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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수의 허무

삶을 겹겹이 쌓는 일에 관하여

by 저나뮤나

시간이 지나도 사는 것이 허무하다는 느낌을 지우는 일이 쉽지 않다. 아무리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결국 죽음이라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과 마주하면 그동안 해온 모든 것들이 무슨 의미일까 싶다. 사랑이고 노력이고, 아웅다웅하고 미워했던 감정들까지도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가 많다.


나이가 두 자리 수가 되던 무렵부터 '인생은 허무하고, 결국 죽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필연적으로 소멸하게 되는 인간이 살아가는 일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럴 때면 엄마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밥은 뭐 하러 먹어? 다시 배고파질 텐데", "세수는 뭐 하려 해? 다시 더러워질 텐데." 맞는 말이다. 도대체 왜 밥을 자꾸만 먹어야 하고, 세수를 해야 하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밥을 먹었고, 세수도 했다. 이유도 모른 채 계속하는 일들을 참 착실히도 한다.


어쩌면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나의 게으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삶과 죽음을 갈라놓고, 죽음이라는 사건 하나에 너무 큰 의미를 두고, 나머지 수많은 삶의 순간들을 가볍게 여기는 공평하지 못한 저울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삶의 순간들을 좀 더 성실하게 바라보고, 조심조심 한 겹 한 겹 떼어내어 볼 수 있다면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서 쉽게 말하면서 "삶의 모든 시간 vs 죽음"이라는 구도로 거칠게 시간을 나누는 일은 함부로 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러니까 성실하게 섬세하게 살아가지를 못하니 허무라는 짐이 따라붙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시간을 정방향으로 두고 바라보면 '결국 다 죽는다'는 결론은 화가 날 정도로 직설적이고 선명하다. 마치 끝이 정해진 경기를 억지로 뛰고 있는 느낌이랄까. 무엇을 하든, 무엇을 하지 않든 죽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보다 황당하고 허무한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시간을 거꾸로 돌려 죽음에서부터 삶을 바라보면 어떨까. 죽음 때문에 삶이 허무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이라는 끝이 있기에 순간순간의 의미가 더 또렷이 드러날 수도 있다. 마치 한정된 필름으로만 찍을 수 있는 사진처럼, 삶의 매 순간의 값이 평등해지고 같은 무게로 - 죽음도 포함하여 -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인생의 허무에 대한 생각을 할 때면 크레이프 케이크가 떠오른다. 크레이프 케이크는 얇은 층들을 겹겹이 쌓아서 두툼한 케이크를 만든다.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왜 굳이 이렇게 여러 겹을 쌓아가며 만드는 걸까. 바로 그 섬세함, 또 그 쌓아가는 성실함을 통해 크레이프 케이크의 맛이 나오기 때문이다. 비효율적이고 손이 많이 가지만 그 과정을 통해 얻는 특유의 식감과 맛이 크레이프 케이크만의 맛을 만들기 때문이다.


인생도 그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겹겹이 쌓아가는 순간들이 쌓여서 어떤 삶이라는 것을 완성해 나간다고 할 때 모든 층들의 무게는 같다. 그 끝이 크레이프 케이크의 형태를 허물고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해도, 그것 때문에 크레이프 케이크를 만드는 데 드는 노력이나 정성이 의미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냥 덩어리로 만들고 크림 찍어 먹으면 되는 일을 뭘 그리 힘들게 하나 싶지만, 그런 게 크레이프 케이크고 그런 게 사는 일인 것 같다.


인생은 결국 소멸을 향한다. 허무는 소멸과 짝을 이루며 언제나 거기에 있다. 하지만 죽음이 모든 것을 덮는다 해도, 그 과정에서 쌓아 올린 숨결과 흔적은 이미 존재하고, 그것만으로도 삶은 무게를 갖는다 - 혹은 가졌으면 좋겠다. 오십을 앞둔 지금도, 열 살 무렵 처음 품었던 질문을 여전히 반복한다.


"사는 게 무슨 소용인가." 오래된 질문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지만, 사는 건 무슨 소용이 있으라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정도의 생각은 하게 됐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한 겹 한 겹 쌓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사는 것 같다.


허무를 밀어내려는 시도는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앞으로도 밥을 먹고, 세수를 하며, 여전히 반복되는 일상의 행위 위에 삶을 쌓아갈 것이다. 소멸을 향하는 길 위에서 허무는 사라지지 않지만, 그 길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허무보다 더 오래 남기 바라며 한 겹 한 겹 쌓아갈 것이다.


답이 안 나오는 일들을 생각하고 있자니 배가 고프다. 크레이프 케이크를 사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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