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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수의 캔디크러시

벌써 7265판째

by 저나뮤나

캔디크러시라는 게임이 있다. 2012년에 세상에 나온 게임이니 2025년 현재 이 게임은 이미 고전 반열에 올랐어도 한참 전에 올랐을 그런 게임이다. 그런 게임에 나는 남들이 다 지나간 뒤에야 발을 들였다. 그것도 작년, 2024년에. 그러니까 남들이 이미 졸업장을 받고 떠난 운동장에서 나 혼자 뒤늦게 구슬치기를 시작한 꼴이다.


처음에는 1000판만 깨면 끝나는 건 줄 알았다. 딱 거기까지만 가면 "게임 클리어!" 하고 캔디크러시 특유의 호들갑스러운 현수막이 걸리면서 축하를 받는 건 줄 알았던 거다. 그래서 1000판까지 불에 타올라 진짜 열심히 했다. 그런데 웬걸. 1000판에 도착하니 축하 메시지가 번쩍 뜨더니 "자, 이제 진짜 시작이야!" 하면서 계속 가라고 캔디크러시 요정이 내 등을 떠미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나는 오늘도 7265판째 캔디크러시를 하고 있다.


사실 3000판쯤 넘겼을 때 잠깐 멈칫했다. "이거 내가 정상인가?" 스스로에게 물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던 것 같다. 앱을 지우면 모든 게 끝나는 일이었지만 그동안 쏟아부은 시간, 노력, 그리고 돈 - 그렇다 나는 아이템을 사모았던 것이다 - 이 앱의 삭제를 막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해보자." 그렇게 넘은 게 5000판이었다. 그때는 진심으로 "와... 나 미친 건가" 싶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 손가락은 여전히 사탕을 맞추고 있었다.


어느덧 틈새 시간은 모두 캔디크러시 차지가 됐다. 몇 분 비는 순간에는 꼭 사탕을 팡팡 맞추며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는 캔디크러시를 하면서 화면 구석에 유튜브를 틀어두고 멀티 플레이를 하는 경지 혹은 지경까지 갔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중얼거리긴 했다. "야, 진짜 못 말린다, 너."


사실 캔디크러시나 유튜브나 다 시간 때우기일 뿐이다. 특별히 목적도 없고 그걸 한다고 쌀도 나오지 않고 떡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걸까. 답은 명확하다. 중독. 끊고 싶지만 끊을 수 없고 스스로 조절이 안 되는 상태. 통제력을 잃어서 자꾸만 자꾸만 의지와는 관계없이 또다시 버튼을 누르는 것. 이런 상태는 다 중독이라고 볼 수 있는 건데 내가 캔디크러시에 중독이 된 거다. (으악!)


중독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더 재미있는 걸 찾으면 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나. 현실에서 캔디크러시처럼 즉각적으로 팡팡 터지며 성취감을 주는 이벤트가 얼마나 있겠는가. 승진? 합격? 사랑? 그런 건 너무 멀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참 기다려야 한다. 그에 비해 캔디크러시는 세 줄만 맞추면 바로 폭죽이 터지고 레인보우 캔디가 쏟아진다. 현실이 이 정도로 친절했으면 벌써 앱을 지웠을 거다.


가끔 "몇 살까지 이 게임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진짜, 마흔아홉에 하는 고민 중에 이런 고민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문제라고 친구에게 말했더니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냥 그거라도 하라." 사실 그 말도 맞다. 대단한 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게임이다. 하면 된다. 시간을 때우면 된다. 너무 깊게 생각하 필요 없이 늘 해오던 관성으로 아무 생각 없이 하면 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렇게까지 성실한 인간이었나 싶기도 하다. 7265판이라니! 하하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캔디크러시 문제는 그냥 웃으며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흔아홉에 사탕 맞추기에 몰두하는 나를 생각해 보니 상당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열심히 맞추고 있는지. 그리고 언젠가 캔디크러시보다 더 달콤한 무언가가 나타나면 자연스레 손을 뗄 날이 올 거라 믿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그냥 다음 스테이지로 계속 나아가기로 했다. 귀엽게.


어차피 인생도 끝이 보이지 않는 스테이지들의 연속이다. 7265판이든, 9999판이든 중요한 건 "다음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캔디크러시의 폭죽과 레인보우 캔디 속에서 나의 아홉수도 결국 또 하나의 스테이지일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다음 판에서 또 다른 알록달록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지금 현재 내 앞에 있는 걸 열심히 하면 된다.


아... 그런데… 7265판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다. 난이도가 상당한 스테이지다.


7266판 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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