 일주일에 두어번 올라오는 남자의 댄스를 몇번씩 돌려보았다. 그리고 그 댄스를 볼 때마다 가슴 저편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리경은 틱톡커 아이디와 같은 아이디를 가지고 있는 남자의 인스타그램도 팔로우 했다. 남자의 인스타그램은 누구보다 세련된 피드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끔 맛집을 올리는 데, 리경은 한번 이 사람이 갔던 곳을 우연한 기회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너무 맛있어서 리경은 깜짝놀랐다. '남한은 정말 입맛도 대혁명적으로 변화했구나야.' 남자는 비싼 음식점에는 자주 가지 않았지만 고기를 매우 좋아해서 국밥집이나 고기를 잘하는 음식점들을 올렸다. 리경 역시 고기라면 환장하는 터라 남자의 맛집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리경이 반차를 쓰는 날이었다. 그냥 맛있는 음식 한 그릇 먹고 집에가서 푹 자야지 라는 생각으로 생각없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살펴보는 리경은 정말 맛있어보이는 콩국수가 올라와있는 피드를 보고 나서, 군침을 삼켰다. 콩국수에 환장하는 리경은 자신의 직장 근처에 콩국수집이 있는 것을 알고 반차를 쓰자마자 콩국수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콩국수를 한 그릇 시키고, 혹시라도 그 사람이 없을까 두리번 거렸는데, 저 구석에서 익숙한 비니를 쓴 사내가 조용히 콩국수를 먹고 있었다. 


리경은 연예인을 보는 것 같이 두근두근했다. 사내는 익숙한 제스처로 김치를 추가로 더 시킨 후 국물까지 싹 비우고서는 빈 그릇 사진을 찍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경은 남자가 스토리에 콩국수 빈그릇을 무심하게 찍어 올린 사진을 확인 한 후 그 남자임을 제대로 확신했다. 남자가 나가고 나서야 리경은 편안하게 콩국수의 맛을 즐길 수 있었는데, 역시나 남자가 추천한 콩국수는 적당히 달큼하며 깔끔했다. 대단한 콩국수였다. 리경은 큰 감동을 하며 스토리에 올린 남자에게 용기를 내서 DM을 보냈다. 저도 방금 먹었는데, 너무 맛있네요! 남자는 메시지를 읽자마자 답장을 보냈다 “다행이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리경은 여기서 뭐라고 보내야 할지 엄청난 고민을 하다가 이때가 아니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남자에게 다시 한번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좋은 맛집도 알려주셨는데, 아직 근처시면 차 한잔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남자는 생각외로 매우, 그러니깐 정말 많이 쑥스러움을 탔다. 커피를 드는 잔의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려서 혹시라도 커피잔을 놓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리경 또한 떠는건 마찬가지였다. 남자랑 이렇게 대화를 했어봐야지..리경은 남한친구들 덕분에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았는데 이 남자에게는 자신의 정체를 먼저 밝히는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저는 리경이라고 하고요. 북에서 왔습니다” “네? 북에서요? 북한사람이세요?” “네, 3년전에 북한에서 귀순했습니다” “근데 사투리를 하나도 안쓰시네요?” “네 저는 이제 남한사람이니깐요, 그런데 제가 북한 사람인 것을 믿으시나요?” “네 믿지 못하는 건 없죠”


리경은 직감적으로 이 남자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리경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날 밤 술 한잔 들어간 리경은 바로 남자에게 팔짱을 꼈다.  이론이 빠삭한 모태솔로가 각성하면 이렇게나 대담한 것이었다. 


남자는 리경보다 두 살이 더 많았고, 리경이 원하는 남한사람이었다. 남자는 리경이 무슨말을 하든 모두 다 믿어주었는데, 시험을 해보고 싶어서 두어번 거짓말을 했는데도 믿어주었다. 어쩌다가 거짓말을 들키더라도 남자는 리경을 탓하지 않았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거짓말 했을것이라며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남자는 리경을 자신의 종교처럼 생각했다. 아마 리경이 북한 사람이 아니라 외계에서 온 사람이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완벽한 믿음안에서 리경이 살기 위해서 세워놓은 불신의 벽들이 조금씩 허물어져갔다. 남자는 정말 단 하나의 거짓말도 말하지 않았다. 사람을 믿지 않는 리경은 남자의 행동과 말을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어느하나 거짓말은 없었다. 어느새 남자에 대한 믿음은 점점 더 깊어져갔다.


몇 달이 지났을 무렵, 둘은 맥주를 사려고 편의점에 들어갔다. 점원은 남자에게 신분증을 달라고 했고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신분증을 꺼내서 점원에게 넘겨주었다. '분명 신분증 잃어버렸다고 했었는데..?' 리경은 갑자기 신분증이 궁금해져서 한번 봐도 되겠냐고 말했다. 남자는 사진이 너무 이상하게 나와서 안된다고 나중에 사진 바꾸면 보여준다고 했다. 리경은 이싱한 느낌이 들어서 남자의 지갑을 뺏은 후에 신분증을 봤다. 


신분증을 보자 갑자기 현기증이 나는 리경이었다. 남자는 시무룩해져 가지고는 리경에게 말했다. 

“죄송합네다..동무..사실 저도 북에서 왔슴다”

남자의 신분증에 새터민 고유의 주민번호가 찍혀있었다. 심지어 나이도 자신보다 3살이나 어렸다. 지금까지 딱 한 번 거짓말을 했다고 싹싹 빌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북한 노동당 직속 남자 무용수였다. 어쩐지 칼군무가 애사롭지 않더라니...리경은 기분이 나쁜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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