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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K변호사

고소득 월급쟁이로 살아보기(4)

by 원테이크


얼마 전 불시에 6.27 대출 규제 정책이 등장했다. 뜨거워지는 부동산 시장에 찬물을 훅 끼얹는 듯한 정책이다.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4년 전 그 때도 유튜브와 뉴스에서 집값이 너무 비싸고 버블이 심하다고 난리였다. 남일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전세집 퇴거 요청을 받고서야, 전세금을 깔고 앉았던 엉덩이가 견딜 수없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전세를 사는 동안 어느 정도의 목돈을 모을 수 있었지만, 그 다음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전세살이란 그런 것이다. 임대차 2년의 기간 동안은 사실 넋을 놓고 살아도 별 일 없이 시간은 흐른다. 그동안 보세 옷을 살지 백화점 옷을 살지만 열을 올렸지, 정작 집을 살까 말까는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전세 만기가 될 때쯤 따져보면 되겠지, 그렇게 미루고 또 미루는 일이었다.


인생은 언제나 시험이 닥쳐야만 벼락치기가 시작된다. 가진 돈으로 어디로 이사를 가야할까 네이버 부동산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널찍하고 역세권이고 쾌적한 신축 아파트 전세를 살기 위해서는 그간 모은 돈에 대출을 더 얹어야만 했다. 좀 충격이었다. 우리 월급 정도면 전세 상승분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다면 이제 아파트를 매수할 것인가? 지금 이 가격에 여기를 사도 괜찮은 건가? 도저히 판단이 서질 않았다. 아파트라는 자산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여, 무엇이 노이즈이고 무엇이 정보인지 도대체 구별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폭등은 계속 될 거란 사람, 이제 떨어질 일만 남았다는 사람, 누굴 믿어야 할지 머릿속은 온통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분명한 감각은 있었다. 내가 그토록 믿었던 '높은 맞벌이 월급'은, 급등하는 자산 시장 앞에서 나를 배신했다. 다시 전세를 산다면, 그 다음 전세계약때 또 전세금을 올려주어야 할지 모른다. 집주인이 또 나가라고 할지 모른다. 결국 지금과 같은 패닉을 다시 겪을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높은 가격에 집을 사는 건 그다지 두렵지 않았고, 전세금을 올려주며 집주인 자산을 불려주기는 정말 싫었다.


그렇게 나는, 원래 살던 전세집의 5분 거리에 있는 구축 아파트를 매수했다.



주말마다 집을 몇 개씩 보며 피곤에 절어 남편과 말다툼하는 날들도 이제 끝이다. 드디어 나는 자가를 보유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대단한 깨우침에 사로잡혔다.


'세입자로 사는 것이란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지는 일이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 신념을 바탕으로, 주변 친구와 회사 동료들에게 "집은 무조건 사야해"라며 조언인지 훈수인지 모를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누가 그랬나,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하지 말라고. 이내 나는 자기 전 이불킥을 하고 만다. 전세 살이의 불리함에 대해 나름 진심어린 충고와 조언을 해댔지만, 그들이 나처럼 세입자일 것이라 판단했던 건 실수였다.


알고보니 친한 동기는 개포동 재건축 아파트에 곧 입주를 한단다. 잠실역 근처에 사는 동료 집은 자가란다. 결국 나만, 나만 집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다들 상급지라는 곳에 살고 있던 것이다. 서울에 집 한 채씩 있는 대단히 '평범한 사람들' 속에, 그들에겐 당연한 '평범'에 다가가려고 아등바등거리는 내가 별종이었다. 로펌을 빠져나오면 대단한 그들과 한발짝 떨어져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나는 다시금 비교의 굴레로 스스로를 밀어넣었다.


'남'은 우리 인생을 참 고달프게 하는 존재다.
...몽테스키외도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하지만 남보다 행복해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우리는 남이 실제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삶을 선택했다>, 최지은



사실 아직도 십여년 전 좋은 집을 산 사람들을 보면 배가 조금 아프다. 우연히 그 때 결혼을 하고, 우연히 그 때 집을 살 만큼의 자금이 있고, 우연히 마침 직장이 서울이었고, 우연히 그 집이 크게 올라, 지금은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어떤 '평범함'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


​나는 우연히, 규제가 심해지는 부동산 폭등장에 결혼을 했고, 감히 집을 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전세가가 미친듯이 오르는데 놀라 어떻게든 집을 사야겠다 마음 먹었을 때는 하필, 우연히 전고점이 형성되는 시절이었다. 자랑스럽던 내 아파트의 지금 시세는 여전히 당시 매수가에 미치지 못한다. 불장이라는데, 남의 집에만 불이 났나보다.


그래도 괜찮다. 그 때 영끌하지 않고 덜 오른 것을 택했기 때문에, 무엇보다 나의 무지함을 용서하였기 때문에. 쓰린 경험을 통해 이젠 다음에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힘을 기르는 원동력도 얻게 되었다.


그런 한편, 몇 년간 시장을 관심있게 바라보며 깨달았다. 어떤 이에게는 행운이 따르듯, 어떤 이에게는 크고 작은 불운이 따를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니 못난 결정이었다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 묻는다면 그저 이렇게 말하면 그만인 일이다.


"운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훌륭한 의사결정을 내렸으나 우연히도 리스크의 불운한 측면을 경험한 가난한 투자자는 〈포브스Forbes〉 표지에 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럭저럭 괜찮은 혹은 심지어 무모한 의사결정을 내렸으나 우연히도 운이 좋았던 부자 투자자는 분명 표지에 실린다.

<돈의 심리학>, 모건 하우절



주말 사이 잠이 오지 않아 읽던 책을 다시 펴보았다. '충분함'에 대해 다시 골똘히 생각해보자는 저자의 말을 다시금 새겨본다.


현대 자본주의는 두 가지를 좋아한다. 부를 만들어내는 것과 부러움을 만들어내는 것. 아마 두 가지는 서로 함께 갈 것이다. 또래들을 넘어서고 싶은 마음은 더 힘들게 노력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충분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삶은 아무 재미가 없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결과에서 기대치를 뺀 것이 행복이다.

<돈의 심리학>, 모건 하우절


이제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동기 K변호사를 그다지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의 '평범함'에 닿는다 한들, '충분함'을 알지 못한다면 끝없이 조바심만 내며 살지도 모르니까.


서울 집에 고급차까지 있는 법조인 친구들도 가끔 행복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의사들은 같은 노력을 들이고도 서너 배는 더 벌던데 억울하지 않냐? 사람은 역시 손기술을 배워야지", "우리 애는 의사를 시킬 거야" 하고 입을 모을 때, 문득 자본주의가 좋아한다는 '부러움'을 떠올린다.


그리고 '가지지 못한 것보다 가진 것을 돌아보고, 만족의 기술을 연마한다면 좀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려다, 이내 그 말을 삼키고 만다.



고소득 월급쟁이로 살아보기 1~3편 읽으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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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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