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무늬 Oct 24. 2021

#8 모든 사람의 손목에 문양이 생겼다

손목에 문양이 생겨났다. 그 형태는 타투처럼 생겼는데, 삼각형이나 동그라미부터 시작해서 브랜드 로고나 잔망루피 같은 캐릭터로도 나타났다. 한 사람도 예외는 없었다.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으며, 다음날 포털사이트나 SNS 피드 대부분을 도배했다. 사람들은 이 문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어떤 이는 천국과 지옥에 가는 사람들을 나누기 위한 문양이라고도 했고, 무의식 속에 가장 좋아하는 것이 나타나는 것이라고도 했다. 가장 분개하는 사람들은 덕후들이었다.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들이 손목에 나타나지 않자 분개한 덕후들은 다른 쪽 손목에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새기기 시작했다. 타투샵은 역대급 호황이었고, 프랜차이즈 타투샵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실 정말 화가 난 덕후들은 탈덕한 것이 나타난 사람들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불안할수록 본능적으로 무리를 짓거나 들어가려고 한다. 비슷한 문양은 비슷한 문양끼리 뭉쳤다. 흔한 문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방대해지고 힘이 세졌다. 그들의 의견은 어떤 사회의 법률이나 트렌드가 되기도 했다. 문양의 수수께끼는 제주도에 살고 있는 수염이 덥수룩한 시인으로 인해 풀렸다. 그는 아내와 완벽하게 같은 문양(모양은 톱니바퀴였다고 한다)이 생겼는데, 혹시 이 문양이 사랑의 문양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같은 문양을 가지고 있는 커뮤니티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연구했는데, 역시나 이 문양은 사랑의 형태였다. 즉,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형태가 손목에 발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사랑이라고 할 수 없었다. 다음은 시인이 알아낸 진짜 사랑의 형태를 찾는 법이다.


1. 같은 문양이어야 한다. 예를 들면 동그라미라면 동그라미의 크기와 모양, 수염이 난 고양이라면 수염의 개수가 똑같아야 하는 것이다.

2. 다른 쪽 팔에 있어야 한다. 만약 자신이 오른쪽 팔에 문양이 생겼다면 상대방은 왼쪽 팔에 문양이 있어야 한다.

3. 2번 조건을 충족한다면, 문양의 위치는 상관이  없다. 손목 안쪽에 있던 바깥쪽에 있던 상관없다.

4. 같은 문양은 무조건 최소 하나가 존재한다.

5. 모든 문양은 성별에 초월한다.


시인은 이 다섯 가지 법칙을 의학계에 발표한다. 하지만 의학계에서는 이 법칙을 웃기는 법칙이라고 생각했다. 의학계에 있는 그 누구도 이 법칙을 믿지 않자 시인은 저명한 물리학 잡지에 기고한다. 물리학계에서는 이 법칙의 인과관계가 양자역학에 기반했다며 시인을 새로운 물리학 천재로 받아들였다. 다음 해 시인은 실제로 제주에 있는 대학에 물리학과 교수로서 부임한다. 사랑의 문양을 찾는 과정을 듣고 싶어 하는 수강생들로 항상 만원이었으며, 넷플릭스에서는 강의 내용을 녹화하여 송출하였다. 이 영상은 약 반년 간 TOP10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인기와 시대성에 힘입어 그는 노벨상을 수상한다. 노벨상의 부분은  노벨평화상. 그 이유는 약 이십 년간 격렬한 전쟁을 하던 두 나라의 수장의 자녀들이, 재밌게도 이 법칙으로 인해 사랑을 찾았고 사돈지간이 되면서 기나긴 전쟁이 종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3년간 물리학과 교수로서 일한 시인은 자신의 이론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잘못되었다며 돌연 사퇴한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어느 날, 시인은 2가지 법칙을 추가로 발표한다.


6. 문양은 인간을 초월한다

7. 문양이 다름에도 진정한 사랑일 수 있다.

이전 04화 #9 그런 너를 이제는 꿈에서 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