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평 남짓, 아가씨 짐을 치우고 책상을 들여오던 날

어머니 거실좀 쓰겠습니다(7편)

by 워킹맘 놀부며느리

아가씨 짐을 다 빼고 쓸고 닦았다.

20대에 누구보다 일찍 돈을 모아 샀던 32평 우리 집은 오래전 주인이 바뀌었고

나는 다시 2평 아가씨방에 들어와있다.

상상도 하지 않았던 순간을 마주할 때, 사람은 답답해지기도 하고 만사가 귀찮아 질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아가씨 짐이 많이 있을땐 이 방이 이렇게 넓은지 몰랐는데

모든것을 다 빼고 나니 그래도 우리 남편과 나, 둘이 누울만한 공간이 충분했다.

사실 이게 2평정도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딱 누으면 우리 둘이 누을 공간에 머리위에 조금 자리가 남는 정도였으니 2평이면 맞는것 같다.


방에 있는 짐을 모두 치운 날

내가 가장 먼저 했던 것은 책상을 사는 것이었다.

5만원짜리인가 6만원 짜리 조립형 책상을 주문하고, 아이들과 조립을 시작했다.

마치 놀이처럼 아이들에게 나사를 조으고, 책상 닦기를 시키는 동안 나는 책상에 놓을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인데 한동안 쳐박혀있었네?. 그래 다시 시작해보자. 이 자리에서'

그 마음으로 나는 책의 먼지를 털어냈다.

다 나눠주고 몇권 남지 않은 책이었지만 그래도 이 책상에서 다시시작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했다.

책상앞에 앉아 창문밖으로 반짝이는 불빛을 감상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 졌다.

감사해서. 너무 고마워서.

내가 더 힘들어지기 전에 방을 비우고 남편될 사람(지금의고모부) 집으로 결혼전 들어가 준 아가씨에게 고맙고 다시 서는 날까지 이 집에서 지내라고 손 내밀어준 어머니께 감사해서.



그 날

정말 오랜만에 일기를 적었다



더딘것이 두렵지 않고

지나는 것이 감사하다

열심히 살았지만 이유없던 그 열정도 내겐 추억으로 남았다.

정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과 같은 추억.

그 또한 감사하다.


아마 나의 5년 뒤의 삶은 지금보다 넘치도록 평온하고 빛날 것 같다.


21년 어느날




나는 그렇게 누구보다 위기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대단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상황에 덤덤한 모습을 유지했고, 정말 괜찮았다

그런데 방에 책상을 들여오던 그 날은 기뻤고, 슬펐다.


완성된 책상을 보고 시아버지가 웃으며

"잘했다. 정말 잘했어"


우리아이들은 엄마가 이 책상에서 또 어떤 꿈을 꿀것인지 잘 알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날 이후 매일 이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나누어주는 일들을 반복했다.

'난 괜찮다' 애써 힘들지 않은 척 하는 것 보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에게 내가 아는 것을 나누어 줄 때

나는 이 책상 하나 정말 잘 샀다는 생각이들었다.


이 방,

두평도 안되는 이 방에서

나는 지금 또 한걸음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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