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때다, 아홉수

아홉수의 좋은 날

by 저나뮤나

- 지나고 나서 보니 그때도 참 좋을 때야.


엄마랑 전화하는 중에

"엄마, 나도 내년에 오십이야" 했더니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이 얘기는 내가 마흔이 될 때도 들은 말이다.


참 좋을 때.


인생의 후반에서 바라보니 지나온 날들이 다 좋은 날로 기억된다는 건,

결국 인생은 참 좋았다는 말이 된다.


엄마만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육십이 된 언니들의 얘기로는, 오십이 썩 괜찮은 줄 알았더니 육십은 더 좋더라는 말도 종종 듣는다.


지나간 날을 좋게 기억하고,

앞으로 올 날은 더 좋을 거라 기대하는 것.


인생은 참 좋은 것이다.


인생이 좋다고, 힘주지 않고 말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어느 정도의 질곡도 지나야 하고,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부침도 몇 번은 겪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내 바닥을 그대로 마주하는, 치사빤스 같은 경험도 해야 한다.


그걸 다 지나고 나서야

아, 좋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게 된다.


아마 엄마가 했던 말도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지혜가 자라고, 경험치가 쌓이고,

현실을 피하지 않고 바라볼 힘이 생기는 것.

그게 나이를 먹는 일이다.


마흔아홉 살, 올해를 살면서

겪고 싶지 않은 일들을 참 많이도 겪었다.

줄줄이 읊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일들이다.


그래도 겪어냈다.

마흔아홉을 살았다.

그리고 이제 오십이 된다.


엄마 말처럼, 참 좋을 것 같다.

조금은 기대도 된다.


남들 다 노는 토요일 아침.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집에서 출근 준비를 한다.

출근길에 마주한 선선한 공기가

살갗에 조심히 내려앉는다.


공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럽다.


여기까지, 이만큼 살아서

이런 공기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뭐 그렇게 특별한 인생은 아니다.

다들 그만큼 겪고, 다들 그만큼 울며 산다.

아직도 사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다 겪어냈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많이 대견하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들이었지만

어쨌든 살아냈으니까.


아홉수,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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