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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늬 Oct 24. 2021

#3 신의 이름은 그냥 신이었다.

느린 신이 사랑을 한다면


신의 이름은 그냥 신이었다. 신에게는 자식이 없었고, 그저 신으로 태어났으므로 이름이 곧 신이었으며 성 또한 아버지가 없었으므로 필요 없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성을 필요로 했다. 그리하여 나라마다 가장 많은 성씨가 신의 성이 되었다. 어떤 나라에서는 스미스갓이라고 불렸고, 어떤 나라에서는 김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신에게는 자연을 창조하는 능력이 있었다. 산맥을 만들고, 구름을 만들고 바람을 만드는 능력들. 그러나 자연을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안타깝게도 인간들이 만든 물건들은 만들지 못했다. 조그마한 구름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략 90년 정도, 강아지 모양의 구름을 만들기 위해서는 130년 정도 걸리는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신은 히말라야산맥을 만드느라고 몇천 년이 걸렸지만 정상에 올라갈 때마다 느끼는 기분 좋은 바람으로 그는 자신의 노력을 창조물들로부터 항상 보답받았다.


사랑을 하고 싶었다. 윤영은 20대 어딘가에 사랑을 잃어버렸다라고 생각했다. 정말 아무런 것도 생각하지 않고 절벽 끝까지 전력 질주를 하는 벅찬 감정으로 사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30대가 되며 사랑이 어려웠다. 그나마 마지막 사랑에게 배운 등산이 윤영의 빈공간을 잘 채워주고 있었다. 산 정상에서 벅찬 숨을 갈무리할 때, 다시 태어나는 그 기분이 좋았다. 자주가던 동네 뒷산에서 신을 만났다. 산을 바라보며 지휘자처럼 손을 휘적휘적 거리는 남자를 보며 윤영은 웬 젊은 사람이 대낮부터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닌다고 생각했다. 산에서 내려오고 나서는 순두부찌개 집에서 그 남자를 다시 만났다. 하얀 순두부찌개를 열심히 먹고 있는 그의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석처럼 붙어 있었다. 남자는 분명 산을 탔는데, 운동화나 옷에 흙먼지 하나 없었다. 너무나도 깔끔한 그에게 이상한 경건함이 생겼다. 윤영도 사람들처럼 이상하게 신의 옆으로 가고 싶었다. 그리고 남자의 근처로 가서 숨을 들이 마시었다.


깊은 숲속에서 느껴지는 청량함이었다. 실내임에도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윤영은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서 항상 먹던 순두부찌개가 더 맛있게 느껴졌다. 계곡 옆에서 먹는 기분으로 순두부찌개를 반 정도 먹었을 무렵, 남자가 일어나서 가게를 나갔다. 윤영은 그제서야 가게에 들어온 사람들의 땀 냄새와 흙먼지, 뜨거운 실내 온도를 느꼈다. 갑자기 숨이 턱 막혀와서 윤영은 나머지를 채 먹지도 못하고 급하게 가게를 나왔다. ‘무슨 향수를 쓰는 걸까?’ 남자가 쓰는 향수가 궁금해졌다. 두리번거리던 윤영은 저 멀리서 걷지도 않는 느낌으로 휘적휘적 걷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서는 남자한테 뛰어가서 물었다. "안녕하세요 정말 죄송하지만, 어떤 향수를 쓰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향수요? 저는 향수는 쓰지 않습니다" 저음이었다. 남자는 투명하고 깊은 눈으로 윤영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윤영은 목소리를 듣고 이상한 소름이 끼쳐서 목덜미가 찌릿했다. 남자를 더 알고 싶었다


"혹시..그러면,전화번호를 알 수 있을까요?" 

"아 저는 전화번호가 없습니다" 

"네?" 

'장난하나? ' 윤영은 신이 괘씸했는데, 괜한 궁금증과 오기가 같이 생겼다. "그러면 어떻게 연락을 할 수 있을까요?" 남자는 산에서 매일 같은 일을 하고 있어서 지금과 같은 시간에 온다면 자기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 윤영이었지만, 남자로부터 느껴지는 이 향기와 공기가 너무 좋아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다음날이 되고 윤영은 연차를 내고 신을 만나러 다시 산으로 갔다. '내가 미쳤지. 황금 같은 연차를'이라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어제와 같은 시각과 장소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신을 보았고 묘한 신뢰감이 들었다. 윤영은 곧바로 신에게 오늘 시간 있냐고 물었고, 해가 뜨기 전까지는 시간이 괜찮다는 이상한 답변을 듣고서 둘은 음식점으로 향했다. 


