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 월급쟁이로 살아보기(3)
마래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며, 난생 처음으로 방 세 개 화장실 두 개짜리 집에 살아보게 되었다. 심지어 신축 아파트였다. 누가 물어봐도 마래푸에 전세 잡았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고, 상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곳에 사는지 구구절절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집을 예쁘게 꾸미려고 집스타그램을 하는 사람을 잔뜩 팔로우하고, 멋진 가구와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공간을 채웠다. 친구들을 초대해서 집들이도 여러 번 열었다. 남산타워가 멀리 내려다 보이던 고층의 아주 전망 좋은 집은, 마침내 지어올린 행복의 성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멋진 성은 오로지 주말 하루 동안만 누릴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같은 집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나라에 살듯 시차가 있는 생활을 했다. 남편은 회사 셔틀을 타고 한 시간이 족히 걸리는 직장에 다녔고, 아침 6시 50분 차를 타기 위해 밤 11시에 자고 새벽 6시 전에 일어났다. 나는 반대로 새벽 한 시가 다 되어야 로펌 사무실에서 퇴근을 하곤 했다.
남편은 종종 빨간 눈으로 나를 기다리기도 했지만, 그래봐야 퇴근한 아내와 알콩달콩한 시간 따위 보내지 못했다. 나는 겨우 "미안. 내가 지금은 말할 에너지가 없네..." 한 마디를 남기고, 비몽사몽으로 씻고 쓰러지듯 잠들기 일쑤였다.
신혼 첫 집과는 인연이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이직을 결정하고, 우리들 직장 중간 즈음에 있는 동네에 두번째 보금자리를 찾았다.
"내가 경기도로 가다니...?" 서울 사람도 아니면서 괜히 툴툴댔다. 경기도로 가면 서울로 다시 못 올라온다던데, 하고 남들 따라 궁시렁대며 집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경기도라고 집값이 싼 것도 전혀 아니었다. 처음 가보는 동네라 낯설었지만, 여전히 눈은 높았고, 설명이 필요 없는 집에 살고 싶었다. 그렇게 우린 다시 갓 입주하던 신축 아파트 전세를 택했다.
이직한 직장에 적응하랴, 새로운 동네에 마음 붙이랴 두 해는 훌쩍 지나갔다. '부동산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 야 너두?' 하는 책을 읽고 '경제적 자유를 이루리라' 다짐했던 일은 전생인가 싶게 흩어져 희미해졌다.
그래도 세입자의 숙명에 따라, 우리는 2년에 한 번씩은 거처를 고민해야 했다. 만기 전까지 집을 살까 말까, 막연한 대화는 항상 흐지부지로 끝났다. 그나마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본 지식은 있던 남편은, 우리 합친 소득이면 전세 올라가는 수준은 따라잡을 수 있으니 좀 여유를 가져도 된다고 그랬다.
그 말에 안심했던 것 같다. 사치하지는 않으니까, 꾸준히 저축하면서 돈을 모으는 동안 부동산 공부를 하면 될 거라 믿었다. 그런데 공부는 무슨, 이번 주말은 어딜 나들이 가야하나 맛집 찾느라 세상 바빴다.
그런데 뉴스가 심상치 않다. 임대차3법이라는 것이 생긴다는 것이다. 앞으로 임차인은 갱신권을 한번 쓰고, 4년은 기본으로 살 수 있단다. 전세금을 4년 간 올려받지 못한다니, 집주인이 지금 임차인더러 나가라는 일이 발생한다고 한다. 전세를 올려받을 요량이다. 어허, 정말 저런 일이 생긴다고?
그 일은 실제로 우리에게 닥쳤다.
"딸아이 학교를 그쪽에서 보내야할 것 같아서요. 죄송하지만 저희가 들어가 살기로 했습니다."
원래 갑작스러운 일이 생기면 사람은 먼저 사실을 부인한다. "그럴 리가 없어... 여기보다 더 좋은 동네 사시면서 왜 굳이 이 집에서 학교를 보내?" 하지만 그게 거짓말이라고 볼만한 부당한 정황도 입증할 방법도 없다. 실은 제가 변호사인데요, 하며 따질 법적 논거도 없고, 달리 버틸 뾰족한 묘수 역시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전세 시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금 사는 신축 아파트는 들어올 때보다 3억이나 올라버렸다. 기존 전세금으론 좀더 멀리 떨어진 구축 아파트 정도 구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걸까. 우리 벌이로 인플레이션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자본주의는 생각보다 매웠다. 우린 오만했고, 안일했다. 높아진 전세금은 쓰나미처럼 우리를 덮쳤다. 스무살 때 친구 부모님이 부동산으로 부자가 되었단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한 장밋빛 자본주의는, 내 앞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자본주의를 배운 적이 없는 것 같다. 돈을 버는 방법도 돈에 당할 때 대처하는 법도 배운 적이 없다.
스무 해 가까이 학교에서 배운 건, 그저 회사원으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 정도였다. 우리 정도면 잘 버는 대기업 맞벌이 부부지, 하고 어느 하나 거슬릴 것 없는 아늑한 성에 자리를 잡았지만, 막상 떠나야하는 입장이 되니 알게 되었다.
도대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는 걸.
우리는, 불어나는 돈 앞에 어찌할 바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였음을.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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