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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늬 Oct 24. 2021

#7 배꼽의 실종

사람들의 배꼽이 실종되기 시작했다. 사람이라는 게 원래 있던 게 없어지면 이상한 기분이 드는 법이다. 배꼽이 없어지면서 사람들은 어느 병원을 가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했다. 보통 정형외과나 피부과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어떤 사람들은 신생아가 숨 쉬는 곳이었다며 이비인후과를 가기도 했다. 공포는 확산되고, 비극은 전염된다. 배꼽이 있는 사람들이 급격히 적어지자, 배꼽인들의 인기가 올라갔다. 식스팩이 있어도 배꼽이 없으면? 나가리였다. 배꼽만 있다 하면 남녀노소 매력을 느꼈다. 배꼽은 인간이 느끼는 향수의 근원이었으며,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증명이었다. 포유류의 상징과도 같았던 조그마한 개성의 힘은 강력했다.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배꼽 대회가 열렸고, 이곳에서 선발된 예쁜 배꼽은 키링이나 그립톡으로 소비되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풍수에 좋다며 배꼽 사진을 액자에 걸어놓기도 했다.


배꼽이 사라지면서 제일 먼저 없어진 직업은 개그맨들이었다. 실컷 웃고 나서 다음날이면 배꼽이 사라졌다는 사람들의 허무한 증언이 속출했다. 유투버들은 조회수를 위해 장난반 두려움반으로 실험카메라를 만들었는데 진짜로 없어지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증언은 점차 확증이 되어버렸다. 배꼽이 실종되는 현상에 대하여 뚜렷한 해결책이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전세계 의학교수들이 웃음과 배꼽의 상관관계 역시 밝혀내지 못하자 이 소문은 암묵적 진실이 되었다. 


그러자 전국적으로 진지하고도 심각한 웃음 참기 놀이가 시작되었다. 웃음만 참으면 쉽게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엄청난 시청률과 갈수록 어려운 섭외로 출연료가 로또1등 당첨금과 맞먹는 "나는 배꼽인이다" 에 출현 할 수 있었고, 심지어 배꼽 나오는 티셔츠 한 번만 입으면 어떤 상품이든 매진이 되었다. 별풍선 폭탄이나 후원금 폭탄은 우스웠다. 배꼽 하나로 국회의원이 된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웃음이라는 게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크게 터지기 마련이다. 음식점에서 어떤 아저씨는 손주의 재롱을 보고 오년간 참아왔던 웃음을 너무 크게 터트린 나머지, 주위에 있던 유명한 배꼽 스타의 배꼽을 없어지게 해서 고소를 당했다. 너무 큰 웃음은 반경 3m까지 영향을 미친다. 라는 게 수사의 결론이었다. 


배꼽의 종말. 역사학자들은 이 시대를 이렇게 회상했다. 마지막 배꼽을 가진 사람이 죽고 나자 배꼽은 공식적으로 멸종되었다. 웃는 방법을 잃어버린 사람들. 미소와 폭소의 단어가 사라진 사전들. 입꼬리가 하락한 세계. 

사람들은 분명 잃어버렸지만 무엇을 잃어버린 줄 몰랐다. 그저 배꼽을 그리워하며 노을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잃어버린 웃음의 단서는 그로부터 백년쯤 지나고 나서 오랑우탄의 겨드랑이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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