신은 채식을 했다. 말주변이 없었던 신이었지만 윤영은 이 정도 눈빛과 목소리라면 아무래도 좋았다. 윤영은 신의 짧은 이름도 좋았다. 분명 누구와도 다른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었지만 어디가 다른지는 몰랐다. 신은 모든 것에 극도로 여유로웠다. 말도 다른 사람보다 느리게 하고 걸음걸이도 다른 사람보다 반박자 느렸다. 신은 한 번도 뛰지 않았고, 그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알아서 잘 될 거라는 말을 하였다. 윤영은 신과 함께 있으면 매번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어 살갗이 뽀송뽀송했다. 더위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윤영은 신과 함께 있을 때 느껴지는 산뜻함이 좋았다. 윤영은 두 번째 만나는 날, 신에게 느껴지는 이상한 존경심과 사랑으로 얼떨결에 고백을 해버렸다. 신은 그런 윤영의 고백을 받아들였다. 


한여름에도 한 겨울에도 신과 함께 라면 항상 쾌적했다. 윤영은 자신이 날씨 요정이라며 신에게 자랑했다. 신은 그런 윤영을 보고 매번 웃어주었다. 윤영은 신이라는 사람이 진짜 신인 줄도 모르고 그렇게 사랑했다. 신은 돈은 없었지만 금은 있었다. 어느날 신은 윤영에게 매일 얻어먹기 미안하다며 조약돌만한 금덩어리를 주었다. 윤영은 그 금덩어리를 종로 금은방에서 가서 커플링으로 바꾸고, 남은 돈으로는 신에게 핸드폰을 사주었다. 신은 인간들 각자가 가장 사랑하는 모습으로 존재했다. 남자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남자로,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여자로서 신은 존재했다. 그러나 위압감과 경건한 분위기로 인해 실제로 다가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아주 가끔 순수하고도 용기있는 인간만이 신의 마음속으로 들어왔고, 신은 그러한 인간들을 소중히 사랑해주었다. 그들로 인해 신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깊어갔고, 신은 인간을 위해 계절을 창조했다. 그들이 죽더라도 신은 그들을 영원히 기억해주었다. 


윤영은 절벽 끝에서 휘젓휘젓거리는 자신을 향해, “아저씨 위험하니깐 좀 안쪽으로 들어오세요”라고 했던 사람이었으며, 신이 먹고 있는 순두부찌개를 빤히 쳐다보고서는 혼자서 찌개를 시켜 먹으며 막걸리를 시원하게 들이키는 사람이었다. 윤영은 순수했고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였으며, 남을 위해 손을 건내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생애 최초로 가장 커다란 용기를 내어 신에게 말을 걸었다. 신은 최초의 용기를 자신에게 선물한 윤영을 구원해주려고 만났지만 어느새 윤영은 신을 구원하고 있었다. 신은 인간이 만든 물건과 문명에 모두 서툴렀다. 윤영은 어느새 매일처럼 신을 구박하고 있었다. 자기 아빠도 카카오톡을 쓰는데, 이거 하나 못하냐고 구박하고, 맛있는 음식점 하나 모른다고 구박받았다. 신은 어딘가 잘못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지만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지 몰랐다. 


신은 재미없었다. 매일 느렸고, 어리숙했다. 운전도 할 줄 몰랐고, 매일 똑같은 옷만 입는 패션 센스에 또 얼마나 아재 개그를 하는지, 윤영은 점점 심심해져서 죽을 맛이었다. 연애 좀 해봤냐고 물어보는데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는 해봤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게 윤영은 웃겼다. 신은 부족했지만 윤영은 놓지 않았다. 인간들 중에 이토록 참을성이 있게 자신을 이해해주고 기다려준 여자는 처음이었다. 신은 윤영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서, 무엇을 갖고 싶냐고 물었다. 윤영은 애플워치나 신발 같은 인간들이 만든 물건들을 말했다. 신이 줄 수 있는 것들 중에 윤영이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신이 기쁘게 준비했던 영생이나 구름, 꽃, 노을 중에서 윤영이 원하는 것은 없었다. 조그마한 조약돌만한 황금으로는 택도 없는 게 인간들의 물건값이었다. 결국 태초 이후 인간은 신에게 야근을 선물하였고, 신은 더 큰 황금을 만들기 위해 자연을 소홀히 했다.  


계절이 그렇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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