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외 임신이 가능하게 되자 자연임신은 종말 했다. 그리고 몇 십 년 후 성별이 없는 신생 인류가 태어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인류는 남자와 여자로 구분할 수 없는 성기를 가지고 태어났으나 20살이 되면 하나의 성을 선택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여성과 남성에 대해서 심도 있게 토론했으며 매년 여성반과 남성반을 선택하여 자신의 영혼이 어떠한 성을 가지고 있는지 공부하였다. 그러나 겨우 12년이었다. 12년이 되고 나서 선택하는 성은 평생 가지고 있어야 했다. 매년 성별을 바꾸며 자신의 성을 능동적으로 찾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친구 따라 얼떨결에 들어간 남자반을 12년 내내 하다가 아무런 생각 없이 남자를 선택한 아이들도 많았다.
수현은 남자반에서 벌써 11년째였다. 이제는 1년밖에 남지 않은 무성의 삶이었다. 보통 이정도 시간이면 마지막년도도 남자반으로 선택할테지만,수현은 내년에 여자로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순전히 같은 반에 있는 동현 때문이었다. 동현은 수현과 같이 11년 동안 남자반에서만 살아온 친구였다. 동현은 남자의 삶에 매혹되어 남성다움을 쫓는 아이였다. 아주 오래된 영화를 보며 남자다운 제스처나 말투들을 따라 했으며, 이상한 쿨병이 걸려서는 "괜찮다 마! 이 정도는"을 연발했다. 동현은 점점 과묵해져갔고, 그것이 남자의 삶이라고 말했다. 이미 백 년 전에 사라진 남자다움을 동경하는 동현을 보며 수현은 웃기기도 했지만 이상한 매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남자다움을 이야기 할 때면 나타나는 동현의 옆턱선이 좋았다.
동현은 수현의 첫번째 친구였고, 게임을 하면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중학교 때부터 거의 매일을 동현과 함께 했다. 그런데 11년 째 되는 봄날, 동현은 여자반에 있는 단발머리 아이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말투가 좋다나 뭐라나. 수현은 그런 동현이 마음에 안 들었다. 언제는 자신과 말이 잘 통해서 좋다고 했으면서. 들어보니 동현이 그 아이와 나눈 시간은 겨우 10분 남짓이었다. 겨우 10분! 그 10분에 동현은 그 아이에게 마음을 뺏겨버렸다. 수현은 그제서야 동현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남자가 될 동현을 좋아하고 있는지, 아니면 같이 함께 한 시간 때문에 동현을 좋아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적어도 수현은 인간으로서 동현에게 끌리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 동현은 남성으로서 그 아이를 좋아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내년이 되었다. 수현은 동현에게 말하지 않고 여자반에 지원했다. 자기가 좋아하고 있는 오직 단 하나의 사람. 그래. 동현을 위해서라면 여자로 한번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여자반이 된 첫날,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익숙한 뒤통수를 보았다. 동현이었다. 이 자식이 왜 여기 있지? 수현은 이미 선택을 내려버린 마당에 다시 남성반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여자반에서 마지막 1년을 지내야 했다. 그런데 동현이 여자반에 있다니? 수현은 동현의 어깨를 툭쳤다.
"야! 네가 왜 여기있어"
"뭐야? 너는 왜 여기있는데?"
동현은 여자아이에게 차였다고 했다. 동현은 여자가 된다면 적어도 그 아이와 친구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지원한 것이였다. 수현은 그런 동현에게 어떠한 성을 선택할지 물어봤지만. 동현은 "그냥 되는 데로 살지. 뭐"라는 말만 반복했다. 수현은 지금이라도 창문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1교시는 럭비였다. 럭비는 남성과 여성 공통으로 해야하는 운동이었다. 보통 남자반과 여자반이 서로 대결을 벌였는데, 승률은 서로 비슷했다. 동현은 자신이 여자반에 왔기 때문에 이제 여자반의 승률이 오를 것이라고 수현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운동장에 나갔다. 운동장에는 남자반 정예멤버가 몸을 풀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동현을 찬, 여자반 이었던 바로 그 아이가 있었다. 그날 이후, 남자반의 승률이 압도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수현은 어느새 다소곳해진 동현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