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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늬 Oct 24. 2021

#11 외계인은 결국 그렇게 되었다

극도로 평화로운 외계인이 원시 지구에 착륙했다.외계인의 모습은 흰색과 검정으로 이루어져 있었고,인간보다 작은 키에 배불뚝이 체형을 가지고 있었는데,눈은 인간보다 작았다.외계인은 빠르게 지구를 점령하기 시작했다.작고도 강력한 무기로 거대한 공룡 등을 하나둘씩 물리쳤고,앞선 기술들로 척박한 지구의 땅을 풍요로운 자연환경으로 바꾸기 시작했다.구름이 많아지고 아름다운 노을이 생기고,얼어붙은 바다에 파도가 생기기 시작했다.외계인은 날 수도 있었으며, 물에서 수영하는 것도 자유로웠다.인간은 가장 취약한 생물 중에 하나였다.배불뚝이 외계인은 인간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외계인이 좋아하는 온도와 인간이 좋아하는 온도가 달라서 자주 마주치지 않은 이유가 컸다.외계인은 시원한 곳을 좋아했다.그들의 행성은 에어컨 때문에 망가졌는데,가장 추운 극지방의 온도 정도가 그들에게는 적정한 온도였다. 


이 행성에는 천적과 위협이 없다.그것이 외계인들이 퇴화한 가장 큰 이유였다.그들은 극도로 평화로운 종족이었기 때문에 서로를 미워하지 않았다.지구의 자원은 풍요로웠으며, 향후 1만년은 놀고먹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쳤던 지난날의 역사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지고 왔는가.외계인들은 발전을 멈추고 명상과 철학에 빠져들었다.그리고 내린 결론은 '우리는 시간에 역행한다.' 였다. 언어와 기술에 대한 무용함을 깨닫고 태초로 돌아가는 운동이 펼쳐진다.신생아한테 더는 언어를 가르치지 않았다.언어는 빠르게 퇴화했다.책은 사라졌다. 생각은 점차 단순해지고, 명료해졌다.다만 그들의 앞선 사회성은 어느 정도 남아있어서 자식들을 키울 때 성역활이 나누어져 있지 않았으며,어떨 때는 같은 성끼리 사랑을 하여 자식을 낳기도 하였다.행복을 위하여 선택한 퇴화에는 태초의 사회성만 남을 뿐이었다. 


인간들을 만난 것은 그로부터 몇천 년이었다.그들의 문명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다만 그들에게 남은 것은 치명적인 귀여움 뿐이었다.모험심 강한 인간들이 극지방을 탐험했고,외계인을 처음 보자 한 말은 '으악! 너무 귀엽다' 였다.자신들을 잡으려고 하는 인간들에게 대응할 언어나 기술은 없었다.그들은 그저 인간들이 자신들을 잡으러 오면 수영을 하여 도망갈수밖에 없었다.(이미 너무 뚱뚱해진 외계인들은 날개도 퇴화했다)그러나 몇몇 외계인들은 인간들에게 잡혔고,인간은 그들을 동물원에 가두었다.외계인은 하등동물인 인간이 자신을 기른다는 사실에 치를 떨었지만,어떤 외계인은 그곳에서 사랑을 찾았고 아이도 낳았다.인간은 다행히도 그런 외계인을 소중하게 다루어주었다.치명적인 귀여움을 가진 외계인은 인기가 많았다.외계인이 있는 곳의 시설과 음식이 점점 좋아졌다. 외계인은 그런 인간을 용서하기로 했다.


극지방에서 극한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외계인의 서식지에서 열린 대회였기 때문에 외계인과 5m 이상 거리를 둬야 하고 절대 만지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문제는 외계인들이었다. 외계인들 사이에서 인간과 같이 살면, 지금보다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외계인들은 짧은 다리로 인간을 미친 듯이 쫓아왔다. 마라톤은 엉망진창이었다. 외계인들 가운데에 날개가 생긴 외계인이 파닥거리며 뛰어다녔다. 사람들은 그 외계인의 이름을 펭귄이라고 이름짓고, 결국 납치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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