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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전 돈을 밝힙니다

고소득 월급쟁이로 살아보기(1)

by 원테이크


"현실에 대해서 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첫 연봉 협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첫 오퍼, 첫 이직이었다. 로펌에서 받던 돈만큼 일단 크게 던졌다. 놀라셨는지, 법무팀장님이 직접 전화를 주셨다.


애시당초 큰 기대는 없었다. 잔뜩 몸을 부풀려보는 비둘기처럼, 나 아무것도 없는 사람 아니라고 객기를 부려본 것일 뿐이었다. 헤드헌터 통해서 단 한 군데 지원한 회사에 인연이 잘 닿았다. 로펌을 그만두면 포기해야하는 연봉이 얼마인지도 얼추 계산은 끝나 이미 마음의 결단은 내려져 있었다. 팀장님이 뭐라고 설득하셨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다 알고 사내변호사로 이직하는 것 맞지 않냐고 부드럽게 달래주셨던 것 같기도 하다.


첫 직장인 로펌을 들어갈 때만 해도, 지금의 로스쿨 시대만큼 로펌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공직에 가는 건 당연한 선택지로 고민했을 때였다. 부모님은 딸이 판검사가 되길 바라셨다.


그럼에도 당시 공직을 지원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높은 연봉을 택하는 게 이득이라 생각했다. 연수원에서 흥청망청 쓴 마이너스 통장도 얼른 갚고 싶었다. 우리 아빠도 벌어보지 못한 큰 돈을 벌어보고 싶었다. 부모의 뒷바라지에서 빠른 속도로 벗어나려면 돈을 많이 버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듯 했다. 벌써 이십대 중반인데, 얼른 '진짜 어른'이 되고 싶었다.





돈을 많이 버는 건 좋은 일이 아닐까, 처음으로 생각하게 된 건 열아홉살 겨울인 것 같다. 수능 치고 서울에 처음 올라와, 노원구 이모 집에 얹혀 살면서 대치동 논술학원에 다니던 때였다. ​어디가 잘 하는지 모르니까 대충 상담받고 분위기 보고 선택한 학원은, 아마 한 때 운동권이었을 것 같은 선생님들이 철학을 베이스로 강의를 하고 글 쓰는 걸 가르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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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엄청 어려운 고전을 읽으며 텍스트는 절반 이상 이해하지 못했고, 스스로도 뭐라고 쓰는지도 모르는 글을 써댔다. 그 선생님들한테 제대로 배웠다면 자본주의 투사가 됐어야 할 텐데, 헛배운 게 틀림없다.


오히려 그 때 만나 대학시절 내내 절친으로 지낸 친구가 들려준 부모님의 투자 성공 자수성가 스토리가 내 가슴 속에 깊이 박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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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부모님은 학원강사와 학습지 선생님으로 근근이 가계를 이어오셨다고 한다. 그런데 경매 투자로 부산 지역 아파트와 상가를 사고 팔기 시작하며, 몇 년 새 가세가 일어나 지금은 리버뷰가 보이는 신축 아파트에서 호화롭게 살게 되었다는 그 신화같은 이야기. 결혼할 때 1억 안 되게 산 빌라에서 세 아이를 모두 키우고서야 그 집을 얼마 못 남기고 되팔고 씁쓸해하던, '부자아빠'가 아닌 우리 부모에게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스토리였다.


​​서울 와서 처음으로 알게된 건 나만큼 공부 잘하고 영어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애들은 수두룩 빽빽하단 것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충격적이고 부러운 건 따로 있었다. 투자로 후천적 부자가 된 사람들이 정말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친구의 부자 엄빠를 보면서, 돈을 많이 버는 건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일화는 마치 영유아기 무의식 속에 자리하게 되는 여러 사건들처럼, 성인기를 준비하는 열아홉살짜리의 무의식 한 켠을 차지하였다. 그게 내게 찾아온 자본주의의 첫인상이었다.





로펌에 들어가서 받은 첫 월급은 통장에 찍히자마자 그대로 사라졌다. 마이너스 통장을 갚는데 고스란히 들어갔기 때문이다. 바닷물에 조약돌을 던지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파문은 잠시, 금세 아무일 없는 듯 조용해졌다.


그래도 돈 많이 버는 게 참 좋았다. 통장의 마이너스가 없어지마자 다람쥐처럼 현금을 모아나갔다. 어느 정기적금과 예금을 들어볼까 고르는 게 즐거웠다. 만기가 되기도 전에 이자가 얼마나 쌓였나 하고 자꾸 들여다보는 재미에 빠졌다. 다음 월급이 들어오면 얼마, 그 다음 얼마,... 올해 안에는 이만큼은 모을 수 있겠군, 하고 미리 뿌듯해했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살던 오피스텔을 전세로 옮겨야겠다 마음먹었다. 로펌에선 새벽 퇴근이 일상이기 때문에 회사와 가까운 오피스텔에 살 수밖에 없었는데, 서울 한복판 역세권 오피스텔 월세는 꽤 부담이었다. 이 월세만 줄이면 돈을 더 잘 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전세대출을 알아보며 비로소 현실의 단단한 벽을 처음 느꼈다. 전세 매물도 열심히 찾아보고, 몇 군데 은행 창구를 돌아다녔다. 여기저기 전화도 돌렸다. ​전세대출 하나 받는 데 알아두고 챙길 것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소득이 적은 편이 아닌데, '남의 돈 빌리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었다.


생각보다 절약되는 돈이 드라마틱하지도 않았다. 평생 가장 큰 돈을 모아보았는데, 그 종잣돈으로는 몇 평 되지도 않는 오피스텔 전세대출의 절반도 감당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날 우울하게 만들었다. 돈이 없다는 건 이렇게나 번거롭고, 피곤하고, 자꾸 아쉬운 소리를 해야하는 일인 걸 생애 첫 전세대출을 받으며 알게 됐다.


동기들은 같은 월급을 받고 비싼 월세를 턱턱 내고 명품도 망설임 없이 샀다. 그들은 아무 걱정 없어 보였고, 동동거리는 내 자신은 한없이 작고 찌질해보여 괜스레 짜증이 났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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